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G7과 함께 ‘신(新)국제질서’ 그린다…한·미·일 뭉치고 중·러 압박 강화
윤석열 대통령이 2박 3일간의 '정상외교 슈퍼위크'에 돌입한다.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이 기간 최소 6개국 정상과 양자 정상회담을 갖는다. G7 정상회의는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캐나다·프랑스 등 7개국이 매년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올해 의장국인 일본의 요청을 받아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했다.
G7에 버금가는 국제적 위상과 경제력을 갖춘 한국은 G7 정상회의의 단골 초청국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2021년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초청됐다. 다만 한국은 주요 7개국이 거시적이고 국제적인 경제·외교·안보 이슈를 선제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자발적 소외’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교·안보 정책의 주안점 자체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문제를 비롯한 대북 문제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공급망 재편을 비롯한 사실상의 국제질서 재편 흐름으로 이어지는 와중에도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앞세웠다. 리스크 회피를 위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단 중립을 지향했다. G7·G20 정상회의 등 주요 다자외교 일정에서 그간 한국이 방관자적 역할에 머물렀던 이유다.
정부는 이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대외 전략 기조를 중립 지향형 소극적 외교에서 국제질서 재편을 주도하는 능동적 외교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간 담금질한 가치 외교 노선을 바탕으로 G7과의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강압적 정책을 견제하는 데 G7 정상들과 한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러시아에 대해선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동시에, 우크라 지원 강화 방침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참석은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이 그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에 나서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G7 정상회의에 한국이 계속해서 초청되는 건 그만큼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을 다해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G7에 버금가는 국가가 됐다는 점을 즐기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전략적 명확성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 공동 대응하는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쿼드 협력과 한·미·일 공조
쿼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對中) 견제 협의체로 평가된다. 다만 한국은 그간 백신·기후변화·신기술 등 대중 견제와 무관한 글로벌 이슈 차원에서만 쿼드 협력을 지향했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쿼드와의 전방위적 협력 자체가 ‘대중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이번 G7 정상회의 기간 쿼드 가입국과의 양자 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단순한 워킹그룹 협력을 넘어 쿼드가 추구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제질서 재편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일 ‘동행’과 한·미·일 ‘협력’
21일 개최가 유력한 한·미·일 정상회의에선 3국 공조를 대북 압박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공조 의제를 도출하는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한·미·일 3국이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한 실행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3국 정상회의는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이 기간 한·미·일은 각각 한·미-한·일-미·일 간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공조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사전 준비 작업을 마쳤다. 미·일 정상회담(1월 13일, 기시다 총리 방미)→한·일 정상회담(3월 16일, 윤 대통령 방일)→한·미 정상회담(4월 26일, 윤 대통령 국빈 방미)→한·일 정상회담(5월 7일, 기시다 총리 방한)→미·일 정상회담(5월 18일, 바이든 대통령 G7 정상회의 참석차 방일) 등의 순서였다.
한·미·일 3국은 이번 정상회의 직후 공동성명 대신 합의 사안을 개별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3국 정상회의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프놈펜 3국 공동성명’의 이행 과정을 점검하고, 그간의 논의 사안을 바탕으로 3국 공조를 실효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의제를 중심으로 실무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말뿐인 공조’가 아닌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 등 실질적인 공조 방안을 도출해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G7의 중·러 압박, 尹 동참 수위는
이와 관련 미 고위당국자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전화브리핑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선) 중국에 대한 G7의 전례 없는 공동 대응이 이뤄질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의 비(非)시장 정책과 경제적 강압을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엔 중국을 ‘경제적 강압국’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윤 대통령은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하는 만큼 G7 차원의 공동 움직임에 동참하는 대신 예정된 양자 정상회담 일정을 중심으로 상대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G7은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제재도 예고했다.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함으로써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게 G7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에 따라 G7 공동성명엔 ▶러시아의 전쟁 물자 조달 능력 차단 ▶대러 에너지 의존도 축소 ▶러시아의 국제 금융 시스템 접근 차단 등의 제재안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G7은 대러 압박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 의지도 재확인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G7 정상회의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19일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의 참석과 연설은 G7과 초청국이 모두 우크라 지원에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현재 ‘전쟁 중인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지원에 나서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폴란드 등 제3국을 통해 155㎜ 포탄 등을 우회 지원함으로써 사실상 무기 지원에 준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지난달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과 대량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 등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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