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물 잡았어야 했나" 찐반론 떴지만…하반기 '전세런' 경고

배현정 2023. 5.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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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 변곡점 왔나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3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증감률은 -0.1%로 매주 하락 폭이 줄어들며 상승 전환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 “연초에 샀어야 했나.” 최근 서울 마포구에 전셋집을 계약한 직장인 김모(40)씨는 “요즘 집값이 다시 오르는 것을 보니 진작 급매물을 잡았어야 했던 건 아닌가 마음이 복잡하다”며 “연초 관심이 있던 대단지 아파트 전용 84㎡가 9억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2억원 이상 호가가 올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 18일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에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매물이 실거래가보다 2억원 이상 높은 26억5000만원대에 낙찰됐다. 두 차례 시도에도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해당 경매에는 6개월 만에 응찰자가 45명이나 몰렸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그간 낙찰을 꺼리던 경매시장에서 시세보다 고가의 낙찰이 이뤄졌다는 것은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일부 청약 경쟁률 78.9대 1

‘찐반(진짜 반등)’일까. 최근 시장의 반등 조짐에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연초에 비하면 전국 아파트 시장의 온도는 확연히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5월 3주 주간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주간 매매가격 증감률은 -0.01% 하락했다. 지난주(-0.4%)보다 낙폭이 줄어들며 상승 전환을 코 앞에 뒀다.

실제 거래도 이뤄진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인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3월 이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신고된 아파트 거래가격을 연초(1·2월) 가격과 비교 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 1만4546개 주택형 가운데 58.3%(8475건)의 평균 실거래가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64%)의 상승거래 비중이 지방(54.1%)을 크게 앞질렀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아파트 거래량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3월 총 2976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559건)보다 5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19일 기준 4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3000건을 돌파했다.

급매물도 속속 사라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인 리얼망고에 따르면, 최근 서울에서 상승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송파구에선 KB시세보다 저렴한 호가 매물이 전체 등록매물(1만9632건)의 8.6%(1682건)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하반기 고점 가격보다 2억~3억원 가량 빠진 실거래로 화제가 됐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최윤성 리얼망고 대표는 “주택 수요가 많은 송파구의 경우 급매물도 많지 않지만, 급매로 나와도 KB시세 대비 하락 폭이 4500만~600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집값이 반등 조짐을 보이자 ‘바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지난 1월을 최저점으로 집값 하락폭이 둔화되고 지역별로 지지기반이 형성되고 있다”며 “고점 대비 20~30% 하락한 일부 급매물 중심으로 매수세가 나오는 심리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시장을 냉각시켰던 최대 변수인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약화되고 있고, 대출 규제 완화 등 정책의 변화도 하락세를 진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을 중심으로 되살아나는 청약 열기도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17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은평구 새절역 두산위브 트레지움은 평균 78.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청약 열기가 달아오르면 기존 아파트에 대한 관심으로도 옮겨간다”며 “고점 대비 20% 안팎 하락한 수준의 급매물이 남아있는 경기도 등으로 시장의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움츠렸던 시장이 바닥에선 고개를 들더라도, 반등의 속도를 내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1차적 관건은 ‘급매 소진 후 추격 매수가 따라붙을 수 있느냐’에 있다. 이광수 부동산 애널리스트는 “최근 매수세를 주도한 사람들은 2030세대 실수요자”라며 “실수요는 가격이 올라가면 추격매수하지 않고 다시 관망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아파트 매입자 연령대별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 아파트 거래 8만8104건 가운데 2030세대의 매수 건은 2만7566건(31%)에 달했다.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에 대해 최대 80%까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올려준 특례보금자리론 출시와 대출 규제 완화 등이 젊은 층의 매수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본격 상승하려면 투자 수요가 들어와야 하는데, 예년에는 30%를 넘나들던 서울 갭 투자 비중이 올해에는 10%안팎에 머무를 정도로 위축된 상태”라고 했다.

하반기 고가 전세 만기 몰려있어

‘더블딥’(일시적 회복 후 다시 침체되는 현상)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펼쳐졌던 1차 부동산 세일이 끝나가고 있지만 2차 세일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먼사태 직후인 2008년 9월~12월 수도권 집값은 넉달간 17% 빠졌다. 이후 2009년 수도권 집값은 전 고점을 갈아치울 정도로 급등했지만, 2010년 이후 쭉 미끄러졌다. 지난해 9~12월 넉 달간 서울 아파트값은 16% 급락했다. 일부 지역의 국지적 상승세에 단기적으로 집값이 1차 바닥을 찍더라도 다시 폭락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위험이 상당한 가운데, 경기침체에 따라 주택 매수 심리가 다시 얼어붙을 수 있어서다. 박 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집값이 크게 빠졌다가 이듬해 급등했는데, 2010년부터 다시 떨어져 하우스푸어(집 가진 거지)로 기억되는 침체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부실 뇌관으로는 2021년 하반기에서 2022년 상반기의 전셋값 폭등기 계약이 첫손에 꼽힌다. ‘전세런’(부도난 은행에서 돈을 빼가는 뱅크런처럼, 세입자들이 전세시장을 떠나는 현상)이 하반기 부동산시장을 강타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2021년 하반기 고가로 계약된 전세가 많이 몰려있는데 곧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며 “재계약 시점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집을 팔려는 움직임이 몰리면 시장에 강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 빅데이터가 진단한 투자점수 서울 46.6점, 부산 49.1점 그쳐

빅데이터 리치고가 진단한 부동산 시장

서울(42.6점)·대구(42.6점)·인천(40점)·부산(40점)·제주(39.4점)…. 지난해 5월, 부동산 빅데이터 ‘리치고’가 진단했던 전국 부동산 투자점수다. 당시 전국 시·도에서 경남(52.6점)과 경북(51.9점) 두 곳만이 겨우 50점을 넘어설 정도로, 시장이 위험 국면에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상반기 상승과 하락에 대한 예상이 엇갈리는 상황이었지만, 리치고는 전국이 ‘투자 유의’ 수준일 정도로 먹구름이 가득하다고 예측했다. 그로부터 1년. 빅데이터는 부동산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빅데이터에 투자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위험하지만, 예측 불허의 시기에 ‘방향등’으로 참조할 수 있다.

5월 기준 전국 투자점수를 보면, 경남(61.7점)과 충남(60.3점)이 가장 높다. 서울(46.6점)의 투자점수는 전국 시·도에서 16위로 전북(49.2점), 부산(49.1점), 제주(39.3점)와 함께 50점 미만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1년 전에 비해서는 전국 부동산의 거품이 다소 걷히며 투자점수가 올라간 상태이지만, 여전히 대부분 지역의 점수가 낮다. 서울 지역 아파트를 저가 매수할 최적기로 꼽혔던 2015년 9월에는 투자점수가 83점이었다.

리치고 종합점수에 반영되는 세부 지표들을 보면, M2통화량 대비 버블인덱스는 16~26% 수준의 하락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 PIR(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 지수는 25~40% 하락이 예상되는 구간에 있다. 매매 수급 흐름도 매우 좋지 않다. 매매 거래량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거래량이 적고 매물은 다시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기원 리치고 대표는 “2023년 5월 빅데이터는 여전히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지역별로 다르지만 집값은 최소 15% 이상 하락을 해야 매수 매력 구간에 들어간다”고 분석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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