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20명을 총으로... 광주의 진실, 갈 길 멀다"
<오마이뉴스>가 영화 <송암동>의 특별상영을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특전사 K의 새로운 증언을 비롯한 송암동 일대 사건을 연속 보도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까지 펀딩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이선필 기자]
▲ 영화 <송암동>을 연출한 이조훈 감독. |
ⓒ (주)훈프로 |
4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진실은 계속 밝혀지고 있다. 독재 정권이 자행한 살인, 폭력, 그리고 은폐 행위가 속속 드러났지만 당시 가해자와 공권력의 인정과 사과의 길은 멀어 보인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된 게 불과 5년 전이니 말이다. 15일 서울 용산의 모처에서 만난 영화 <송암동>의 이조훈 감독 또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답답하다"는 심경을 토해냈다.
전작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을 통해 당시 계엄군의 민간인 집단 조준 사격 사건을 다룬 그는 이번 영화로 또다른 의혹을 제시했다. 광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당시 사건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그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며 연이어 광주 항쟁 영화를 찍게 된 감회를 전했다. <송암동>은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계엄군의 오인 교전 사건의 진실을 극영화 형식으로 풀어냈다.
은폐와 거짓의 벽에 균열을 내다
공교롭게 이조훈 감독이 살았던 동네는 광주 송암동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닿는 곳이었다. 1980년 5월 24일,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총소리도 들리고, 헬기가 오가고 했던 게 선명하게 기억난다"며 "과자 사러 밖에 나가는데 엄마가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던 그게 송암동 사건이었다"고 운을 뗐다.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건 특전사 장교 출신의 제보 덕이었다. 2020년 말 특전사 K씨가 민간인 20여 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사살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전해 들었다. K씨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도 이를 제보했다. 조사위 활동 종료 기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 감독은 K씨의 증언을 토대로 직접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K씨의 제보는 신빙성 있었다. 본래 1988~1989년 청문회 때 양심고백을 하려 했는데 당시 현역이어서 어려웠다고 한다. 전역 후 다른 일을 하다가 조사위 활동을 보고 결심한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하니까. 처음 그 일을 듣고 많이 놀랐다. 민간인을 그렇게 세워놓고 쏘는 게 보통 사람이 가능한 게 아니잖나. 온몸에 털이 쭈뼛 서더라. 분명 그 현장을 지켜본 병사들도 있었는데 다들 지금까지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이상했다. 입막음 당했거나 스스로 입을 닫은 건데 꼭 뚫고 싶었다. 그들이 꼭 사과하면 좋겠다."
본래 이조훈 감독은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직후 계엄군들의 거짓 증언을 깨부수기 위해 <위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 결정적 제보로 송암동 사건을 인지했고, 그를 토대로 이미 지난해 3부작 분량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됐다고 한다. 이조훈 감독은 "그 위증 중에 송암동 사건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당시 위증자들은 훈장을 받았고, 심지어 그들은 반납할 생각이 없다고도 말했다. 괘씸해서 <위증>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 그중 5월 24일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한 사건 조서를 보게 됐다. 오인교전으로 죽었고 모두 훈장을 받았는데 조서엔 폭도들의 총탄으로 사망했다고 돼 있더라. 오인교전이 사고가 아닌 (의도가 반영된) 사건이라는 가정 하에 <송암동>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 영화 <송암동>의 한 장면. |
ⓒ (주)훈프로 |
진실 조각을 직조하다
극영화를 접목했지만, 구성 과정에서 최대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반영하려 한 흔적이 영화에 있었다. 베일에 가려진 시민군이었지만 극우 측에 의해 북한군으로 오인받다가 끝내 행적이 묘연해진 김군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다. 이조훈 감독은 "(시민군 소속이자 김군과 근거리에 있었다던) 최진수씨 증언을 반영한 결과"라며 "제가 나름 취재한 걸 배우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사투리가 핵심이라 나름 네이티브 스피커를 모시려 했다. 전라남도 극단을 접촉하기도 했는데 다들 공연 준비로 바쁘더라. 캐스팅 디렉터를 소개받아서 오디션을 진행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무조건 광주 사투리를 잘 구사할 것. 생각보다 엄청 많은 분들이 지원했다. 두배 수로 오디션을 봤는데 다들 열정이 강했고, 이 영화의 의미를 아셔서 사투리를 더 개발해 오시기도 했다. 이 영화가 딱히 주인공이 없잖나. 모두가 잘해내면 우리의 마음과 뜻이 전달될 것이라 강조했다. 특별 시사회 때 배우분들도 영화를 마음에 들어하신 것 같아 다행이다."
▲ 영화 <송암동>을 연출한 이조훈 감독. |
ⓒ (주)훈프로 |
지난해 5월 자신이 계엄군이었다며 당시 일을 참회한 김아무개중사의 사례는 그래서 특별했다. 계엄군으로서 처음으로 직접 입을 열고 유족에게 사죄한 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조훈 감독은 "광주 시민은 피해자, 계엄군은 가해자로만 보던 이분법적 시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김 중사도 전부터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군 인권위원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가서 진술하다가 이후 조사위 권유로 공식적으로 나오시게 됐다. 유족들을 만났을 때 제가 느낀 건 이분들은 이미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무도 오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다는 게 대부분 광주의 정서다. 가해자-피해자 구도에서 벗어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사과하는 사람들이 더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보고 듣진 못했지만 할아버지 대신 사과한다는 게 바로 이분법적 구도를 깨는 것이다. 이런 일이 많아질수록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역사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언제까지 광주 이야길 하냐고 하는데 전 계속 그래서 얘기해야 한다고 본다.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넣어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시민들이 민주주의 이름으로 자기 목소릴 낼 수 있었고, 결국 투쟁으로 자신들을 위한 정부를 세우는 과정이 5·18이다. 일단 여기까지가 1차적 결말이라고 본다. 프랑스의 국가가 (시민 혁명 군가인) '라 마르세예즈'인 것처럼 말이다."
이조훈 감독은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도 주문했다. "국민을 위한 현안을 다루는 게 정치가의 일이라면, 근대 정신을 기리면서 시민들 스스로 공화국의 주인이 되는 의지를 반영해줘야 한다"며 그는 "단순히 정치행위를 표를 얻기 위한 걸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5.18 특집 - 송암동 |
ⓒ 봉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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