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힘들어" 한밤 NLL 넘었다…아이 포함 北 9명 귀순
정부가 이달 초 어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주민 9명의 신병을 확보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취학 아동이 포함된 이들 일행은 군의 신병 확보와 정보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귀순 의사를 밝혔다.
18일 군과 정보 당국에 따르면 지난 6일 밤 북한 어선 1척이 NLL로 접근하는 동향이 발견돼 집중 감시에 들어갔다. 당시 군 당국의 감시 장비에는 어린이가 포함한 10명 미만 인원이 식별됐다고 한다. 당국의 감시 속에 해당 어선이 밤 12시를 전후해 NLL을 넘어오자 해군 경비정이 투입돼 이들의 신병을 확보했다.
군 병력이 어선에 올랐을 때 9명으로 이뤄진 이들 북한 주민들은 명확하게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군 당국도 신병을 확보하면서 선박의 항적 등 당시 상황으로 미뤄 표류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현재 탈북민 조사 시설인 경기 시흥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군과 국가정보원 등 관계 당국의 합동신문을 받고 있다.
군과 정보 당국은 그동안의 합동조사를 통해 탈북민 전원의 귀순 의사를 최종 확인한 상태다. 신문 과정에서 이들은 "두 가족이 한 배로 한국행을 계획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한국행을 결정한 핵심 이유로는 생활고를 들었다고 한다. 북한 내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까지 발생하는 심각한 식량난 등이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의미다.
북한에서 식량 문제가 발생한 정황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북한 내 소식통 등을 인용해 "최근 북한 각 지방에서 식량이 떨어진 세대가 속출하고 있고 하루 두끼도 겨우 먹는 주민이 많다"며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북한 당국이 취한 국경 봉쇄와 통제 강화로 최근 북한의 식량 상황은 최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또 중국 세관 당국이 발표한 북·중 무역 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북한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은 부족한 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탈북민 모두의 뚜렷한 귀순 의지가 확인되면서 향후에도 이들의 인적 사항 등에 대해선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부 관계자는 “탈북민들의 신원, 입국 경로와 방식 등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신변 안전과 보호를 위해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특히 일부가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어쩔 수 없이 북한 당국이 탈북자 전체의 신원을 알게 되지만, 이번처럼 전원이 귀순할 경우 탈북자들의 신원을 철저히 보호해야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보복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번의 경우 군의 초동 조치 과정에서 일부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최소한의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정보당국은 이들의 신원을 비롯해 탈국 경로를 비롯한 북한 내 원래 거주지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인권 유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사실상의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라며 "탈북민들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선 추가적으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일가족이 어선으로 NLL을 넘어 귀순한 건 2017년 7월 일가족 4명 사례 이후 약 6년 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계가 삼엄한 접경 해안을 통해 일가족이 귀순을 결심할 만큼 북한 주민의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2009년 291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이다 북한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국경을 봉쇄한 2020년에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세 자리 수로 떨어졌다. 이후 국경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탈북자 수는 2021년 63명, 2022년 67명을 각각 기록하며 두자리 수로 급감했다. 그러다 지난해 분기별로 8~25명 수준이던 탈북자 수는 올해 1분기 34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윤석열 정부는 북한 주민을 난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헌법에 규정된 대전제에 따라 귀순의사를 밝힌 탈북민을 모두 수용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며 “국정원, 군, 통일부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한 합동정보조사를 통해 탈북 동기, 과정 등에 대한 확인이 이뤄진 뒤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탈북민들은 합동정보조사를 통해 귀순 의사가 확인되면 정착교육기관인 북한이탈주민정착사무소(하나원)에 입소해 3개월(12주) 간 사회적응 교육을 받는다. 정부는 교육을 수료한 탈북민들에게는 정착금과 취업장려금 등을 지원하고 전국 25개 하나센터를 통해 정착지에서의 조기 적응을 돕고 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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