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대장장이가 떠오르는 송종화 장인 [정진오의 대장간 이야기]
[정진오 기자]
▲ 송종화 장인이 쇳덩이를 화로에 넣고 달구고 있다. 2023년 1월 19일 인천 <인일철공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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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쏙쏙뉴스] '담금질 기술 1인자' 최고령 대장장이의 하루 ⓒ 이한기 |
2023년 5월 13일 오후 2시.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인천 중구 도원동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는 무척 바빴다. 장인 혼자서 굵고 커다란 집게를 제작하고 있었다. 배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길 때 쓰는 집게라고 했다. 집게 주문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왔다. 새로 만들어달라는 것과 짧은 걸 길게 해달라는 2가지 주문이었다.
내일모레 월요일에는 택배로 부쳐주어야 한다. 새로 만든 10여 개는 벌써 한쪽에 쌓여 있었다. 짧아진 것을 이어 붙여 제 길이에 맞게 수리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일은 화로와 모루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화로와 모루는 가까이 붙어 있고, 그 사이에 송종화 장인은 있었다. 이쪽으로 몸을 틀면 화로이고, 저쪽으로 돌리면 모루였다. 이 작업에 망치 모양의 도구들이 3개나 쓰였다. 중간중간 전기용접 작업도 해야 했다. 그만큼 일은 까다롭고 더뎠다.
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드려 뭔가를 만들 수가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만 있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만 한다. 기본적인 것 말고도 대장간의 도구와 장비는 참으로 다양하다.
우선, '단야로(鍛冶爐)'라고 하는 화로가 있다. 화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로는 불이 치솟고 쇠가 달궈지는 불길이 이는 곳에 집중해서 쓰는 말이라면 화덕은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데에서부터 받침대와 바깥벽, 기둥까지 전체적인 구조물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화로냐, 화덕이냐는 말은 약간의 어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장간에서는 다 같은 거라고 쳐 두자.
화로는 대개 대장간마다 하나씩 있게 마련인데, 작업 공간이 널찍한 경우 두 개를 설치해 쓰는 곳도 있다. 인천 중구 도원동의 인해대장간은 큰 것과 작은 것, 이렇게 두 개의 노를 사용하고 있다. 일감의 크기가 둘 중에 어느 것을 쓸지 결정하게 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주문받은 물건에 맞도록 자르거나 잇는 선행 작업이 있기는 하지만, 대장간 일은 화로에 불을 붙이고 쇠붙이를 달구는 공정이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그래서 옛날 대장간에 들어가 처음 배우는 일이 화로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질이었다.
▲ 송종화 장인이 화로에 쇠를 달구고 있다. 저렇게 달궈진 쇠를 두드려 모양을 잡고 다듬는 데 망치가 3개가 쓰였다. 화로 앞 망치가 놓인 작업대 아래에 송풍기가 달려 있다. 2023년 5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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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일철공소의 모루. 모루 위에 망치가 놓여 있다. 모루 발 위의 옆면에 170kg이라고 무게가 표시돼 있다. 2022년 1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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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게 되어 있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풀무는 손잡이를 밀고 당기면서 바람을 내는 손풀무와 발로 밟아서 바람을 일으키는 발풀무가 있다. 요즘에는 손으로도, 발로도 하지 않고 전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래서 대장간 화로마다 전기 모터로 바람을 내는 송풍기가 달려 있다.
모루는 대장간의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거의 모든 대장간이 마찬가지다. 모루는 달구어진 쇠를 올려놓고 두드려 모양을 잡는 도구이다. 커다란 쇳덩이를 각각의 대장장이에게 맞게 세워 놓았다. 형태는 둥그런 전통모루가 있고, 뾰족한 원통형 뿔이 달린 양모루가 있다. 전통모루는 조선모루라고도 한다. 이는 옛날 옛적부터 내려오는 우리 전통 양식이다.
양모루는 서양에서 건너온 거다. 양모루는 앞쪽에 있는 뿔 말고도 뒤쪽에 평평한 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 이곳에 각종 도구를 꽂아서 쇠의 모양을 다양하게 구부릴 수 있다. 전통모루는 쇠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편리함에서 양모루를 따를 수 없다. 요즘 전통모루를 쓰는 대장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모루와 양모루를 구분하지 못해 숙맥처럼 우습게 된 곳이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조성한 아차산 아래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 가면 영화 세트장으로 쓰던 야외 전시장이 있다. 그 중심 장소에 물레방아 돌아가던 대장간이라면서 재현해 놓았다. 누가 보아도 고구려식 대장간이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그 대장간 안에 서양식 모루가 떡 하니 놓여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세트장을 만들면서 모루가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전통 방식의 원통형 쇳덩이를 가져다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장면이다.
▲ 인일철공소의 화로 옆 집게 걸이에 걸려 있는 50여 개의 집게들. 2022년 1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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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화 장인이 그라인더에 쇠의 단면을 갈고 있다. 2023년 5월 13일(왼쪽). 송종화 장인이 달궈진 쇠막대기를 물통에 넣고 식히면서 핸드그라인더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2023년 1월 19일(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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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맨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집게가 있어야 한다. 집게는 가장 많은 가짓수를 자랑한다. 수십 가지다. 대장장이가 손쉽게 쥘 수 있도록 보통은 화로의 옆면에 걸어 놓는다. 가짓수가 워낙 많다 보니 한쪽 면으로는 부족해 그 옆면까지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도 화로 앞면과 옆면에 걸려 있는 집게만 50여 가지다.
집게가 이처럼 다양한 이유는 만들어내는 물건의 모양이 다 제각각이어서다. 가느다란 것을 쥘 때, 굵은 것을 쥘 때, 그때마다 집게가 다르다. 편편한 것, 동그란 것, 구부러진 것, 뾰족한 것 등 그 모양에 따라 집게를 달리 잡아야 한다.
집게는 대장장이가 필요에 따라 직접 만들어 쓰는 게 대부분이다. 집게의 가짓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형태의 물건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집게는 그동안 쌓인 대장간의 노하우를 말해주는 상징과도 같다.
예전에 분업화 되어 여럿이 작업하던 시절, 집게잡이는 고참이 맡았다. 풀무쟁이와 메질꾼의 윗 단계가 집게잡이였다. 집게잡이를 시작한다는 건 대장간에 들어와 5~6년이 지났다는 얘기였다. 메질할 때 쇠를 잡아주는 집게잡이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반듯하고 빠르게 쇠를 대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메를 칠 수가 없다. 쇠가 식기 전에 빨리 대 주지 않으면 쇠가 튄다. 한쪽으로만 납작해져도 안 되고, 각도 잘 나와야 하게 잡아주어야 하니, 집게잡이의 기술력이 물건의 완성도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 인일철공소 망치 걸이에 걸려 있는 20여 개의 망치들. 망치들에게서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2023년 5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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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활유가 가득 담긴 인일철공소의 기름통. 송종화 장인이 윤활유 담금질 작업을 하면서 작은 낫의 날 부위를 산소 절단기로 가열하고 있다. 저 작은 낫은 낚싯줄 같은 긴 줄에 연결해 나무 꼭대기에 던져서 나뭇가지 같은 것을 자르는 데 쓴다고 한다. 작지만 무척 날카롭고 강하다. 2023년 2월 18일(왼쪽). 인일철공소의 프레스기. 2023년 5월 13일(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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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도 가짓수가 많은 편이다.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는 20개가 넘는다. 망치 걸이에 걸린 것만 그렇다. 망치도 집게와 마찬가지로 대장장이와 한 몸처럼 놀아야 한다. 망치는 내리쳐서 모양을 잡거나 납작하게 하는 단조망치와 쇠를 끊거나 구멍 뚫을 때 쓰는 망치형 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조망치는 또 쇠메와 벼림망치로 나뉜다. 쇠메는 망치 머리가 크고, 1m가량 되는 긴 나무 자루를 끼운다. 그 큰 쇠메는 쇠를 잡아주는 집게잡이가 있을 때나 쓸 수 있다. 1인 작업 현장에서는 쇠메를 쓸 수 없다. 한 손으로 그 쇠메를 들고서 내려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도 예전에 쓰던 오래된 쇠메가 2개 있는데 요새는 늘 혼자서 작업하는 탓에 이 쇠메를 잡을 일이 없다.
벼림망치는 쇠메보다 자루도 짧고 망치 머리도 작다. 우리가 흔히 망치라고 할 때의 그 망치라고 보면 된다. 달궈진 쇠를 늘리는 작업에 쓰는 묵직한 망치가 있고, 모양을 잡을 때 사용하는 가벼운 망치가 따로 있다. 망치 머리의 생김새도 가지가지다.
구멍을 뚫거나 쇠를 자를 때 쓰는 망치처럼 생긴 정(鉦)도 있다. 요새는 쇠를 자르는 일을 기계에 맡기지만 예전에는 끝이 날카로운 망치로 했다. 자를 부위에 이 망치를 올려놓고 다른 망치로 내려쳐서 끊어내는 방식이다. 엿장수가 엿을 쳐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구멍을 뚫을 때도 끝이 뾰족한 망치를 놓고 내리쳐서 뚫었다.
'A자형 기계해머'는 혼자서 일하는 대장간에는 꼭 필요한 장비이다. 스프링해머라고도 한다. 달궈진 쇳덩이를 내려치는 용도다. 예전의 메질꾼 둘이나 셋이서 해야 할 일을 이 기계해머 혼자서 거뜬히 하고도 남는다. 인일철공소에 있는 기계해머는 1976년 이곳으로 옮겨 올 때 서울에서 중고제품을 사서 들여왔다.
프레스기 역시 대장간의 필수 장비이다. 인일철공소의 프레스기도 기계해머와 같이 들여놓았다. 강철판을 원통형으로 오목하게 구부린다든지 할 때 필요하다. 이밖에 쇠를 가는 데 쓰는 그라인더나 쇠를 꽉 끼워 고정하는 장비인 바이스도 있다. 작은 구멍을 뚫을 때 쓰는 드릴링머신도 있다. 둥그런 톱날 디스크를 빠르게 돌려 단단한 쇠를 자르는 절단기도 대장간의 중요 장비이다.
산소절단기와 전기용접기를 갖춘 대장간도 있다. 인일철공소가 그렇다. 산소절단기는 말 그대로 산소 불꽃으로 쇠를 절단하는 도구이다. 약간 사선으로 자를 때 많이 쓴다. 전기용접기는 용접봉에 전기자극을 가해 쇠와 쇠를 이어붙이는 도구이다. 인일철공소는 이 두 가지 도구를 다 갖추고 있다.
▲ 송종화 장인이 기계해머를 이용해 달궈진 망치 머리에 자루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22년 10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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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회분 4호묘 널방에 그려진 고구려 벽화 속 대장장이 모습. 대장장이 앞에 세워진 검고 둥그런 모루가 우리 전통의 모루 모습이다. 깔고 앉은 의자가 송종화 장인이 쓰는 것처럼 하얗다(왼쪽). 송종화 장인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하얀 의자. 고구려 벽화 속 대장장이가 깔고 앉은 하얀 의자를 생각나게 한다(오른쪽). 2023년 5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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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일철공소 송종화 장인은 용접기술을 꽤 일찍 배웠다. 1960년대 우리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파병될 때였다. 베트남전에 용접기술자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시험을 치기 위해 기술을 배웠었다.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참전하기로 한 거였다.
시험은 서울 용산에서 치렀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실력은 누구한테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는데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뒷배가 없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위안하고 말았다. 그때 베트남에 갔더라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면 대장간 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장간의 장비나 도구들은 그것을 쓰는 장인들이 편하게 여기는 방식대로 갖춰져 있다. 하루 내내,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일하면서 몸에 밴 대로 도구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겉모양부터 차이가 나는 대장간마다 다른 도구가 하나 있다. 앉아서 작업할 때의 의자다. 어떤 곳에는 푹신한 의자를, 어떤 곳에서는 딱딱한 의자를 쓴다. 그야말로 대장간 주인 맘대로다. 이 작은 의자에서 대장간의 특색이 드러나기도 한다.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 가면 작고 하얀 의자가 눈에 띈다. 철근을 둥그렇게 감은 걸 크기별로 3층으로 만들어 용접하고 지지대를 세워 고정한 뒤 하얀색 플라스틱 깔개를 얹어 놓은 형태다. 아주 단순하게 생겼는데, 언제부터 썼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되었다. 송종화 장인은 보통 기계해머 작업을 할 때 이 의자를 깔고 앉는다.
▲ 2022년 10월 12일 차도 쪽에서 바라본 인천 <인일철공소> 정면 모습. 송종화 장인이 기계해머로 작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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