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반칙이 판 치게 만든 모두가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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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멈췄다. 증권사, 캐피탈사에서 나올 예정이던 투자는 완전 엎어져서 올스톱 상태다."국내 주요 벤처캐피탈사 임원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의 여파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하나의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본시장의 주요 구성원이 돕거나 최소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시장에 돈이 도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동력인 신뢰가 무너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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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멈췄다. 증권사, 캐피탈사에서 나올 예정이던 투자는 완전 엎어져서 올스톱 상태다."
국내 주요 벤처캐피탈사 임원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의 여파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신뢰가 흔들리면서 돈도 잘 돌지 않는다. 자본시장에서 신뢰란 '기대에 대한 확실성'이다. '내가 이 돈을 저기에 맡기면 수익을 붙여서 다시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담보다. 지금 우리 자본시장에서 이런 신뢰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주가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호안 대표와 그의 측근들을 대상으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번 사태가 라덕연 일당만의 책임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자본시장 30년 경력의 A 금융사 최고경영자는 대뜸 이런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신용융자 주식매수 제도가 있는데 차액결제거래(CFD)는 왜 추가로 만들었을까요? 금융위원회가 너무 '브라이트 사이드(bright side·밝은면)'만 본 것 아닐까요?"
이번 사건의 스토리라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애초에 자본시장 활성화와 규제 완화라는 미명 하에 CFD라는 상품을 승인한 금융위원회가 있었다. 그 후 금융위는 CF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전문투자자 지정 요건을 완화했다. 그 배후에는 수익 다각화를 꿈꾸는 증권사들과 CFD의 익명성과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투자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거래소의 감시기능이 있다. 물론 이 사태와 관련해서 만큼은 수년간 작동하지 않았다. 규제 완화와 감시 소홀, 시장의 탐욕이라는 어두운 틈새에는 '작전'이라는 바이러스가 수년에 걸쳐 스멀스멀 퍼졌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작전 세력은 보통 이런 식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우선 작전의 머리 격인 펀드매니저가 있고, 다음에 보험사 등 기관이 들어온다. 증권사 각 지점에 '몰이꾼'을 두고, 거래소나 검찰 등 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의 '끄나풀'까지 동원했다. 촘촘하게 각 분야에서 '돕는 자'들이 있어야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본시장과 사회 시스템의 주요 길목을 차지한 인물들이 야합해 치밀한 일탈 작전을 짜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작전이 들어간 종목의 대주주가 이를 눈치 채고 유상증자 등으로 무력화하면 작전은 바로 실패했다. 그만큼 작전이 성공하기까지는 수많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의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본시장의 주요 구성원이 돕거나 최소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바꿔 말하면 이번 사태는 금융위가 CFD 상품을 승인하고, 개인 전문투자자 요건을 완화할 때 부작용을 진지하게 따져봤다면 작전을 일차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운용 과정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할 기회가 있었다. 다음으로 증권사는 CFD 거래에서 이상징후가 있지 않은지 살펴볼 선관주의의무에 충실해야 했다. 폭락 종목의 대주주는 회사 주가가 이례적으로 폭등할 때 작전을 눈치채고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소리 없이 모두가 라덕연과 사실상 공범이 됐고, 시장은 무너졌다. 단순한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에 돈이 도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동력인 신뢰가 무너진 사건이다. 서로를 믿고 다시 돈을 맡기고, 수익을 기대하며 필요한 곳에 돈이 돌게 하려면 자본시장의 모든 구성원이 신뢰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에서 반칙하는 사람은 언제든 나타난다. 반칙해서 이길 수 없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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