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리뷰] ‘드림팰리스’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인생

김혜선 2023. 5. 20. 1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와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투쟁은 공통점이 있을까.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두 집단 속 ‘인간’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영화가 나왔다. 가성문 감독의 첫 장편영화 ‘드림팰리스’다.

전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집단의 이야기는 ‘혜정’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얽히고 설키게 된다. ‘드림팰리스’는 남편의 목숨값으로 간신히 장만한 아파트를 지키기 위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혜정(김선영)이 자동차에 붙은 ‘투쟁’ 글씨를 떼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혜정은 공장 화재 참사 피해자의 아내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는 사고를 숨기기 급급하고 혜정은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알기 위해 유가족들과 2년간 시위를 벌여왔다.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혜정은 물 안의 기름처럼 둥둥 뜬 존재다. 죽은 혜정의 남편이 공장 책임자 신분이었기에, 유가족들은 내심 혜정의 남편이 저지른 실수로 화재가 발생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혜정은 결국 회사의 회유와 압박으로 합의금을 받고 시위를 중단한다. 그리고 남은 아들 동욱(최민영)을 위해 ‘드림팰리스’를 분양받는다. 그런데 동욱은 혜정이 시위를 관둔 것을 부끄러워하며 남은 유가족들과 가깝게 지낸다. 그 중 하나는 같은 책임자 신분의 남편을 둔 수인(이윤지)다.

끝까지 투쟁할 것 같았던 수인은 유가족 중 누군가가 회사 화장실에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다. 구속된 수인을 가장 많이 찾아온 사람은 유가족 동지들이 아닌 회사 측 사람들이다. 남겨진 수인의 아이들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유가족 동지들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수인의 큰아들에게 식료품 영수증이나 건네는 비정함을 보여준다. 혜정은 그 모습에 충동적으로 수인의 아들과 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결국 수인도 고민 끝에 회사와 합의하게 된다. 혜정과 수인의 남편은 희생자 중 유일한 회사 측 직접계약 노동자였다. 유가족들은 수인이 투쟁에서 빠지게 되면 동력을 잃는다며 호소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수인은 결국 합의에 이른다. 그리고 혜정의 권유로 ‘드림팰리스’를 할인분양받는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드림팰리스’ 기존 입주자들은 할인분양을 받은 세대가 이사오지 못하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막고 갈등은 극으로 치닫는다. 어지러운 인간의 이기심 속에서 혜정은 충동적으로 선행을 베푼다. 이기주의 집단 속에도 온정을 베푼다. 이 ‘어쩔 수 없는’ 인생이 계속해서 흘러간다.

가성문 감독의 영화 ‘드림팰리스’에는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파트 집단 이기주의를 그리면서도 그 사람들을 마냥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산재사고 피해자라고 해서 마냥 선하지고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그저 그 자리와 상황에 위치한 사람들이 흘러가듯 자신의 ‘역할’을 다 할 뿐이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비명을 지르지만 누구도 나쁜 사람이 없어 허무함까지 느껴진다.

이런 ‘드림팰리스’ 구도는 일본 영화 ‘라쇼몽’이 떠오르기도 한다.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 등장인물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말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담은 작품이다. ‘라쇼몽’이 겉으로는 명예롭고 선한 인간이 실상을 파헤치면 터무니없이 한심하다는 것을 그렸다면 ‘드림팰리스’는 겉으로는 이기적인 인간이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적·지위적 ‘어쩔 수 없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어쩔 수 없음에도 영화는 희미한 희망을 그린다.  혜정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비극은 벌어지고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묘한 상황이 지속되지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산재 사고의 ‘진실’에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31일 개봉. 12세 이용가. 112분.

김혜선 기자 hyeseon@edaily.co.kr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