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2023]무해한 지구를 만들고 싶어서…소비는 신념
MZ세대들 패션 아이템 인기
제로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
친환경 실천하는 이들의 핫플
MZ세대들의 소비=자기 신념
친환경 자체가 힙한 문화코드
미래소비자에 어필하기 위해
브랜드 가치에 '친환경' 담아야
2023년 4월 누데이크에서 신제품이 출시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누데이크는 젠틀몬스터에서 만든 디저트 브랜드다. 늘 실험적인 공간과 마케팅 아이디어로 트렌드를 선도해온 젠틀몬스터에서 만든 디저트 브랜드답게 누데이크의 케이크와 디저트는 화제의 중심이었고, 이번에 나온 신제품에도 관심이 쏠렸다. 신메뉴의 이름은 ‘벌스 케이크’. 군더더기 없는 새하얀 자태도 아름다웠지만 더 흥미로운 사실은 먹을 수 있는 초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얀 케이크 시트 위에 알 모양의 초콜릿 캔들이 얹혀져있다. ‘생일을 축하하고 난 뒤 초는 왜 버려져야 하는가’. 벌스 케이크는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근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에 있어 친환경은 필수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이키다. 요즘 흰 바탕에 나이키 ‘스우시’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을 어깨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2021년 나이키가 도입한 리유저블 가방이다. 원래는 종이백 사용을 줄이기 위해 구입한 물건을 담은 쇼핑백 용도로 제작되었는데 최근 인기가 폭발적이다. 리유저블 쇼핑백을 메신저백이나 크로스백 스타일로 리폼한 유튜브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이키 홍대 매장에서만 제공하는 희소한 디자인의 리유저블 백은 중고 거래 마켓에서 웃돈까지 얹어 팔린다고 한다.
국내 최초 제로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도 친환경을 실천하는 힙쟁이들에게 유명하다. 얼스어스에서는 제철 재료로 만든 케이크가 유명한데 테이크아웃을 하려면 직접 포장용기를 가져와야 한다. 처음에는 불친절하다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환경을 위한 사장님의 마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네모난 김치통, 유리 반찬통, 넓은 냄비 등 각양각색의 다회용기들을 인증한 사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득하다.
해방촌에 위치한 흠마켓은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못난이 농산물로 음식을 만든다. 끄트머리에 곰팡이가 피거나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콜리플라워가 근사한 샐러드로 바뀌고, 군데군데 멍이 든 사과가 얇게 저며져 파스타 면으로 만들어진다.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농산물을 구입할 수도 있는데, 농산물은 신문지에 포장된다. 소비자는 음식을 먹고 재료를 구입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중요한 점은 농산물을 판매하는 일종의 마켓이지만 동네 마트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무상자에 진열된 채소들, 삐뚤빼뚤 손으로 쓴 푯말, 넓고 감각적인 공간 등 유럽의 감성이 물씬 풍긴다. 실제로 흠마켓은 사진이 잘 나온다거나, 유럽의 파머스 마켓 느낌이 난다는 등의 후기가 많다.
그동안 쓰레기로 취급되었던 것을 새 제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는 브랜드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누깍은 교보생명과 함께 광화문 글판 소재를 재활용한 메신저 백을 내놓았다. 가방 끈은 자동차 안전벨트를 재활용했다고 한다. 재료 특성상 제품마다 디자인과 색이 달라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을 구매할 수 있다. 비건 패션 브랜드 마르헨제이는 2022년 초 쿼츠백을 선보였는데, 잼, 주스 등을 만들고 난 후 버려지는 사과 껍질의 섬유질에서 추출한 순수 펄프로 만들었다. 쿼츠백은 출시 한 달 만에 1만 점 이상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브랜드는 왜 친환경에 관심을 갖는가. 가장 중요한 배경은 환경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환경단체 글로벌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는 매년 1월1일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을 발표한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란 인류의 생태발자국이 1년간 지구가 생산할 수 있는 생태자원을 넘어선 날을 의미한다. 1971년 12월25일 이었던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갈수록 점점 짧아져 지난해에는 7월28일을 기록했다. 인류가 자원을 소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과거에 비해 환경이슈에 민감해졌다. 특히 향후 트렌드를 주도해나갈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환경민감도가 더욱 높다. 기후위기와 환경을 삶의 주요 가치관으로 삼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엠제코(MZ+Eco) 세대라고 부른다. 기후위기의 피해 당사자이자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야 할 주체라는 점에서 엠제코 세대에게 환경문제는 곧 나의 ‘생존의 문제’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제로웨이스트 실천인증 사례가 2019년 대비 20221년 8.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친환경 자체가 힙한 문화코드로 통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소비는 곧 정체성을 의미한다. 특히 MZ세대에게 소비는 단순한 물건 구매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coning out)의 수단이다. 제로웨이스트, 채식, 리사이클링 등이 소비의 대상이자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기호로 활용된다는 뜻이다. 친환경 소비는 SNS 인증의 대상이자 자랑거리가 된다.
이제 모든 브랜드는 어떻게 브랜드 가치에 친환경을 녹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미래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구호와 선언, 책임과 윤리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경쾌하고 힙한 놀이로서의 친환경. 가볍고 쉽지만 결코 거짓이 아닌 진정성이 기반이 되었을 때, 친환경을 멋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브로워는 ‘죽은 행성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기후위기와 사회문제들로 시장이 무너지면 그 누구도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해한 소비생활을 지향하는 브랜드의 노력과 소비자들의 선택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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