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 있는 못생긴 귀염둥이, 5만원!" 경매가 가른건 '미모'였다 [말티즈 '88-3' 이야기]②
“희소성 있는 못생긴 귀염둥이, 웰시코기 수캉아지가 왔습니다. 5만원입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코카갤러리는 월평균 개 1400마리, 고양이 1100마리를 거래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반려동물 경매장이다. 지난 4일 오후 2시30분 경매 개시 직후 투명 아크릴 상자에 태어난 지 갓 60일이 넘은 웰시코기 수컷 한 마리가 경매대에 올랐다. 강아지를 이리저리 살피던 경매사 홍성호(53) 코카갤러리 대표(반려동물협회 부회장)의 “희소성 있는 못생긴 귀염둥이”라는 표현에 좌중의 웃음이 터졌다. 흐리멍덩한 인상의 이 수캉아지는 낙찰가 5만원에 인천 서구에서 온 분양업자 품에 안겼다.
경매장은 영문도 모른 채 어미 곁을 떠나 온 강아지들이 낑낑대는 소리를 빼면 자못 질서정연한 분위기였다. 100여명의 소매상들은 미리 경매 동물 목록을 확인한 뒤 쇼윈도에서 눈독 들인 강아지가 올라오기를 기다렸고 혹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강아지더라도 가격이 맞으면 응찰 버튼을 누를 준비 태세를 갖춘 채 집중했다.
경매 방식은 ‘버티기’다. 천장에 매단 대형 화면에 반려동물을 확대해 비추면 응찰 의향이 있는 소매상들은 앉은 자리에서 경매 버튼을 꾹 누르고 버틴다. 경쟁 응찰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경매사는 강아지를 이리저리 살피며 등록 당시 기록해둔 강아지의 특징과 생산한 농장 등을 소개하고 시작 가격에서 1만원씩 올린다. 아무도 응찰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가격은 1만원씩 내려간다.
경매장에서 강아지들은 번호로 불린다. 충남 금산군 추부리의 몰티즈 농장에서 온 2023년 3월4일생 몰티즈에도 ‘88-2’, ‘88-3’ 등의 이름이 붙었다. 강아지 6마리를 가져온 농장주 윤모씨는 어미 개가 누구냐에 따라 3마리씩 분류해 경매장에 맡겼고, 수의사 등의 육안 검사를 거쳐 88번 상자와 89번 상자에 나눠 담기며 붙은 이름이다. 88번 상자의 3번째 강아지가 ‘88-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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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외모에 좌우
강아지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미모’다. 포메라니안, 토이크림·실버푸들, 몰티프(몰티즈와 푸들의 혼종), 미니비숑 등 본래 사람 눈에 보기 좋게 개량된 품종에 비싼 값이 매겨진다. 건강 상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선천적 기형이나 피부병은 없는지, 심장 박동수는 적정한지 등 결격 사유가 없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아이라인이 뚜렷하고 곱슬곱슬한 털이 매끄러워 보이는 몰티프는 40만원에 팔렸다. 닥스훈트 암컷은 30만원, 포메라니안 암컷은 96만원에 낙찰됐다. 혈통서가 있는 32-1번 토이실버푸들 수컷은 최저 낙찰가를 기록한 5만원짜리 웰시코기 수컷의 24배 가격인 120만원에 팔려나갔다.
‘88-3’은 오후 3시쯤 수원시 장안구에서 펫숍을 운영하는 20대 부부의 것이 됐다. 낙찰가 30만원. 낙찰받은 소매상은 우선 외형을 살폈고, 가슴팍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심장 박동을 점검했다. 치아 부정교합이나 뒷다리 기형 여부도 점검 요소다. 강아지에 코를 대고 이른바 ‘꼬순내’를 맡는 소매상들도 있었다.
경매는 오후 4시40분쯤 마무리됐다. 2시간여 동안 경매된 반려동물은 자견 274마리, 고양이 9마리, 성견 1마리 등 총 284마리다. 자견과 고양이 각각 6마리는 소매상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25.3초에 1마리씩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총 낙찰가액은 1억385만원이다. 중개 수수료로 생산업자와 판매업자에게 각각 5.5%(0.5%는 부가가치세)씩 1142만3500원이 청구됐다.
경매장, 반려동물 매매 ‘연결 축’ vs ‘악의 축’
반려동물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중심에 경매장이 있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들의 정치적 입장은 경매장의 존재를 둘러싸고 가장 첨예하게 충돌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에 9곳, 충청권과 영남권에 각 4곳, 호남권에 1곳 등 18곳에서 반려동물 농장에서 생산된 개·고양이의 80%(추산)가 유통된다. 강아지만 약 20만마리다.(반려동물협회 추산). ‘최상품’을 생산하는 농장으로 소문이 나면 그 농장 출신 강아지는 경매장에서 높은 시작 가격이 매겨진다.
홍 대표는 “반려동물은 식용 동물처럼 무게를 달아서 값을 매기는 게 불가능하다”며 “경험과 통계를 토대로 생산 농가와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해 적정한 가격에 거래될 수 있도록 돕는 게 반려동물중개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경매장에 나온 동물들은 대부분 낙찰이 되기 때문에 경매가 대량 재고 발생의 원인은 아니라는 게 중개업자들의 말이다. 인천 송도에서 펫숍을 운영하는 서모(35)씨는 “경매장이 없으면 가격 형성과정이 불투명해지고 기형이나 질환의 유무가 거래 과정에서 가려지기도 어려워진다”며 “생산업자와 판매업자 사이의 분쟁 조정도 경매장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했다.
경매장은 생산업자와 판매업자에겐 반려동물 유통의 필요불가결한 허브지만 반려동물 매매 자체를 금지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동물권단체들의 눈에는 ‘악의 축’이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공장식 대량 생산을 경매장이 지탱하고 있다”며 “번식 능력이 다 한 폐견들도 식용으로 암암리에 처리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도 “경매장이 생기기 전엔 열악한 환경에서 대량으로 키우는 번식장이 우리나라에 없었다”며 “대량으로 판매할 곳이 생기니까 무분별하게 번식장이 생겼고 임신·출산 효용을 다 한 번식장의 노견들이 버려지거나 처분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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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금지와 산업 육성, 정치권의 딜레마
경매장이 상징하는 반려동물 대량 생산-대량 소비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차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선 우리나라 국민 4명 1명(25.4%)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약 1500만 명이 개와 고양이 등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반려인 표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는 각 정당이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더불어민주당)거나 “강아지 공장을 근절하겠다”(국민의힘)고 외쳤다. 그러나 정작 대선 이후 반려동물 생산과 소비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정치인들은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애견협회 고문인 송재호 민주당 의원은 “반려동물 매매 규제 이전에 생산농가에서 경매장을 거쳐 판매에 이르는 개체 관리 방안 마련과 불법 농장 단속 등이 선행돼야 한다”며 “반려인들의 인식 전환, 입양 자격 조건 강화 등은 논의할 가치가 있지만 매매 금지가 유기동물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농해수위 속한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은 “반려동물을 단순히 영리 추구 만을 위한 물건으로 보는 것은 분명 잘못”이라면서도 “매매를 금지하고 입양만 제도화해야 한다는 건 극단적 방법이고 반려동물 산업 종사자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국회 반려인 동아리 ‘펫밀리’ 대표인 허은아 의원 정도가 “가족을 매매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쉽게 버려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선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을 향한 이익집단들의 움직임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해 12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동물범죄 양형기준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2021년 2월부터 상향된 동물보호법 위반죄의 법정형(3년 이하의 징역)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경매업자와 펫숍 운영자 등 1000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한 반려동물협회는 지난달 21일과 지난 10일 두 차례의 연석회의를 열었다. 판매업 허가제 도입(지난 4월 시행 개정 동물보호법)에 대응한 향후 입법 방향 등이 주제였다. 이 자리에선 판매업으로 분류된 경매업을 ‘전문 중개업’으로 바꿔 법적 지위와 책임을 강화하자는 주장 등이 제기됐다.
손성배·장서윤·이찬규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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