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대만이 중국에 당당한 이유
중국이 반도체 생산 의존해 보복 불가능…제품 경쟁력이 국제정치 풍랑 뚫는 무기 돼
요즘 국내 산업계의 최대 이슈는 ‘탈(脫)중국’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 좋든 싫든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제2의 사드 사태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에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근 대만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대만은 한국보다 훨씬 심하게 중국과 싸우고 있는데, 중국의 보복이 무섭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만 기업인들은 웃으며 “하나도 안 무섭다”고 답했다고 한다. “중국이 할 수 있는 보복이라고 해 봤자 우리가 수출하는 바나나를 규제하는 정도입니다. 우리가 수출하는 반도체에는 손도 못 댈 겁니다.”
대만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다. 한국(약 23%)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가 발표한 올해 1분기 통계에서 한국과 대만의 중국 수출 감소폭은 전년 대비 28%로 엇비슷했다.
그럼에도 대만이 ‘대중국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는 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세계 1위 TSMC 덕분이다. 글로벌 IT 기업인 애플, 퀄컴은 물론 중국의 화웨이나 알리바바까지 설계는 직접 하더라도 생산은 TSMC에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양안(兩岸) 갈등의 ‘을’은 자신들이 아닌 중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만의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에이브릴 헤인스 국장은 최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TSMC 반도체 생산이 중단되고, 중국도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국내총생산(GDP)에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만의 반도체 기술력이 사실상 중국을 억제하는 ‘전략적 자산’이 된 것이다.
한·중 관계가 얼어붙은 요즘도 국내 일부 업종에선 사드 사태 시절과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 생각보다 ‘보복을 하겠다’며 달려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유화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해도, 중국 기업들이 요즘은 더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들에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실제 배터리 분야에선 중국과의 합작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LG화학·포스코퓨처엠·SK온 등 배터리 소재·제조기업이 중국 코발트 업체 등과 잇달아 손을 잡았다. 배터리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원료 확보가 절실한 국내 기업과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중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다.
그럼에도 한국 무역수지가 1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는 것은 엄연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배터리 등 일부 업종이 순항하고 있지만, 한국 수출 전체로는 추세적인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던 중국이 최대 적자국으로 돌변한 것을 두고 ‘대중국 리스크’가 표면화됐다고 말한다. 중국과의 정치적 마찰로 한국 수출 제품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롯이 정치적 이슈 탓이 아니라는 것은 기업인들이 더 잘 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중 수출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중국과의 기술 경쟁력 격차가 이미 따라잡혔거나 3년 내 잡힐 것이란 응답이 75%나 됐다. 한국 제품이 중국에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이 늦어도 3년 내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 감소율은 지난해 4분기 31.7%에서 올해 1분기 44.5%로 더 심화됐다. 대만과 달리 중국에 대한 기술적 입지를 잃고 있다는 냉정한 성적표인 셈이다.
이제 첨단 산업은 글로벌 정치 리스크에 끌려가던 것을 넘어 정치 이슈를 거꾸로 제어하는 구도로 바뀌고 있다.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각자도생 시대에서 제품 경쟁력은 국제 정치의 풍랑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무기가 됐다. 제품이 좋으면 손님은 몰린다. 글로벌 정치 리스크에 묻혀 과소평가돼 왔던 명제를 다시 되새겨야 할 때다.
양민철 산업1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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