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는 가라…다이렉트 인덱싱 온다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5. 1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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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토대로 내가 원하는 펀드 종목 구성

“다이렉트 인덱싱(Direct Indexing)은 ETF에 이어 금융 상품 게임 체인저로 각광받을 수 있다.”

지난 4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모닝스타 인베스트먼트 콘퍼런스(MIC)’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투자 콘퍼런스로 꼽힌다. 올해로 35주년을 맞는 이 행사에서 미국을 포함한 향후 글로벌 경제를 전망하고, 새롭게 떠오를 금융 상품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올해 콘퍼런스에서 자주 언급된 키워드가 ‘다이렉트 인덱싱’이었다. ‘다이렉트 인덱싱과 연계한 맞춤형 포트폴리오 전략’이나 ‘세금과 연계한 다이렉트 인덱싱’ 등 여러 세션이 이어졌고, 다른 세션에서도 자주 언급됐다. 일부 연사는 ‘패시브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이렉트 인덱싱을 이름 그대로 풀어보면 ‘직접 인덱스를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 이 상품은 투자자 개개인이 자신의 목적이나 성향, 생애주기에 맞게 맞춤형 지수를 구성하고, 자신의 계좌에서 개별 종목 단위로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지난 4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모닝스타 인베스트먼트 콘퍼런스(MIC)’에서는 다이렉트 인덱싱 포트폴리오와 관련한 다양한 세션이 열렸다. 미국 내에서 다이렉트 인덱싱은 절세와 안전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사진은 MIC의 한 세션.
향후 5년간 연평균 12% 성장 예고

ETF·뮤추얼펀드 전통 펀드 위협

다이렉트 인덱싱 성장 전망은 밝다. 미국 금융리서치 세룰리어소시에이츠(Cerulli Associates)에 따르면, 다이렉트 인덱싱은 향후 5년간 연평균 12.4% 성장할 전망이다. ETF(11.3%)나 뮤추얼펀드(3.3%)보다 월등히 빠르다. 2020년 3500억달러에서 2025년 1조50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도 예상된다. 전체 자산 규모는 ETF나 뮤추얼 펀드 같은 전통적인 투자 수단보다 작지만, 성장 잠재력은 ETF를 웃돌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김홍곤 KB자산운용 인덱스퀀트 운용본부장은 “개인 투자자가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패시브 투자를 선호하고, 개인 맞춤형 포트폴리오까지 원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고 평가했다.

블랙록, 뱅가드 등 세계 최대 운용사들은 발 빠르게 다이렉트 인덱싱 사업을 준비하고 지수산출자(Index Provider)를 인수하는 분위기다. 2020년 찰스슈왑은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 기업 ‘모티프인베스팅’을 인수했다. 블랙록 역시 같은 해 10억5000만달러를 들여 맞춤형 포트폴리오 제공사 ‘아페리오’를 샀다. BNY멜론은 2021년 옵티멀에셋매니지먼트를 인수해 최적화 기술을 접목시켰다. 프랭클린템플턴은 O‘Shaughnessy Asset Management, 뱅가드는 저스트인베스트, JP모건은 오픈인베스트를 인수하며 다이렉트 인덱싱 비즈니스 진출을 기정사실화했다.

미국에서는 다이렉트 인덱싱이 고액 자산가만 받던 투자 서비스를 대중화했다고 보고 있다. 적은 금액의 자산가인 ‘대중 부자(Mass Affluent)’와 소액 투자가인 ‘일반 대중(Mass)’까지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찰스슈왑은 지난해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개인의 최소 자산 규모를 10만달러로 책정했다. 피델리티는 최소 5000달러에 월 수수료 4.99달러로 문턱을 크게 낮췄다.

ETF가 기성품이라면 초맞춤형

미국에선 절세 방안으로 인기

최근까지 인기를 끈 ETF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ETF는 거래소에 상장된 펀드다. 코스피나 코스닥지수를 추종하는 일반적인 상품이 있고, 2차전지·바이오·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기업을 담은 테마 ETF도 있다. 물론 ETF로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ETF는 금융사가 이미 만들어놓은 ‘기성품’에 비유된다. 다이렉트 인덱싱은 그야말로 투자자가 자신에 맞게 딱 설계한 ‘나만의 ETF’라고 보면 된다.

최근 급등했던 주식 시장이 다소 가라앉으며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로 돌입했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무조건’ 매수를 외치지 않고, 자신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발달하며 ‘맞춤형’ 설계가 가능해졌다는 점이 다이렉트 인덱싱 상품이 떠오른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다이렉트 인덱싱이 ‘절세 방안(Tax Loss Havesting·투자손실공제)’으로 활용돼서다. 미국은 현재 국내 주식과 달리 20% 넘는 양도세를 내야 한다. 다만 손실이 난 종목을 팔아 손실 금액을 확정짓고, 이 종목을 다시 매입하는 방식으로 다른 종목 수익에 대한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절세 방안으로 다이렉트 인덱싱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한국도 오는 2025년 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되면 다이렉트 인덱싱이 더 눈길을 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투세 도입 시 다이렉트 인덱싱으로 연간 금융 투자 수익을 5000만원 이하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 발달로 서비스 가능해져

국내서 NH증권과 KB운용 신상품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서비스를 선보인 곳은 NH투자증권이다. 올해 1월 업계 최초로 ‘NH다이렉트 인덱싱’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며, 자체 개발한 맞춤형 인덱스 서비스를 내놨다. NH투자증권 다이렉트 인덱싱 투자자는 코스피와 코스닥과 같은 기본 시장 지수뿐 아니라, 회사가 자체 개발해 운용 중인 ‘NH i-select 지수(테마형)’를 선택한 뒤, 투자자 취향껏 종목을 추가하거나 제외할 수 있다. 투자 비중도 투자자가 조정한다. 예컨대, 코스피 상장 대표 기업 15개 종목을 선택한 후, 구성 종목 중 소프트웨어 섹터 비중을 0으로 낮추고 반도체, 바이오 종목을 높이는 식으로 지수를 구성한다. 정기변경(리밸런싱) 주기도 1개월~1년 단위로 본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만든 인덱스는 시뮬레이션(백테스팅)을 통해 성과를 확인해보고 투자하게 설계됐다. 리더보드에 참가해 다른 투자자들과 지수 성과를 비교하거나 경쟁해볼 수도 있다. 마음에 드는 지수를 자신의 지수로 복제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KB자산운용은 국내 자산운용사 최초로 다이렉트 인덱싱 ‘MyPort’를 선보였다. 테마, 업종, 대가들의 투자 전략, 나만의 전략으로 4가지 전략을 도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국내 상장된 보통주 전 종목을 대상(5월 8일 기준 2436종목)으로 7가지 지수 유니버스를 제공한다. 투자 지식 수준에 따라 전문가가 사전에 만들어 제공하는 프리셋(Pre-set)을 그대로 따라 해도 된다.

KB자산운용 측은 “개인이 과거 포트폴리오를 돌아보고 모의투자 성과를 과거와 비교해 미래 성과를 예측해 포트폴리오를 짠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서비스”라며 “펀드매니저를 만나고 지점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260개 요소를 조합해 수백만 가지 포트폴리오를 입맛대로 만드는 ‘내 손안의 펀드매니저’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한화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등도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거나 검토 중이다.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도 다이렉트 인덱싱으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에 성공할 경우 충성 고객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ETF는 근 20년간 패시브 투자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최근 ETF 시장은 테마형 상품으로 집중되며 표준화된 투자 상품으로 굳어진 면이 있는데, 다이렉트 인덱싱이 맞춤형 시장에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 김홍곤 KB자산운용 인덱스퀀트 운용본부장(AI 공학박사)
“PBR 낮은 2차전지주? 그 어떤 구성도 가능”
KB자산운용은 국내 자산운용사 최초로 다이렉트 인덱싱 엔진(알고리즘)인 ‘MyPort’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개인은 개별 주식을 종목별로 거래하거나 판매사가 제공하는 ‘주식묶음(펀드, ETF, EMP, 로보어드바이저 등)’에 한정돼 투자해왔다. KB자산운용은 개인 투자자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도로 서비스를 내놨다. 김홍곤 KB자산운용 인덱스퀀트 운용본부장은 “지수, 업종, 테마, 퀀트 전략 등을 선택해 입맛에 맞는 아이디어를 반영한 포트폴리오를 손쉽게 짤 수 있다”며 “MyPort는 초개인화 시대에 맞춰 개인이 구성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 거의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홍곤 KB자산운용 인덱스퀀트 운용본부장
Q. ETF와 비교해 돋보이는 장점은.

A. 다이렉트 인덱싱과 ETF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형태와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 여부다. ETF는 집합투자기구로 펀드를 사고파는 것이다. 다이렉트 인덱싱은 개별 종목을 일괄 매수하거나 매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차전지 테마 ETF에 투자한다면 투자자는 ETF 한 종목을 매수하면 2차전지 테마로 사전에 구성된 주식의 묶음(포트폴리오)을 그대로 매수하게 된다. 표면상으로는 ETF 한 종목을 보유하는 것이지만, 최근에 주가가 급등한 종목이나 개인이 선호하지 않는 주식을 보유하게 될 수도 있다. 반면, 다이렉트 인덱싱으로 투자하면 사전에 구성된 2차전지 테마 포트폴리오를 제공받은 뒤,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5~3배 사이로 저평가됐고, 배당 수익률은 연간 2% 이상인 종목만 별도로 선택할 수 있다. 제공된 종목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종목을 개별적으로 삭제할 수도 있다. 투자 금액만큼 개별 종목 비중을 동일 비중이나 시가총액에 비례해 재배분해준다. 시장 변화에 따라 월·분기마다 동일한 조건으로 새롭게 종목 선정과 비중을 계산해 재투자하는 기능 역시 제공한다.

Q. 인덱스펀드는 쉽다는 게 특징인데, 투자자들이 수고스럽게 스스로 설계하겠느냐는 의문이 있다.

A. 인덱스펀드 장점은 보수가 저렴하고 지수에 따라 수익률이 투명하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펀드 설정(가입)과 해지(환매) 때 실제 구매하거나 현금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장중에 실시간으로 수익을 고정시키기 어려운 점도 단점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매수·매도가 가능하도록 만든 상품이 ETF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 투자자가 스스로 펀드매니저처럼 종목을 선정하고 비중을 배분해 초과 수익률을 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고 판단한다. 지난 3년여간 코로나19로 온라인 활용과 비대면 활동이 급증했다. 인공지능과 퀀트(Quant) 기술 발전도 있었다. 이제 개인 투자자가 스스로의 투자 기준에 따라 종목을 선정하고 비중을 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Q. 미국은 세제 혜택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

A. 미국에서는 절세 전략(Tax Loss Harvesting)과 주식의 소수점 거래(Fractional Trading)가 활성화됐다. 한국은 아직 이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미국의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는 고액 자산가와 대중 부자가 대상이다. 한국은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를 사용하는 일반 대중 투자자들이 타깃 고객층이라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KB자산운용이 지난 1월 조사한 결과 카카오톡 리딩방이나 사설 블로그, 유튜버에게 월 100만원에서 300만원까지도 지불하며 개별 종목을 추천받는 개인 투자자가 적지 않았다.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가 된다면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본다.

Q. 향후 서비스 보완 계획은.

A. 2023년 5월 기준 국내 상장 보통주 전 종목(2436개)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KB자산운용 다이렉트 인덱싱 엔진은 버전 1.0에 불과하다. 현재 준비 중인 version 2.0부터는 미국 S&P500지수와 나스닥100지수 등 해외 주가 지수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또한 미국에서 활발한 소수점 거래와 절세 기능 알고리즘 제공도 준비 중이다. 미국에서 지난 3년간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를 활용한 개인 투자 자산이 500조원 이상이었다. 양질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서비스가 늘어난다면 국내 다이렉트 인덱싱 생태계도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9호 (2023.05.17~2023.05.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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