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그깟 맞춤법? 신뢰 전하는데 필수랍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감동적인가, 재미있는가, 유익한가. 대개 책은 이 중 하나를 목표 삼아 독자를 유혹한다. 한 가지만 공략해 목표를 달성해도 나름 성공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점에서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빅피시)’은 맞춤법에 관한 바른 지식을 전하는 학습서로, 생활에 꼭 필요한 맞춤법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정보에 ‘재미’가 맛깔나게 버무려져서다. 앞서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등의 책을 통해 특유의 재기발랄한 글쓰기 매력을 뽐낸 저자는 이번에도 재미난 유익을 선보인다. 삶의 현장에서 생활 맞춤법을 구사하는 독자들을 ‘쫓으며’ 올바른 맞춤법을 ‘좇는’ 이주윤 작가. ‘좇다’의 받침이 ‘ㅊ’임을 강조하며 ‘ㅈ’ 받침을 사용할 경우 무척이나 망측한 단어가 돼버린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조언하는 그를 지난 15일 마주했다.
-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은 맞춤법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책이다. 맞춤법을 주제로 책을 낸 계기가 궁금하다.
▲첫 책으로 수필집을 출간했는데 처참히 말아먹었다(웃음). 먹고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 담당 편집자에게서 맞춤법에 관한 책을 내보자고 연락이 왔다. 편집자가 출판사를 옮기면서 맞춤법을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책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 찾아보는 걸 놀이처럼 여겼으나 맞춤법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게 큰 부담이었는데, 샘플 원고를 출판사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해줘 출판하게 됐다. 출간 후 반응은 꽤 괜찮았다. 맞춤법 관련 일도 여러 곳에서 들어왔다. 그러다 지금의 출판사를 만났고 또다시 맞춤법에 관한 책을 내게 됐다. 편집자 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웃음).
- 맞춤법이란 주제로 책이 상당한 관심을 받았는데, 이런 현상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나.
▲사람들이 맞춤법에 관심이 없다기보다 어려워서 포기했던 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기존 맞춤법 책은 교수나 기자, 편집자가 쓴 내용이 대다수였다. 전문적이고 몹시 진지했다. 반면 저는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풀어냈다. 내가 어려운 건 독자도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갖고 쉽고 재밌게 설명하는 데 중점을 뒀다. 편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될 때는 과감히 문법을 포기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다행히 ‘맞춤법 책을 읽다가 웃음이 터질 줄은 몰랐다’ 등의 호평이 나와 마음이 조금 놓인다. 2016년 출간한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은 2만부가량 판매됐다.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은 출간한 지 두 달 정도 됐지만 곧 전작 판매량을 따라잡을 것 같다.
- 사실 맞춤법을 100%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국립국어원조차 상반된 의견을 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되갚다’이다. 국립국어원은 ‘도로’의 뜻인 접사 ‘되-’에 ‘갚다’가 합쳐진 꼴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접사가 붙은 말을 모두 사전에 등재할 수 없어 표제어로 선정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갚다’에 이미 ‘도로’의 뜻이 들어있어 접사 ‘되-’가 붙을 필요가 없다고도 밝히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어느 누리꾼이 이 점을 지적하자 ‘문법적 견해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한 기준을 드리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립국어원조차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일반인이 맞춤법을 어떻게 완벽하게 지키겠나. 어찌 됐든 ‘되갚다’의 표준어가 ‘대갚음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두고두고 대갚음할 거야!"라며 눈을 흘기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다.
- 혹 다른 언어와 비교했을 때 한글 맞춤법만의 특징이 있나.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고민되지만 ‘엉망진창인 띄어쓰기’를 말하고 싶다. 본래 한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으나 이를 불편하게 여긴 어느 외국인이 각 단어를 띄어 쓰는 영어씩 표기법을 한글에 도입했다. 다만 이는 한글에 그리 맞는 옷은 아니었다. 한글은 영어와 다르게 단어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아마 띄어쓰기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모두가 틀리기에 크게 창피할 일은 아니다.
- 학생이나 젊은 계층에서 고의적인 맞춤법 파괴가 널리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혹자는 이런 현실을 세종대왕께서 속상해하실 거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오히려 ‘내가 만든 언어로 이렇게 재미있게 놀고 있다니. 참으로 건전한 백성이로다!’ 하며 뿌듯해하실 것 같다. ‘멍멍이’를 ‘댕댕이’로 바꿔 쓰는 것처럼 고의적인 맞춤법 파괴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팔도비빔면’을 ‘괄도네넴띤’으로 바꾼 상품까지 나왔겠는가. 물론 정확한 맞춤법을 알아야 변주가 가능하기에 바른 맞춤법을 아는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 지금도 상황에 따라 맞춤법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력서 등에서 실수가 당락을 가르기도 하고, 이성 관계에서는 호감도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작가가 되기 전 간호사로 일했는데, 적성에 안 맞기도 했고 상사들이 무서워 출근하기가 겁이 났다. 다만 그분들이 작성한 업무노트를 보면서 점차 무서움이 사라지더라. ‘있슴, 없슴, 했슴’으로 도배된 노트를 볼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러다 보니 그분들 말에 힘이 실리지가 않더라. 작가가 된 이후 출간 제의 메일을 받을 때도 틀린 맞춤법이 있으면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수락이 망설여진다. ‘내 원고를 믿고 맡겨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깟 맞춤법 좀 틀리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신뢰를 전하는 데 바른 맞춤법은 필수다.
- 연휴때 ‘사흘’의 의미가 논란이 되곤 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저 역시 초등학생 시절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원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이란 내용에 "버스 요금이 만원이나 하냐"고 했다가 언니가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다. 요금이 만원이 아니라 사람이 꽉 차서 만원이라고 했던 것인데…. 어쨌든 그랬던 제가 이제는 맞춤법 책을 쓰는 작가가 됐다. 누구나 알아가면 된다. ‘사흘’의 ‘사’가 숫자 ‘4’와 발음이 같아 헷갈릴 수 있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로 이어지는 흐름을 알면 더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의미를 잘 모르면 면박 주는 대신 친절히 설명해 주자. 어린 시절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를 장난처럼 외우고 다녔던 우리 아닌가(웃음).
- 자주 틀리는 맞춤법에는 무엇이 있나.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맞히다’를 써야 하는 경우에도 ‘맞추다’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 아무래도 ‘마치다’라는 발음이 입에 붙지 않아서 그런 듯싶다. 그러다 두 단어는 엄연히 다른 뜻을 지닌다. ‘맞추다’는 둘 이상의 대상을 서로 맞댈 때 쓰는 말로, 흩어진 퍼즐을 맞추거나 몸에 양복을 맞추거나 사랑하는 사람끼리 입을 맞출 때 사용한다. 반면 ‘맞히다’는 하나의 대상이 어딘가에 꽂힐 때 쓰는 말이다. 주사를 엉덩이에 맞히거나 마른 화분에 비를 맞히거나 정답을 연필로 콕 찍어 맞힐 때 사용한다. ‘맞추다’는 입을 서로 맞대는 입맞춤을 생각하며 외우면 쉽다. Chu~♥니까 ‘맞추다’겠구나! ‘맞히다’는 ‘꽂히다’를 생각하며 외워 보도록 하자. 꽂히는 거니까 ‘맞히다’겠구나! 하는 식이다.
-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도 헷갈리는 맞춤법이 있나.
▲‘잊혀지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바른말은 ‘잊히다’이다. 굳이 ‘~어지다’를 안 붙여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이걸 어려운 말로 ‘이중피동’이라고 한다. 결이 같은 단어로 ‘보여지다’와 ‘쓰여지다’가 있다. 각각 ‘보이다’ ‘쓰이다’라고만 써도 충분하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국립국어원 답변을 검색하던 중 "아, 그래서 어쩌라고!"를 외치게 됐다. 피동 표현의 범위에 대한 논의는 견해차가 있으므로 보다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면 피동법과 관련한 서적이나 논문 등을 두루 참고하란다.
-맞춤법이 현실과 괴리된 부분도 있다는 지적은 줄곧 존재했다. 좀 더 쉽게 바뀔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신문에 기고하는 글을 쓰면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전철’이란 문장을 써놓고 멈칫했다. ‘가로지르다’라는 표현이 적확한지 궁금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 보니 ‘어떤 곳을 가로 등의 방향으로 질러서 지나다’라고 풀이됐길래, 확인차 국립국어원에 문의했더니 세로로 지나갈 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더라. 아니 그럼 ‘세로지르다’라는 단어를 등재하든가. 반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길이나 움직이는 물체가 어디를) 잘라 지나다’라고 풀이돼 있었다. 내 생각과 꼭 들어맞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보수적인 증조할아버지 같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개방적인 외삼촌 같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의지해 글을 쓸 때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증조할아버지가 중심을 잡아주셔야 가문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신문물도 적당히 받아들일 줄 아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셨으면 좋겠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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