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사과 안한 그, 끝내 ‘단죄’ 못한 우리
정아은 지음
사이드웨이, 400쪽, 2만원
2021년 11월 23일, ‘전직 대통령’이라는 호칭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두환씨가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은 87세에 쓴 회고록에서조차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을 부인하며 사죄하지 않았다. 그가 죄책감을 느꼈을까? 소설가 정아은(47)은 이것이 궁금했다. 이어 다른 질문들이 따라붙었다. 우리 사회는 왜 전두환을 끝내 단죄하지 못했을까?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하고 수많은 시민들을 고문하고 죽게 한 희대의 무법자가 천수를 누리다 제집에서 자연사한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되는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사죄도 단죄도 없었던 전두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본다. 정아은은 지난 16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두환은 퇴임 후 33년을 살아있었다”면서 “그가 사죄할 기회도, 우리 공동체가 단죄할 기회도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책 쓴 이유를 설명했다.
정아은은 전두환의 개인사와 시대적 분위기를 함께 읽어가며 답을 찾아나간다. 그는 2013년 장편소설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지만 전두환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 소설 대신 논픽션을 택했다. 책 뒤에는 100여권의 참고문헌 목록이 붙어 있다.
전두환은 왜 끝내 사죄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먼저 문헌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해 태생부터 죽음까지 전두환의 삶을 총체적으로 서술한다. 이어 내재적 관점을 통해 그의 심리를 들여다보면서 전두환의 생애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로 ‘특별한 가벼움’을 찾아낸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는 묵직한 덩어리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할 일을 부담없이 저지르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모든 것을 긍정하며 화통하게 웃을 수 있었던 그의 특별한 기질”을 말한다.
저자는 “정신세계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막의 존재 덕에 그는 평생 심각함, 고뇌, 죄책감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면서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서 찾는 게 아니라 외부로 돌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전두환의 끔찍한 가벼움은 이승만 박정희 등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한국 사회 지도자들로부터 이어진 기질이자, 잘못을 되돌아보기보다 어떻게든 해내는 것에 가치를 두었던 1980년대라는 시대의 기질이기도 하다고 분석한다.
사죄하지 않는 전두환을 우리 사회는 왜 무릎 꿇리지 못했을까. 저자는 전두환의 퇴임 후 여생 33년에 걸쳐 반복된 단죄와 일상생활의 사이클을 꼼꼼하게 복기한다. 전두환은 퇴임 후 노태우 정부에 의해 백담사로 쫓겨갔다가 2년 후인 1990년 12월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지시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재판에 의해 1995년 11월 법정 구속을 당한다.
무기징역 판결을 받은 전두환은 투옥된지 22개월 만인 1997년 12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그를 꺼내준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전두환 은닉 재산 환수에 나선다.
저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등이 자신의 정치적 손익에 따라 전두환 문제를 이용했고, 이것이 단죄에 실패한 이유라고 짚어낸다. “김영삼이 전두환을 감옥으로 보낸 것도, 김대중이 전두환을 사면한 것도, 모두 개인적인 동기에서 나왔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영삼은 자신의 선거자금 의혹에 대한 국면 전환용으로, 김대중은 영남 표를 가져와야 대선에서 이긴다는 이유로 전두환 문제를 처리했다.”
노태우와 박근혜가 전두환 단죄에 나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그들 역시 정의를 위해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 “박근혜가 진정 공동체를 위해 전두환의 불법자금을 환수하려 했다면 자신부터 돌아보는 게 순서였다. 불법적으로 조성해 빼돌린 자금을 내놓지 않는다고 전두환에게 호통을 친 박근혜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내놓아야 할 몫, 즉 전두환이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6억원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전두환 처벌 문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전씨를 불기소처분 했다가 몇 개월 뒤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다시 기소하기도 했다.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단죄를 받아야 하는데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 이익 때문에 그 원칙이 훼손되고 말았다. 전두환 단죄 문제는 우리 사회가 법치가 아니라 인치에 의해 운용돼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결정권을 쥔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의지를 갖고 전두환을 단죄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이런 ‘거악’이 나타난다면 이를 막을 ‘선’이 안정적으로 형성돼 있는지 묻는다.
책은 전두환 찬양과 낭만화 현상에 대해서도 살핀다. ‘전두환 시대가 경제는 최고였다’는 신화에 대해 당시의 10% 넘는 경제성장률은 ‘삼저 호황’ 등 국제적 호조건 덕분이 크고, 독재자로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전땅크’라고 부르며 전두환의 통치 스타일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대통령이 경제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없는 시대, 민주주의가 강화된 시대의 반동이자 1980년대의 공동체적 유대감이 사라진 각자도생 시대가 드리운 그림자라고 분석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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