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대만 환도, 드디어 최남점에 도착하다
[최늘샘 기자]
대만 자전거 환도 22일째. 5일간 타이난의 180위안(한화 약 7700원)짜리 싱글룸에서 5일, 가오슝의 도미토리에서 하루를 지내고 오랜만에 텐트에서 아침을 시작한다. 여기는 핑둥현에 속한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차우저우(Chaozhou). 어젯밤 편의점에서 만난 중학생들에게 캠핑할 만한 장소를 묻자 인근 공원 잔디밭을 추천했다.
대만 13개 현(縣) 중 최남단 핑둥현에서도 남쪽 땅끝에는 어롼비 곶(Cape Eluanbi)과 대만최남점(Taiwan southernmost point, 最南點)이 있다. 지도를 살펴 보니 자전거로 거기까지 가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할 때 어려운 길로 산맥을 넘어야 한다.
▲ 대만 자전거 여행자의 지도 대만을 여행하며 종이 지도 두 장을 사용한다. 왼쪽 지도는 지명과 도로, 산인지 평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오른쪽 지도는 기차 노선을 확인하는 용도다. 대부분의 기차역에 와이파이와 전기, 정수기가 있어서 기차를 이용하지 않을 때도 기차역에 종종 들르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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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자전거 여행 대만 남부 핑둥현 최남점을 찾아 가는 길. 최남단을 찾아 가는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는 도로를 따라 끝없는 수평선이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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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평균 시속이 12킬로미터라는데, 구글지도의 속도 기준은 자전거 선수에게 맞춰져 있는 걸까. 내 자전거가 조그만 미니벨로라서 유난히 느린 걸까. 그렇게 땀을 흘리고 애를 썼는데 언제나 속도는 기대보다, 욕심보다 더디기만 하다.
느리게 더디게 마침내 도착한 최남점
저녁 8시 20분. 타이완 최남단 핑둥현 헝춘진 컨딩국립공원 지역에 도착했다. 번쩍대는 리조트와 호텔들, 도로를 따라 기나긴 야시장이 이어지고 대만 각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왁자한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캠핑할 장소를 찾아 헤매는 땀에 전 여행자 신세.
▲ 대만 최남단 핑둥현 헝춘진 컨딩국립공원 휴양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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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롼비 공원 화장실 옆 잔디밭에는 기적처럼 수도꼭지 하나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고 후다다닥 땀에 전 몸과 옷을 씻었다. 오늘의 이동 거리는 88킬로미터.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멀리 이동한 날이다. 느리니 더디니 힘드니 지치니 해도 결국 이곳까지 와 버리고 말았다.
새벽 세시, 강풍에 휘청대는 나의 20달러짜리 텐트에 누군가 손전등을 비추었다. 잠시 무서웠지만 살펴보니 대여섯명의 관광객들. 유명한 어롼비 등대를 촬영하러 온 사진 동호회 사람들이다.
▲ 대만 핑둥현 헝춘진 컨딩국립공원 대만최남점 기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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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동쪽으로 가는 기차가 닿는 팡샨까지 다시 북쪽으로 47킬로미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오지 않았다면 나중에 조금은 아쉬웠겠지.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후회하자고 여행자 친구가 그랬지. 최남점 마을에서 등교하는 학생들과 함께 승차한 완행버스는 다행히 팡샨까지 내 자전거를 실어 주었고 추가 요금도 받지 않았다. 팡샨에서 타이마리까지 깊은 터널과 산맥을 가로질러 기차는 서부에서 동부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대만 서부는 이모작이 가능한 평야 지역이고 중부와 동부는 3000미터 이상의 고산 봉우리가 240개나 되는 높은 산맥으로 이어진다. 2350만 대만 인구의 대다수는 서부에 거주하고 타이베이, 가오슝, 타이중, 타이난 등 대도시도 모두 서쪽에 자리한다.
▲ 대만 환도 자전거 여행 중 동부 풍경 타이마리에서 타이둥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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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마리 오토바이 가게 사장님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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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었다 조았다 적절한 균형을 맞추느라 자전거에서 몇 번을 내렸는지, 게다가 동해의 맞바람은 왜 그리 거센지, 평소의 3분의 1도 이동하지 못했다. 브레이크 수리 기술을 몸으로 깨달으며 대만 동부를 나아간다.
타이둥에서는 또 어디서 캠핑을 해야 하나. 공원을 서성이는 나를 못마땅한 듯 쳐다보는 아저씨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구했는데 너무나 친절하신 분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텐트 칠 장소를 알려주셨다. 어렵고 막막할 땐 도움을 구하자고 마음 먹는다.
▲ 타이둥 공원에서 만난 고마운 타이둥 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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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둥 캠핑 타이둥의 감사한 시민분이 알려주신 캠핑 장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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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자전거 환도 대만 남부 핑둥현 최남점을 찾아 가는 길. 최남단을 찾아 가는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는 도로를 따라 끝없는 수평선이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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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한 아메리카, 아라비아, 아프리카 여행기는 책 <지구별 방랑자>(2022, 인간사랑)로 출판되었습니다. 70여 군데 출판사를 돌고 돌아 마침내 출판된 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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