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서희아씨는 왜 해당화 가시를 붙잡았을까
소설 '토지' 속 꽃 이야기 풀어내
주인공 서희, 日 항복 소식에
해당화 가지 붙잡고 주저앉아
억센 가시 잊을 정도로 감격
해방 상징적 의미, 꽃에 담겨
독립운동 활동 유인실 '수국'
일본인과 사랑에 '번민' 나타내
함안댁 '살구나무', 봉순이 '과꽃' 등
등장인물 꽃으로 해석
1897년 한가위를 배경으로 글을 여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을 거쳐 광복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격동의 시기를 그려낸다. 20여권 분량에 등장인물만 600여명에 이르는데, 그에 못지 않게 꽃 이야기가 한가득 담겨있다.
꽃 전문 기자로 불리는 저자는 그 점에 천착한다. 저자는 아파트 공터에 핀 꽃 이름을 묻는 딸에게 대답해주기 위해 야생화 공부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꽃을 찾아 전국을 누볐던 20여년의 경험을 토대로 ‘토지’ 속 꽃 이야기를 풀어낸다.
‘토지’를 선택한 건 문학적 관심 때문이었다. ‘문학 속 꽃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쓸 거리를 찾다 감명 깊었던 나머지 퇴근 후 3개월을 내리읽어 완독한 ‘토지’를 떠올렸다. 여성 작가가 썼지만 남성적인 작품이라는 데 꽃이라는 소재가 많이 나올까 싶었지만 기우였다. 최참판댁 상징으로 능소화가 나오고, 강청댁이 신혼 시절 신랑 용이에게 할미꽃을 꺾어주는 등 이야기와 인물이 꽃으로 해석됐다. 별당아씨와 진달래, 임명희와 옥잠화, 유인실과 수국처럼 "등장인물과 꽃, 나무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많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으로 서희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해당화 가지를 잡고 주저앉는 장면을 꼽는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제는 해당화 줄기에는 2㎝의 긴 가시를 포함해 억센 잔가시가 달렸다는 점. 저자는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고문을 빌려 "최서희의 손바닥엔 피가 낭자하지 않았을까"라고 설명한다. 이어 "저자가 해당화 가지에 가시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면서 "하지만 서희가 해방의 감격에 겨워 해당화 가지에 억센 가시가 가득하다는 것도 잠시 잊을 정도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해당화는 해당 소설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해당화는 ‘토지’ 외에 심훈의 소설 ‘상록수’, 한용운의 시 ‘해당화’처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단골로 등장한다. 물론 해당화가 당시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꽃이기도 했지만, 저자는 해당화가 지닌 해방의 의미를 주된 이유로 지목한다. ‘토지’가 1897년을 기점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수난을 고발하면서 해방을 향해 달리는 소설인만큼 해방의 상징적 의미가 꽃에 담겨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서희와 개나리·탱자나무·해당화, 함안댁과 살구나무, 봉순이와 과꽃, 임이네와 물가의 잡초, 홍이와 자작나무, 장연학과 참나무 등의 내용을 22편의 글로 정리했다.
꽃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소설의 핵심에 가닿는다. 저자는 "꽃이 나오는 장면은 대개 그 인물 스토리의 정점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일본인 오가다 지로를 사랑하게 돼 번민하는 인물인 유인실이 수국에 비견되는 장면은 대표적인 예다.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인 유인실은 일본 유학 당시 발생한 관동대지진 때 함께 조선인들을 구한 오가다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의 아이를 출산한 뒤 아이를 동경에 사는 지인인 조찬하에게 맡기는데, 그때 조찬하는 유인실을 보고 수국을 떠올린다. "찬하는 지금 자기 집 뜰에 한창인 수국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축축한 음지에서 흐드러지게 핀 수국, 병자 방에는 꽂지 않는다는 그 수국이 녹색으로 변했을 때, 찬하는 히비야 공원에서 녹색의 여인으로 착각한 인실의 모습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런 유인실의 번민을 다루는 데 저자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그는 유인실이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오가다에게 "생명보다 중한 것을 줬다"고 말한 것을 두고 ‘여자의 순결’보다는 "조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한 여자가 그 조국에 반역 행위를 했다는 뜻이 더욱 깊었다"고 설명한다.
수국은 본래 일본이 원산지이지만 현재는 국내에도 ‘나무수국’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저자에 따르면 나무수국은 수국과 속(屬)이 같은 형제 식물로 하얀 꽃봉오리가 맺혔다가 하나씩 하얗게 피워내는데, 현재 광화문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저자는 꽃을 통해 ‘토지’의 내용을 살피면서 의미를 되살린다. 해당 꽃이 작품 속에서 지니는 의미뿐 아니라 꽃으로 존재하는 현재의 의미와 배경지식을 설명한다. 135장의 꽃 사진과 설명을 통해 꽃의 생김새나 특징, 개화 시기, 비슷한 꽃 구별법을 설명하고, 더 나아가 꽃 이름의 유래와 관련 전설 등 다양한 꽃 이야기를 전한다.
꽃으로 토지를 읽다 |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360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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