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180cm 골키퍼 신송훈, 편견은 그를 자극하는 성장판

서호정 기자 2023. 5. 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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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세계 축구는 장신 골키퍼의 시대다. 190cm를 기준으로 뛰어난 반사 신경과 운동 능력, 발로 공을 제어하는 능력까지 갖춘 골키퍼가 세계 정상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도 그런 흐름에 놓여 있다. 최근 A대표팀에 꾸준히 선발된 김승규(187cm), 조현우(189cm), 송범근(194cm), 그리고 그들과 경쟁한 구성윤(195cm), 김동준(189cm)까지도 세계의 기준에 뒤쳐지지 않는다. 


한층 크고 거대해진 사이즈의 선수가 엄청난 순발력까지 발휘하는 시대에 180cm의 신장으로 골문이라는 전쟁터 앞을 사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호르헤 캄포스(170cm), 파비앵 바르테즈(180cm), 이케르 카시야스(182cm)가 그 어려움을 뚫고 월드클래스에 올라 짙은 흔적은 남겼지만 그 빈도는 잦지 않다.


2002년생 골키퍼 신송훈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축구에 등장한 돌연변이 중 한 명이다. 골키퍼로서 유소년 단계부터 꾸준히 주목받았다. 대한축구협회의 주요 전략이었던 골든 에이지를 통해 기량을 더 키웠고 14세 이하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밟아갔다. 광주FC 유스 시스템을 거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후반기부터 주전으로 도약했고 2학년 때는 K리그 주니어 챔피언십과 왕중왕전 우승의 주역이 됐다. 


신송훈이 가장 빛난 시간은 2019년 브라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이었다. 매 경기 선방을 이어가며 김정수 감독이 이끄는 17세 이하 대표팀의 세계 8강 진출에 공헌했다. 이 대회를 통해 신송훈은 자신의 강점을 확실히 알렸다. 빠른 반응에서 나오는 선방 능력 외에도 수준급의 빌드업 가담 능력, 공중볼 처리에서의 과감성이었다. 


2021년 고교 졸업 후 광주FC로부터 우선지명을 받은 신송훈은 동기인 엄지성과 함께 프로 무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성인 무대, 특히 프로의 벽은 이전에 경험한 것과는 달랐다. 그의 앞에는 윤보상, 윤평국 같은 K리그에서 경쟁력을 높이 인정받은 선배들이 있었다. 2021시즌 첫 해에는 연습 경기 출전 기회조차 없었다. 팀의 강등이 확정되고 시즌 최종전에 출전하며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2022시즌 중반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 온 김경민이 K리그2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신송훈은 상무 입대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하며 이른 나이에 군대를 왔다. 


"프로 1년차 때는 그저 기다림의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해야 할 거 묵묵히 다 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게 제일 중요한 시기였어요. 작년에도 경기 출전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시즌 중 상무 입대가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새로운 기회를 잘 잡자고 좋은 생각을 많이 했고, 훈련을 성실히 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경기 감각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올해부터 성한수 감독님께서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셔서 감사해요. 솔직히 쉬운 선택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신장이 작은 골키퍼를 투입해서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고요. 그래도 계속 믿음을 주시는 것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에는 프로에 온 뒤 경기 경험이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경기 흐름과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어요. 계속 출전을 하면서 템포도 익숙해지고, 동료들이 어떤 플레이를 잘하고 원하는지 눈에 많이 익으면서 실수가 줄어들고 제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타이밍을 얻은 것 같아요."


올 시즌 신송훈은 9경기에 출전해 9실점을 기록 중이다. 무실점 경기는 3차례. 일본과 한국에서 경쟁력을 보인 문경건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복귀를 앞두고 있는 강현무가 가세하면 김천상무의 수문장 경쟁은 더 치열해지겠지만 신송훈은 프로에서 주전 경쟁의 벽을 처음 깨면서 자신감을 높였다. 팀 내에서도 신송훈의 운동 욕심과 노력, 집중력에 대한 칭찬이 높다. 


키 얘기가 나오자 신송훈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잰지 오래됐어요. 180 정도 되려나…"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성장판 검사도 하는 등 조금이라도 키를 더 크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도 있지만 성인이 된 지금 그의 관심은 자신의 신장이 아니다. 워낙 그런 부분에 대한 말을 많이 듣기 때문에 더 의식을 하지 않는 편이다. 


과거 17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그를 지도한 김정수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신송훈의 키를 주목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진짜 가치를 찾지 못하는 나쁜 색안경이 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편견을 걷어내야 그 선수의 진짜 실력과 가치가 보입니다. 신송훈이 그런 선수입니다. 무엇보다 선수 본인이 그런 시선에 기죽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자기 철학, 목표, 노력이 확실했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연구를 해서 실력을 쌓아 왔습니다."


골든에이지 시절부터 신송훈을 지켜봐 온 서동명 골키퍼 코치도 각급 대표팀 지도자 시절 신송훈을 칭찬했다. 194cm로 한국 축구에 장신 골키퍼 시대를 가져왔던 서동명 코치는 신장에 대한 편견보다 신송훈이 보이는 성장세와 노력, 진중함을 늘 칭찬했다. 


최근 김천을 상대하는 팀은 코너킥, 프리킥 등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공통된 전략을 선보인다. 니어포스트나 골라인 앞까지 바짝 붙이는 공을 올려 공격을 시도한다. 선수들이 공과 가까운 골문 쪽에 대거 모여서 신송훈의 움직임을 방해한 뒤 190cm 전후의 공격수나 수비수들을 활용해 골을 넣겠다는 것. 키가 신송훈의 약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 신송훈은 미소를 보였다.


"저는 제 스스로가 공중볼에 강한 골키퍼라고 자신하거든요. 상대가 그런 편견을 갖고 시도하는 게 오히려 좋아요. 제겐 기회라고 생각해요. 밖에서 제 신장으로 인해 갖고 있는 편견을 더 적극적으로 깨 줄 수 있죠. 아 저 골키퍼는 신장이 작지만 공중볼이 강하구나 라고 인식을 바꿀 기회라고 생각해요."


"바꿀 수 없는 제 조건을 이기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연구를 많이 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파워 쪽을 신경 많이 써서 해요. 공중볼이나 여러 경합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밀리면 안 되니까요. 저는 손을 쓸 수 있죠. 어떻게든 높이는 제가 더 위에 있어요. 남들이 생각하는 저의 단점을, 제가 장점으로 역이용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뻔하게 시도해 오면 저는 더 적극적으로 막을겁니다."


김정수 감독에 따르면 골문 밖에서도 신송훈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다. 축구에 대한 진중함, 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선수. 그래서 팀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더 큰 재목이라고 봤다.


"어린 선수들을 많이 지도했는데 요즘은 주장감이 안 보입니다. 단지 리더십이나 카리스마의 문제가 아니예요. 팀을 고민하고 하는 헌신과 깊이 있는 사고를 지닌 선수가 적어요. 신송훈은 어려서부터 차분했고 생각이 깊었습니다. 팀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선수입니다. 그를 지도하는 감독이라면 그런 부분도 분명 보일 것입니다."


벌써 올해 12월이 되면 신송훈은 전역한다. 2024시즌이 되면 그는 군대라는 울타리 밖에서 다시 경쟁에 나서야 한다. 올 시즌 편견을 깨는 중요한 도약에 성공했지만, 그 편견이 찬사로 뒤집히기 위해선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 원소속팀인 광주,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서 놓친 연령별 대표팀(※ 신송훈 세대의 선수들은 20세 이하 월드컵 출전 기회 자체가 없었다)이 그가 준비하는 다음 목표다.


"아직 전력까지의 시간은 먼 거 같아요. 지금 한 경기 한 경기 계속 출전하는 상황이 소중해요. 오히려 이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어요. 경기력이 계속 좋아져야 제 경쟁력도 올라가고 광주에 돌아갔을 때 팀의 좋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지금 팀이 제게 주는 기회를 1분, 1초 소중하게 생각하며 보내려고 합니다." 


"내년 파리올림픽이 제가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연령별 대표팀입니다. 올림픽 세대는 저보다 한살 위거든요. 쉽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계속 경기에 나서며 좋은 모습 보여드리면 각급 대표팀의 기회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제가 마주한 현실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신송훈에게도 희망의 모델은 있다. 김영광, 신화용, 권순태, 윤보상, 가깝게는 이광연이 있다. 이들 모두 180cm에서 184cm 사이의 신장으로 자신들보다 5cm에서 10cm 이상 큰 골키퍼와 포지션 경쟁을 펼치고 골문 앞에서는 그 이상 가는 사이즈의 필드 플레이어들과 공을 놓고 다퉜다. 신송훈은 그들의 장점을 모두 흡수해 180cm의 골키퍼로서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들길 원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편견은 그를 긍정적으로 자극한 성장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저와 비슷한 조건의 선배님 영상을 많이 챙겨 봅니다. 저 선배는 저렇게 하는데 나는 왜 안 되지, 그런 생각을 했던 시기도 있어요. 그 선배님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들이 그 동안 편견을 이겨내며 훌륭히 해 오셨기 때문에 저도 그 뒤를 잘 따라가며 저만의 강점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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