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창피한 죽음을 기념하라

이용상,산업2부 2023. 5. 19.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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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99년간 유지했던 콜라 맛을 바꿨던 적이 있다.

1985년 4월 23일의 일이다.

코카콜라는 부랴부랴 원래 맛으로 되돌렸고 회심의 도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코카콜라 사례 말고도 여러 실패작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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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산업2부 차장


코카콜라가 99년간 유지했던 콜라 맛을 바꿨던 적이 있다. 1985년 4월 23일의 일이다. 새로운 맛을 찾아 10년을 연구하고 소비자 20만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경영진은 새롭게 탄생한 ‘뉴 코크’가 불티나게 팔릴 거라고 자신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항의전화가 하루에도 수천 통씩 쏟아졌다. 원래 맛으로 되돌려 놓으라며 소비자들은 시위까지 벌였다. 코카콜라는 부랴부랴 원래 맛으로 되돌렸고 회심의 도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실패 박물관(Museum of Failure)’이 문을 열었다. 코카콜라 사례 말고도 여러 실패작을 전시했다. 스마트 안경 ‘구글 글라스’는 2013년 출시할 때만 해도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며 극찬을 받았지만 3년여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전기 충격 피부 관리 마스크, 스마트폰·게임기 겸용 기기, 휴대용 LP플레이어 등도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심리학자 새뮤얼 웨스트 박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첫 시도는 ‘창피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 혁신의 토대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죠. 우린 이 실패를 기념하기 위해 실패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최근 언론계에도 주목할 만한 실패 사례가 추가됐다. 뉴욕타임스(NYT)가 2014년 발간한 혁신보고서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 꼽았던 미국 뉴미디어 매체 버즈피드(BuzzFeed)가 지난달 20일 뉴스 부문 론칭 12년 만에 폐업을 선언한 것이다. 2006년 설립한 버즈피드는 2011년에 기성 언론사 폴리티코 출신 편집장을 영입하면서 뉴스 서비스를 본격 가동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뻗쳐갔다. 한때 NYT를 제치고 전 세계 온라인 방문자 수 1위를 기록했다. ‘낚시 제목’ 장사를 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탐사보도를 보강해 2021년 중국 신장 위구르의 비밀 수용소 심층 보도로 국제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돈이 안 벌렸다. 메타·구글 등 플랫폼 회사들은 수시로 뉴스 유통 알고리즘을 바꿨고, 수익도 콘텐츠 회사보다 더 많이 챙겨갔다.

미국 온라인 언론사 바이스미디어그룹(Vice media)은 버즈피드보다 규모가 3배 정도 큰 회사다. ‘21세기 뉴미디어의 총아’로 불렸다. 바이스는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주제로 청년층을 겨냥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지난 14일 바이스에서 일하는 기자를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바이스도 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미 시사 분야를 담당하는 바이스월드뉴스에서 동료 100여명이 잘려나갔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여러 번 받은 기자도 정리해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보름 사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대부분은 다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란다.

바로 다음 날에 바이스가 뉴욕 남부연방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내고 회사 매각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때 57억 달러(약 7조6300억원) 가치에 달했던 바이스는 고작 2억2500만 달러(약 3011억원)에 팔릴 전망이다. 주목받던 미국 뉴미디어 업체들이 잇달아 몰락했다는 기사를 본 기성 언론 기자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버즈피드와 바이스는 창피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이들의 저널리즘을 폄훼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시도가 팔짱만 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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