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곳곳이 극락 모두가 부처, 운주사 터

2023. 5. 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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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전남 화순군 운주사 골짜기는 한반도에서 가장 신비한 공간이다. 크지 않은 계곡 안에 돌부처 80기와 석탑 21기가 밀집돼 있다. 흔히 보는 근엄한 엄숙주의 불상이 아니다. 평평한 돌판을 잘라내 간단한 손 모양으로 몸통을 만들고 눈과 코의 윤곽만으로 얼굴을 새겼다. 브랑쿠시(C. Brancusi)의 현대 조각보다 더 추상적인 솜씨다. 몸매와 표정도 다양해 할아버지 부처, 할머니 부처, 아기 부처, 시종 부처 등 인간 군상의 애칭이 붙었다.

석탑은 특별함을 넘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대꼬챙이처럼 뾰족한 7층 탑, 항아리 쌓은 모양, 다층 빈대떡 쌓은 모양, 실패 모양 탑 등 이름 붙이기도 어렵다. 심지어 어떤 모습이라 하기 어려워 ‘동냥치(거지)탑’이라는 이름 아닌 이름도 붙었다.

공간과 공감

한 세기 전 기록은 돌부처 213기, 석탑 30기가 있었다 했고 조선시대에는 훨씬 더 많아 ‘천불천탑동’으로 불렀다. 이 신기한 불상과 탑을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모른다. 도선 대사 창건설부터 외계인설까지 갖가지 황당한 추측이 난무할 뿐이다. 고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고려 중기, 전라도 일대의 유력한 민간 세력들이 1~2세기에 걸쳐 조성했다고 추정하는 정도다. 원래부터 스스로 그렇게 존재했다는 ‘자연(自然)’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감상하는 것이 순리일 듯싶다.

부분에 집착하면 전체를 놓치는 법, 부처와 탑의 신묘함을 뒤로하고 전체 절터의 구성을 바라보자. 중앙부에 돌로 지은 법당이 있고 두 분의 부처가 앞뒤를 바라보고 앉았다. 골짜기뿐 아니라 양옆 산 중턱 곳곳에 탑을 세웠다. 탑은 부처의 물체적 재현이니 온 산골이 부처의 세계요 사찰이다. 군데군데 돌부처들이 모여 앉거나 서 있고 산 위에도 거대한 한 쌍의 부처가 누워 있다. 돌부처들은 진짜 부처일 수도, 예불하는 중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중생 자체가 부처일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어디나 불국토고 누구나 부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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