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입양아의 긴 여정
[문종필 기자]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그 순간,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버려진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미안하다'는 편지조차 기대할 수 없다. 작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2022)를 눈여겨본 독자라면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에서 소개할 전정식(벨기에 이름은 '융')의 2023년 그래픽 노블 신작 <베이비 박스>도 이런 맥락 위에 놓여 있다.
▲ 피부색 꿀색 표지 피부색 꿀색 표지 |
ⓒ 문종필 |
본인 또한 정확히 무슨 이유로 입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해외로 입양된 수만 명 중에 한 명인 그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벨기에에 도착했다고 진술한다. 한 마디로 말해 한국 사회는 수많은 '아이'를 해외로 입양한 선진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입양된 아이들의 삶이 순조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인종차별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다. 버려진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은 입양아들만이 겪게 되는 성장통이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런 고민으로 인해 융이 겪었던 입양아들의 현실이다.
▲ 피부색깔 꿀색 106쪽. 피부색깔 꿀색 106쪽. |
ⓒ 전정식 |
작가는 이런 심미적 고통을 어떻게 만화 형식으로 표현하려 했을까? 우선 눈길이 가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무뿌리를 통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토양 질이 좋으면 깊숙이 뿌리가 뻗어 내려갈 수 있지만 질이 나쁜 토양에서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흔들거린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 또한 온전히 성장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 피부색깔 꿀색 385쪽. 피부색깔 꿀색 385쪽. |
ⓒ 전정식 |
무엇보다 단단한 뿌리를 둔 나무가 노란색 잎사귀를 떨어트리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흑백 톤을 유지했던 이 만화가 유일하게 노란색 톤을 통해 '의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양아였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연출된 이 장면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 피부색깔 꿀색 442쪽. 피부색깔 꿀색 442쪽. |
ⓒ 전정식 |
그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가을에 열매 맺은 '사과'와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융은 학교 식당에서 식권을 훔치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체육 선생님에게 발각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새엄마는 융에게 "넌 썩은 사과야!"라고 말하게 된다. 융은 이 말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양동이 속의 썩은 사과는 잘 자란 다른 사과도 썩게" 만든다는 새엄마의 말에 융은 위축된 것이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은 융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새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손쉽게 부정하게 됐다.
그러나 '나'를 온전히 응시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상황과 마주한다. 자신을 썩은 사과로 인식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는 아주 정상적인 사과였다. 단지 나는 같은 사과나무 태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구니 속의 사과들과 너무나 닮고 싶어 하던 그냥 다른 사과 였다"라는 고백처럼 '다르다'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은 결국, 부정하고 싶었던 '나'를 온전히 인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과정 이후 그는 고향인 한국을 용기 내 방문하게 된다.
▲ 베이비박스 표지 베이비박스 표지 |
ⓒ 융 |
이 만화의 주인공 '클레르'는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국인 부모님과 함께 살아간다. 부모님은 한국인일지라도 프랑스에서 먹고 나고 자랐으니 그녀는 한국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인으로 부르는 게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은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게 되면서 깨진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입양아였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자신을 키워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아픔과 동시에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된다는 통설을 반영이라도 하듯 스토리가 조금은 저벅저벅 하다.
이 만화 역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기에 앞선 전작과 내용적인 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앞선 작품이 솔직한 자전적 만화라면 이 작품은 픽션이 가미되었을 뿐이다.
만화가 특유의 '뿌리'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작가론의 측면에서 눈여겨볼 수 있으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뿌리를 찾고자 긴 여행을 떠났던 '클레르'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온전한 '나'로 성장한다는 맥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다만 만화적 요소로 접근하면 다소 상투적인 이런 줄거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 이 만화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만화적 연출인 '빨간색'이다. 클레르의 빨간 머리색, 클레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빨간색 음식, 클레르의 동생 윌리엄이 입고 다니는 빨간색 스코틀랜드 옷.
▲ 베이비박스 146쪽. 베이비박스 146쪽. |
ⓒ 융 |
이런 만화적 연출과 함께 읽는다면 '입양'이라는 다소 우울한 감정이 보다 더 진득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올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짠하지만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새롭고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동시대에 '입양'이라는 소재가 익숙할 수 있지만 지금 현재도 입양은 계속되고 있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연으로 입양을 간절히 바라는 예비 가족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이 텍스트를 꼭 함께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만화가의 이런 감각은 우리의 감정을 더욱더 세밀하게 수놓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타인의 작품을 읽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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