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만에 도착했다...조선독립 호소한 '파리장서' 프랑스에 공식 전달
일제시대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을 호소하고자 만들어진 ‘파리장서(巴里長書)’가 104년 만에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전달됐다. 파리장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 파리에서 열린 파리평화회의(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하려고 했던 독립청원서다.
칠곡군수, 프랑스대사관에 전달
김재욱 경북 칠곡군수는 18일 오후 서울 주한프랑스대사관을 방문해 필립 르포르(Philippe Lefort) 대사에게 파리장서 초안이 담긴 서책을 전달했다. 한문으로 된 파리장서 초안은 한글과 영어·불어로 번역됐고 서책에 파리장서와 칠곡 출신 독립운동가 회당(晦堂) 장석영(1851~1926) 선생을 소개하는 글도 담았다.
장석영 선생 현손인 세민(55)씨는 “후손으로서 파리장서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전달된 것을 매우 뜻깊고 기쁘게 생각한다”며 칠곡군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 군수는 르포르 대사와 면담을 통해 파리장서를 담은 서책을 프랑스 도서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한편 혹시 존재할 수 있는 파리장서 외국어 번역본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그동안 독립운동 핵심 자료인 파리장서가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100여 년 전 선조들의 염원을 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르포르 대사는 “프랑스 도서관에 파리장서가 보존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며 “파리평화회의와 파리장서 정신을 계승해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전문가 재능기부로 번역
파리장서는 유학자들이 파리에서 파리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것을 알고 세계 각국에 조선 독립 의지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장석영 선생이 초안을 작성하고 유학자 137명이 서명했다. 파리장서 초안 원본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다.
번역 작업은 104년 만에 파리장서가 전달된다는 소식을 접한 전문가들이 재능 기부를 해 이뤄졌다. 정우락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문으로 된 파리장서를 한국어로 번역했고, 이를 대구 프랑스문화원에서 본부장으로 근무했던 박선제(36)씨와 주한미물자지원여단 소속 변성원(48)씨가 각각 불어와 영어로 번역했다.
“조선 문제 고려해 달라”
파리장서에는 ‘근래 남의 생명을 해쳐가며 나라를 침탈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 침탈 이전 평화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파리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역시 만국의 일원으로서 피 끓는 심정을 토로한다. 조선 독립과 인류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조선문제를 고려해 달라. 그렇지 않으며 차라리 자진해 죽을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유학자 대표로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 선생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간 뒤 영문본 2000부와 한문본 3000부를 인쇄해 파리평화회의와 각국 공관, 중국 정계 등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전달된 외국어 번역본을 찾지 못했고 프랑스에도 공식적으로 파리장서를 받았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104년 동안 파리장서가 ‘공식 접수’ 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칠곡=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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