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6700만원이 매월 55만원 빚의 굴레로
주택 낙찰에 1억3천만원 가량 필요
만기 30년 월 55만원, 10년 170만원 상환
피해자들 불어난 빚 감당 어려워
전세사기 특별법을 두고 피해자들과 당정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촉구하지만 당정은 우선매수권 부여를 통해 피해자들이 해당 주택을 매수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실제 피해 사례를 두고 피해자가 정부 지원 정책에 따라 주택을 매수할 경우 벌어질 상황을 은행권의 도움을 받아 알아봤다.
19일 피해자 단체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인 조 씨의 전셋집은 지난 4월 새로운 주인에게 낙찰됐다. 2017년 전세보증금 6700만원을 주고 입주한 전셋집에는 약 8000만원의 은행 근저당이 잡혀있다. 낙찰금은 1번의 유찰을 거쳐 1억 1289만원으로 확정됐다. 그의 전세보증금 6700만원 가운데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3289만원에 불과하다.
조 씨가 정부의 지원방안에 따라 피해 주택을 매수할 경우 그는 30년간 매월 55만 가량을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 정부는 지난 4월 특별법을 마련해 전세사기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피해자에게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주택을 낙찰받으면 4억원 한도 내에서 낙찰자금 전액을 낮은 금리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선매수권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한해 제3자가 부른 최종 낙찰가격에 피해자가 집을 매수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권리이다. 조 씨가 이를 통해 피해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낙찰액은 1억 1289만원이 된다. 여기에 조 씨가 은행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다면 낙찰과 동시에 이를 상환해야 한다. 통상 전세보증금이 80%까지 대출되는 만큼 5360만원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조 씨가 돌려받은 보증금을 모두 전세대출 상환에 써도 2071만원이 부족한 상황. 따라서 조 씨가 해당 주택을 낙찰받기 위해서는 낙찰액에 전세대출 상환 자금(1억 1289만원+2071만원)까지 총 1억 3360만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피해자의 주택 매수에 필요한 자금을 1.85~2.70% 금리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조 씨가 거치 3년에 30년 만기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금리 2.2% 정부 대출을 받을 경우 처음 3년 동안에는 매월 24만5000원의 이자만 납부하면 된다. 3년이 지나면 이자와 원리금을 합쳐 매월 54만7000원을 상환해야 한다. 만기를 20년으로 줄이면 거치 이후 매월 78만5000원, 10년으로 더 단축하면 매월 상환해야 하는 자금은 170만원으로 늘어난다.
“전세 6~7000만원에 살고 있다는 건 소득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매월 50~170만원씩 갚으면서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시중은행 관계자)
“이 일 때문에 병이 나서 직장도 못 다니고 삶이 무너졌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전세사기 피해자 장 씨)
앞서 조 씨의 경우 인천미추홀구 피해자들 가운데 그나마 전세보증금이 적은 편이다.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은 대략 6000~1억원 수준으로, 1억원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개별 사건별로 피해금액이 다르지만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피해자들도 상당하다.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빚 부담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빚을 갚아나가지 못할 경우 피해자는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낙찰받은 집도 다시 경매에 넘어간다. 앞서 전세사기 네번째 희생자의 경우 2억4000만원의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다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박효주 간사는 “피해자들이 대출금액을 감당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어 우선매수권과 대출지원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며 “정부가 장기로 추가대출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20-30년씩 갚아나가야 하는 분들에게 굉장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저리 대출도 부부합산 연 소득이 7000만원을 넘어서면 받을 수 없다. 부부가 각자 월급으로 매월 300만 가량을 실수령하고 있다면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7000만원을 넘어서면 금리가 3.65~3.95%로 뛰어 오른다.
이에 피해자들은 실효성있는 지원은 채권매수를 통한 선구제 방안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지난 16일 전세사기 피해자 이 씨는 국회 앞에서 “벌써 4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당했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부동산정책으로 인한 피해”라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멈춰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 특별법에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포함해 달라”고 촉구했다.
박 간사는 “특별법에 채권매수나 최우선변제금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최소한 포함되어야 실질적인 피해자들 구제가 가능하다”며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결국 빚을 갚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채무조정 지원 방안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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