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 놓은 사이 2살 딸 추락…합법적인 '죽음의 난간' 공포
지난달 16일 오후 1시 50분쯤 대구 수성구 한 호텔 비상계단. 건물 3층과 4층 사이 비상계단 난간 틈으로 두 살 여자아이가 떨어졌다. 아버지와 함께 계단을 통해 호텔과 연결된 주차장으로 향하다 아버지가 출입문을 열기 위해 잠시 손을 놓은 찰나였다. 22m 아래 지하 1층으로 떨어진 아이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고가 난 계단 난간 간격은 27㎝. 왜소한 성인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형태였고, 계단 중앙 통로는 추락 방지 그물망 등 안전장치 하나 없이 뚫려있었다.
수성구 조사 결과 해당 건물 계단 난간 간격은 17~29㎝였다. 난간 사이 간격은 ‘10cm 이하여야 한다’는 국토부 기준보다 넓었다. 다만 이 호텔은 2015년 해당 기준이 생기기 전인 2014년 2월 건축 심의를 신청한 건물이라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게 수성구 설명이다.
수성구 관계자는 18일 “사고 발생한 호텔은 개정된 건축법 적용대상이 아닌 데다 민간시설이어서 난간 등 안전 관련 시설은 호텔 측에서 관리하도록 한다”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호텔 측은 “매년 안전 점검을 하고 있지만, 문제가 없었다”며 “새로 생기는 관련 법이나 기준을 다 파악하기 어려웠다. 현재는 난간에 안전장치를 설치했다”라고 말했다.
2015년 건축법에 난간 간격 규정이 생겼지만, 건축한 지 8년 이상 돼 법망을 피한 이른바 ‘죽음의 난간’은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 실태를 조사해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울산 남구도시관리공단은 10년 전 준공된 남구 무거섬들공원공영주차장 3층 높이 비상계단 난간 간격이 30㎝라는 지적에 즉시 보수에 나섰다. 공단 측은 “관리하는 시설을 모두 조사하겠다”고 했다. 경북 경주 어린이 전용 시립도서관인 송화도서관 계단도 난간 간격이 30㎝ 정도로 넓다는 지적에 2019년 경주시가 나서 긴급 보수 작업을 했다.
실제 대구시가 여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지역 난간 전수조사에 나선 결과 299곳 중 182곳이 위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구시는 지난 17일 이 가운데 공공시설 69곳은 연말까지 안전조치를 하기로 했다. 민간 시설은 관련법이 개정된 후 건축 심의를 한 6곳은 즉시 시정 명령을, 법정의무가 없는 나머지 107곳은 시정 권고를 각각 내렸다.
부모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한 맘 카페에서는 대구 사건을 공유하면서 “보통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 짐이 많아서 잠깐 손을 놓을 때가 있는데 걱정된다” “키즈카페 등 아이들 관련 시설이 있는 곳만이라도 전국 모든 시설을 조사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시민단체는 “법적 의무가 아닌 곳이더라도 강력한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17일 성명서에서 “2015년 전 기준을 적용받는 민간시설은 법적 의무를 떠나 시민안전을 위해 개선할 수 있도록 강력한 행정 지도를 하고, 기한 내 안전조치를 하지 않으면 해당 건물 명단을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과규정을 통해 (2015년 이전 건축물도) 개정된 기준을 따르도록 관련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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