'변호사 우영우' 아닌 내 주변의 평범한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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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정 기자]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애인은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 <말아톤>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렇다. 장애를 가지고 어떤 일을 성취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두텁게 만드는 일은 아닐까.
비장애인 중에 극소수의 천재가 있는 것처럼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평범한' 장애인이 있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가 장애인을 한 가지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하는 건 아닐까.
발달장애인 형규와 함께 한 트레킹
딸과 2인 가족으로 사는 나를 결핍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면 뭐랄까,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저마다의 다른 서사와 희로애락이 있을 뿐인데. 2인 가족은 자유롭고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에 단출한 맛이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가부장 문화의 그늘에 있던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나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가부장문화에 더 깊숙이 들어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유의 땅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2인 가족이 더 좋다고 한다면 비교로 우열을 가리는 나를 결핍으로 보는 관점과 같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그들의 삶에 내가 모르는 기쁨, 배움, 감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의 세계를 넓히는 기회로 삼고 싶다.
형규는 발달장애를 가진 20대 청년으로 4년 전 전북산악연맹에서 나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 갔다. 석 달 동안 매주 지리산, 덕유산, 내장산, 내변산 등을 가고, 10박 12일을 네팔에서 동고동락 했으니 서로 익숙하다.
형규는 가장 불안한 대원이었다. 암벽을 넘을 때는 안쪽으로 가도록 누군가가 바깥쪽을 지켜야 했고, 내장산에서 사진을 찍는데 균형이 잃어서 절벽 뒤로 넘어가려고 하는 걸 붙잡은 적도 있었다. 형규는 위험을 감지하고 경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형규는 대원들 중 나와 장난이 제일 통했다. 내가 사탕이 없는 사탕봉지를 주고 먹으라고 하면 "아, 뭐예요"하더니 형규도 빈 과자봉지를 가져왔다. 내가 보지도 않고 휙 던져버리면 형규는 막 웃으면서 좋아했다.
쉬고 있을 때 형규는 먼저 다가와서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응. 넌 안 힘들어?"
"나는 괜찮아요."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그 말을 하는 형규가 기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럼 너는 (내일 갈) 촘롱까지 가라."
"싫어요."
"왜? 안 힘들다매. 대장님, 형규는 촘롱까지 간대요."
"내가 언제요!"
이렇게 놀았다.
▲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는 예술가> 수업 중 |
ⓒ 김준정 |
자립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형규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껴야 한다. 한 번은 귀가 아프다고 해서 보니까 귀에 살이 불룩하게 올라와있었다. 다음에 나는 다이소에서 마스크 밴드 열 개를 사가지고 갔다. 한 개를 형규에게 착용시켜 주고 나머지는 인솔하는 선생님께 드렸다.
나도 경험이 없을 때는 몰랐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뭘 도와줘야 할지.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익명의 장애인이 아닌 나와 감정과 경험을 나눈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 남민이 선생님을 그리는 수현씨 |
ⓒ 김준정 |
그래서 올해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는 예술가'는 격주로 미술 수업과 산보를 번갈아 하기로 했다. 미술 수업은 연 언니, 산보는 내가 맡았다. 22명 회원을 리딩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사회복무요원 세 분이 도와주기로 했다. 첫 시간에 내가 그분들에게 소개와 개인기를 부탁했는데, 개인기는 없다고 딱 잘라서 말씀하셨다.
▲ 선진씨가 그려준 나 |
ⓒ 김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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