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대결도 대화도 다 실패한 북한
어린 자녀를 키워 본 독자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끝없이 소리 지르며 떼를 쓰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워싱턴 선언’ 발표 이후 북한의 모습이 딱 그렇다. 지금까지 북한은 무인 잠수정 발사(3월 11일),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발사(4월 13일)를 포함해 11번의 군사적 실험을 감행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3월 “우리의 핵 무력은 고도의 임전태세에서 적들의 준동과 도발을 철통같이 억제하고 통제 관리할 것이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한다면 주저 없이 중대한 사명을 결행할 것이다”라며 실험 목표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 목표가 실현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한국과 미국의 준동과 도발을 억제하기는커녕 두 동맹국은 대규모의 고도화된 공군력 등 북한이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의 역량을 동원해 북한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연합 훈련을 했다. 더욱이 북한의 실험은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강화하고 대응 역량을 가다듬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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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파·강경파 입지 모두 약화
한·미·일 비방에 몰두하는 양상
국제사회와 협상하는 게 현명
」
워싱턴 선언은 대한민국을 미국의 ‘핵우산’ 아래 보호하겠다는 미국의 강한 의지를 재확인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핵협의그룹’(NCG) 및 기타 협의체를 통해 양국이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더 긴밀한 조율을 가능하게 했다. 워싱턴 선언 이후 지난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이 있었고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 양국이 더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정치적 대응과 함께 지난 11일에 한국은 정밀타격 지대지 유도무기인 ‘전술 지대지 유도 무기’(KTSSM)의 품질인증 사격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북한의 고체연료 미사일을 발사 단계에서 파괴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지난 4일 우크라이나 패트리엇 포대가 북한의 미사일보다 훨씬 고도화한 러시아의 초음속 킨잘 미사일을 요격했다. 킨잘 미사일마저 고도화한 미사일 방어체계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면 북한의 미사일 무기는 맥도 못 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의 방어 및 공격용 군사 무기 체계는 거의 전적으로 미사일에 의존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북한의 국제 전략이 참담하게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북한에서 대화파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대결적 접근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지가 강화됐다. 하지만 강경론도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다. 노력과 비용을 들였지만, 북한의 강경파들은 한국이나 미국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거나 북한이 선제공격에 나섰을 때 그에 대한 보복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구중궁궐’ 노동당 내부에서 지금 신랄한 비난과 향후 방향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은 궁지에 몰렸다. 북한은 국제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대화와 대결 모두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외세’는 북한이 희망하고 기대했던 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북한은 떼를 쓰고 있다. 워싱턴 선언 이후 북한 노동신문은 미국·한국·일본의 정상에 대한 거친 비난을 3주째 이어갔다. 북한은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초상을 이달 초에 태웠는데, 이는 수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매우 강경한 대응이다. 북한 정권이 전략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직면해 분노와 좌절감을 표시하는 것 같다.
전략적 실패에 북한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장기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파멸이다. 휘청거리는 북한 경제는 내부 불만을 야기해 정권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다. 북한이 중국에 더 의지해 중국의 ‘조언’을 더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북한의 자주권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명한 길은 있다. 국제사회와 협상하고 합의점을 찾아 북한 경제가 더는 흔들리지 않는 데 필요한 무역과 투자를 받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늘 그랬듯이 실패가 뻔한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미사일 등 무기 실험을 계속할 공산이 크다. 설령 그것이 북한의 국제 전략 목표 달성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미사일에 들어갈 돈으로 살 수 있는 쌀을 생각해 보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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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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