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수 없는 오늘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 푸두체리의 거리 |
ⓒ Widerstand |
처음에는 우비를 입은 사람이나 잔뜩 젖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곧 우산을 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중에는 우산조차 쓰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뛰어서 들어오는 기색도 없습니다. 이제 비가 그쳤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다 보니 동이 트고 아침이 될 때까지도 금방입니다.
정말 밖에 나가보니 비는 거의 그쳐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볕이 들며 젖은 길까지 다 말랐습니다. 덕분에 습기는 좀 있지만 걱정했던 더위가 다 가셨습니다.
▲ 가로등의 모습도 독특하다. |
ⓒ Widerstand |
프랑스가 푸두체리를 식민지화 한 것은 1674년의 일입니다. 이후에도 인도 동해안의 여러 지역을 장악했죠. 물론 영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몇 차례의 전쟁을 거쳐 프랑스에는 작은 땅들만 남았습니다. 프랑스는 이 땅들을 모아 '프랑스령 인도(French India)'로 관리했습니다.
인도가 독립한 뒤에도 한동안 프랑스령은 남아 있었습니다. 1954년에 이 지역을 사실상 인도 공화국에 반환했죠. 2년 뒤인 1956년, 프랑스와 인도 사이에 조약이 체결됩니다. 이 조약에 따라 1962년에 프랑스령 지역이 법적으로 완전히 인도에 반환됩니다.
포르투갈이 지배했던 고아의 경우, 3,700㎢의 나름 큰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푸두체리는 20㎢도 되지 않죠. 지금도 고아는 주(state)로 승격되었지만 푸두체리는 연방정부의 직할지입니다.
▲ 푸두체리의 프랑스 총영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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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영향일까요. 푸두체리는 '오로빌(Auroville)' 공동체가 위치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로빌 공동체는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라는 철학자를 따르는 공동체입니다.
스리 오로빈도는 벵갈 출신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감옥 생활에서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은 그는, 출옥 후 영국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령인 푸두체리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칩거하며 수행을 이어갔죠. 그를 따르는 수행자도 늘어갔습니다.
스리 오로빈도는 1950년에 사망했습니다. 이후 오로빈도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의 정신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를 꾸리죠.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평등하게 생활하는 자급자족을 목표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오로빌입니다.
▲ 스리 오로빈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수행자 공동체(아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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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을 기반으로 자급자족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달리, 여전히 오로빌의 경제적 자립은 요원해 보입니다. 오로빌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여금도 납부해야 합니다. 오로빌 공동체가 부유한 은퇴자의 안식처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 푸두체리의 바닷가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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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푸두체리에 짧은 기간만 머문 뒤, 기차 시간에 맞춰 떠났습니다. 기차를 타고 잠깐만 달리면 푸두체리의 이국적인 모습은 사라집니다. 평범한 인도의 풍경이 넓게 펼쳐집니다. 푸두체리 역시 인도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풍경이지요.
▲ 큰 가로수가 늘어선 푸두체리의 거리 |
ⓒ Widerstand |
지금 결심하고 행동하기만 하면 현실과 배경은 쉽게 사라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도, 감정도, 역사도, 현재도, 이 공간까지도 그저 쉽게 지우고 다른 곳으로 바꿔낼 수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하지만 푸두체리에 남은 나이든 나무들처럼,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흔적들이 있습니다.
선언이나 결심으로 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지나가는 여행자를 마주합니다. 벽을 치고 담을 쌓는다고 현실을 지워낼 수 있었다면 좋겠죠. 하지만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는 않으니까요.
▲ 푸두체리의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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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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