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쫓겨 일해도 배달료는 2000원 차이입니다

김창수 2023. 5. 1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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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시간과 노동자와의 관계에 따라 '일의 의미'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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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배달 노동자들.
ⓒ 연합뉴스
참 이상하기도 하죠. 왜 예비군 훈련만 가면 그렇게 점잖은 사람들도 삐딱하게 서 있고, 모자를 힙합하는 가수처럼 비스듬히 쓰고, 선배님, 선배님 깍듯이 불러주는 현역 군인들에게 장난질하고 시키는 대로 안 했는지 말입니다.

그 이유야 사람마다 다양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예비군복만 입으면'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상황에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닐 것입니다.

시간에 쫓겨 일한다는 것

배달 노동을 하게 되면 항상 시간에 쫓겨 일하게 됩니다. 배달을 시작했던 2020년을 떠올려보면 정해진 픽업 시간이나 전달 시간을 지나게 되면 시간이 빨간색으로 바뀌게 되는데, 은근 거슬리고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좀 상합니다.

차를 운전하든 자전거를 타든 비슷한 것은 '멘탈'이 안정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고의 위험도도 같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빨간색 글씨를 보는 순간 성격에 따라 다양한 감정이 들겠지만, 확실한 것은 결코 멘탈에 좋은 신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였는지, 어느 날부터 색상 변화가 없게 되었는데, 저는 이것이 굉장한 변화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이 변화는 노동조합이 주도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소비자 요청사항의 기본 문구가 "조심히 안전하게 와주세요"로 바뀌었는데 이 역시 노동조합 활동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간에 쫓겨 일한다는 것이 단지 감정의 변화만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헬멧을 쓰고, 배달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배달앱을 'ON'시키고 일하게 되면 생기는 나의 감정과 행동과 말의 변화를 되돌려 봤습니다.

첫째, 감정 기복이 심해집니다. 단 몇 분 차이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합니다. 운 좋게 신호 안 기다리고 건널 수 있을 때는 뭔가 운이 좋을 것 같다가도 조리대기에 걸려서 20~30분 허비하게 되면 내 앞에서 일하는 가게 사장님이나 노동자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나한테만 일부러 음식을 늦게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왜 이렇게 태평하지 싶은 마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납니다. 왜 남의 속도 모르고 저렇게 한가하지 싶은 거지요. 이렇게 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집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내 앞에 가는 자동차가 천천히 가면 휙 지나가면서 째려보기도 하고, 느리게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발걸음도 밉습니다.

누군가 한마디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맞짱 뜰 기세가 될 만큼 시한폭탄 감정이 됩니다. 그래서 종종 배달 노동자들 간에 혹은 다른 시민과 언쟁을 가끔 목격하게 되고 심지어는 멱살잡이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아마 배달만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싸움도 꽤 있으리라 믿습니다.

둘째,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자전거를 잠시 정차해놓을 때 웬만하면 지키는 것이 장애인 통행을 돕는 보도블록 위는 절대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장애인이 지나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것이 감수성 있게 노동을 하는 나만의 약속으로 정한 것이라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이 급하고 시간에 쫓기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납니다. 언젠가 배달 노동자가 온라인카페 게시판에 범칙금을 내게 됐다고 억울해하며 올린 사진이 있었는데, 주변 건물에 불이 나면 소방호스를 연결할 수 있는 시설물 앞에 오토바이를 정차했다고 범칙금을 물게 되어서 너무 원통해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야 그 순간에 불이 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을 겁니다. 거기에 오랜 시간 정차를 해둘 이유도 없었을 거고요. 그분도 일부러 악한 마음으로 그러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행동의 그 첫 시작은 시간의 주인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행한 결과입니다.

셋째, 일을 마치고 나면 제정신이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대여섯 시간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일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일하고 사무실에 자전거를 주차해놓고 헬멧을 벗고, 배달 앱을 'OFF' 시키면 무조건 얼마간은 소위 멍 때리듯 의자에 퍼질러 앉아 있어야 합니다.

몸은 먼저 왔는데 영혼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만큼 정신없이 일하는 것이 감정적인 소모도 심하고 심리적으로도 제대로 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노동인 것 같습니다.

배달 노동자가 사회와 더불어 일하는 방법

어떤 날은 정말 배달료 따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일하는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날씨가 매우 좋은, 그래서 다들 배달 안 시키고 봄나들이 갔을 법한 요즘 같은 때입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일할 때와 마음 급하게 일할 때와 배달료 계산을 해보면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습니다. 시급으로 환산했을 때, 2천 원정도일 겁니다.

이럴 때면 내가 왜 이 금액 더 벌려고 그렇게 감정 소비하며 일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하다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또 다른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그것은 길고양이들과의 만남입니다. 집에서 반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 항상 고양이 사료와 종이 접시를 챙겨 다니다(배달 가방이 아닌 자전거 앞에 달린 작은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우연히 만나게 되면 잠시 내려 사료를 챙겨주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되게 뿌듯해하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일하는 시간과 노동자가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노동자 스스로 느끼는 '일'에 대한 의미도 달라질 것입니다. 69시간 일하며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5분 단위로 픽업지와 전달지를 정신없이 다녀야 하는 노동자들이 '일'에 대한 보람과 가슴 벅참이 있을까요? 이렇게 일하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한 일을 지금의 정부가 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배달 노동자들이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약자들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콜사(Call死)'가 난무하는 요즘에야말로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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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 6월호 '올라잇'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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