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인물]"축구 규칙도 몰랐다" 김민재 끌어들인 나폴리 구단주
마라도나 뛰었던 명문 구단 나폴리
2004년 파산하자 538억원에 전격 인수
직접 선수 스카우트…'철기둥' 김민재 영입
한국 축구 대표팀 수비수 김민재의 소속팀 SSC나폴리가 이달 초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에서 우승하면서, 구단주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회장이 주목된다. 나폴리의 우승은 해당 팀에서 마라도나가 뛰었던 1980년대 이후 33년 만이다.
194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데 라우렌티스 회장은 올해 73세로 사실 축구계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의 직업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다.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19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도 맡았었다. 아버지 루이지가 창립한 '필마우로' 회사를 물려받았으며, 코미디 영화 제작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 그가 어떻게 나폴리를 인수하고 팀을 우승까지 이끌 수 있었을까.
축구계에서 데 라우렌티스 회장의 행보는 2000년대 들어서 본격화한다. 1999년 나폴리를 인수하려고 1억200만유로를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어 2004년 휴가차 방문한 이탈리아 카프리섬에서 3700만유로(약 538억원)에 나폴리 구단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당시 나폴리는 파산하고 세리에C(3부 리그)까지 추락한 상황이었다.
나폴리 팬들은 데 라우렌티스 구단주에, 축구계 인사도 아닌 영화계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나폴리에는 해당 팀에서 활약했던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위한 사원이 있을 정도였으니, 팬들의 항의가 당연하다는 여론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데 라우렌티스 회장은 최근 가진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종잇조각 하나를 사려고 3700만유로를 냈다"며 "축구의 규칙을 몰랐을 정도였으나 영화와 스포츠를 합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중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로지 사업 목적으로 구단을 인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 라우렌티스 회장에게는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나폴리를 1980년대 마라도나가 뛰었던 영광의 시절로 재건시키겠다는 꿈이 있었다. 자신은 로마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이 나폴리 출신이라 나폴리를 정신적 고향으로 생각하며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그의 나폴리 인수는 스포츠 비즈니스를 넘어, 자신의 인생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꿈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나폴리를 인수한 데 라우렌티스 회장은, 구단을 현실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다. 당장 다른 억만장자 구단주처럼 여러 부서에 구단 운영을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영에 관여했다. 선수 스카우트 조직도 만들었다. 주로 변방 리그의 저평가된 젊은 선수를 영입해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나폴리 팬들은 불만이 많았다. 지난 5일(한국시간) 스포츠 매체 디애슬래틱과의 인터뷰에서 데 라우렌티스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이 우리가 계약한 선수들이 누군지 몰랐다"라며 김민재 등을 데려온 지난해 여름 이적 시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선수로 팀을 꾸린 것인데, 그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철기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김민재는 2019년 1월 중국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며 첫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중국 무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친 끝에 2021년 8월 튀르키예 페네르바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유럽 무대에 입성했다. 이후 지난해 7월 나폴리에서 러브콜을 받고 빅리그 무대로 뛰어들었다. 나폴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김민재는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여주며 2022~2023시즌 세리에A에서 33경기(2골 2도움)를 뛰면서 팀의 조기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김민재는 맨유 등 빅클럽들의 영입 시도를 받고 있다.
현재 데 라우렌티스 회장을 향한 나폴리 팬들의 시선은 의구심에서 명장으로 바뀌었다. 축구는 아예 몰랐던 영화제작자, 구단주가 나폴리 인수 3년 만에 팀을 세리에A(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여기에 더해 우승까지 했으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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