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근의 선택 , KBL을 뒤흔든 메시지
[이준목 기자]
▲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 오세근 |
ⓒ KBL |
프로농구 역사에 남을 초대형 이적이 발생했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오세근이 5월 18일 서울 SK와 3년 계약(첫 시즌 보수 총액 7억 5000만 원)을 맺고 친정팀 안양 KGC를 떠나 전격 이적하면서 농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오세근은 KBL 역사상 최고의 토종빅맨 중 한 명이다. 오세근은 2011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GC 옷을 입은 뒤 12년간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구단이 거둔 4번의 우승을 모두 함께한 '왕조의 산 증인'이다.
2016-2017시즌에는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고 챔프전 MVP는 무려 3회로 양동근(은퇴, 현대모비스)과 역대 최다 타이기록이다. 올시즌도 SK와 챔피언결정전에서 평균 19.1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또다시 우승과 MVP를 차지했다. 신인왕+정규리그+올스타전+챔프전 MVP를 모두 석권한 선수는 KBL 역사에서 김주성(원주 DB 감독)과 오세근, 단 2명뿐이다.
오세근의 SK행이 주는 의미는, 여러모로 선수 한 명의 이적 차원을 넘어 KBL 판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세근은 그동안 KGC의 '원클럽맨' 이미지가 강했다.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 이재도, 전성현 등 2010년대 KGC의 황금기를 이끈 우승주역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오세근만은 지켰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양희종의 뒤를 이어 오세근이 KGC의 두 번째 영구결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하지만 KGC는 올해 문성곤의 수원 KT행에 이어 오세근마저 잃으면서 또다시 우승주역들을 떠나보내는 징크스를 반복했다. 변준형까지 군에 입대하면서 전력의 코어를 모두 잃게 된 KGC는, 이제 리그 3관왕의 기쁨을 즐길 사이도 없이 다음 시즌 강제 리빌딩 수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올여름 오세근과 문성곤의 동반 이적은 그동안 꾸준한 성적과 화수분(육성) 농구라는 포장에 가려져왔던 KGC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KGC는 그동안 투자에 소홀하고, 팀에 공헌한 구성원들에 대한 대우가 인색하다는 꼬리표가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사실 2010년대 들어 KGC가 오세근 등을 영입하며 우승권 강팀으로 부상한 배경도 정상적인 투자보다는 리빌딩을 명목으로 시즌 성적을 포기하고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노린 '탱킹' 덕분이었다.
올스타급 선수들로 성장한 주전들의 몸값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도 이해는 가지만, 양희종을 제외하고 핵심 선수들을 대부분 지키지 못 했다는 것은 KGC의 협상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KGC 최초의 정규리그 MVP였음에도 트레이드된 주희정, 첫 챔프전 우승을 이끈 이상범 감독 등은 '토사구팽' 논란에 휩싸였고, 2회의 챔프전 우승을 이끈 김승기 감독(데이원)은 팀을 떠난 이후 KGC 프런트의 구단 운영 방식을 여러 차례 디스하기도 했다.
오세근 역시 SK와의 계약이 확정된 이후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며 심경을 고백했다. 오세근은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는 FA 협상을 하며 큰 실망과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서울 SK와의 컨택으로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였고 그 끝에 SK로 이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폭로했다.
오세근은 "안양 KGC라는 팀에서 12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과 4번의 우승을 함께 한 구단과 팬분들을 떠난다는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크고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중략) 이대로 이곳에 남게 되면 은퇴식과 영구결번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고 했다. 보장된 원클럽맨과 영구결번의 영광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적을 불사해야 했을 만큼 KGC에 대한 서운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KGC는 이로써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모두 잃고 구단 이미지에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그나마 이례적으로 외부 FA에 투자하며 최성원-정효근 등을 부랴부랴 영입하기는 했지만 문성곤과 오세근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0년대 꾸준히 우승권 전력을 유지했던 KGC의 급격한 선수단 변화는, 1990년대를 지배했던 NBA(미프로농구) 시카고 불스 왕조가 1998년 마이클 조던의 은퇴와 스카티 피펜의 이적 등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을 연상시킬 만큼 충격적이다.
한편으로 오세근을 영입한 SK는 KBL 역사상 손꼽힐 만한 '슈퍼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정규리그 국내-외국인 MVP를 수상했던 김선형-자밀 워니의 원투펀치에, 아직 FA계약이 남아있는 최준용까지 포함하면 한 팀에 'MVP 선수만 무려 4명'이라는 전대미문의 라인업이 탄생할 수 있다. 특히 프로에서 다시 재회한 오세근과 김선형은 대학시절 중앙대 52연승 신화를 함께한 동문이자 국가대표팀에서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합작하며 오랫동안 함께 활약해온 환상의 콤비였다.
KBL에서는 그동안 샐러리캡과 선수층 등의 문제로 NBA처럼 스타급 선수들이 한 팀에 몰리는 슈퍼팀은 보기가 어려웠다. 1990년대 이상민-추승균-조성원-조니 맥도웰 등을 보유했던 대전 현대(현 전주 KCC), 2010년대 라건아-양동근-함지훈-문태영 등이 활약하며 3연패를 차지한 울산 현대모비스 등이 KBL 역사에 그나마 슈퍼팀으로 꼽히는 사례들이다.
SK의 전력은 역대 슈퍼팀들과 견줘도 모자람이 없다. 워니-오세근-김선형의 삼각편대에 다음 시즌에는 안영준도 돌아온다. 최성원이 떠났지만 벤치에는 오재현과 최원혁, 허일영 등이 건재하다.
더구나 SK는 바로 지난 챔피언결정전 KGC와 맞붙은 라이벌이었다.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아쉽게 패했던 SK는 오세근을 영입하여 전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라이벌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게 됐다. 오세근의 SK 이적은, NBA에서 2016년 케빈 듀란트가 바로 직전 시즌 서부 파이널에서 경쟁 상대였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하여 슈퍼팀을 결성했던 것에 비견될 정도의 충격이다.
SK는 다음 시즌 당장 대권에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추게 됐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던 KGC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다음 시즌에는 문성곤을 영입하고 허훈이 가세할 KT, 양홍석을 영입한 LG, 송교창이 돌아오는 KCC 등이 대항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는 시장에 남은 마지막 FA 최대어 최준용의 거취, 고령화된 주전들의 체력과 부상관리 문제가 우승 도전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36세 오세근의 깜짝 선택은 KBL 역사에 색다른 의미와 메시지를 남겼다. 전통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한팀에서 꾸준히 헌신하며 원클럽맨이나 영구결번이 되는 것도 물론 존중받아야 겠지만, 한편으로 프로는 비즈니스이고 선수는 어디까지나 자신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게 우선이다.
오세근은 나이든 노장 선수이고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히 실력으로 건재를 증명하며 자신이 원하는 구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35세 이상 FA 대상자가 보상 규정이 없다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FA 선수가 되어도 자유로운 이적이 쉽지 않았던 한국프로농구계에서 오세근의 과감한 선택은, 그동안 관성에 젖어있던 구단의 협상태도에 경종을 울리며 FA의 취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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