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균기자가 만난 사람]신검 받고 떠난 임성재
50m 벙커샷은 샌드웨지 보다는 피칭웨지로
작년에 결혼한 아내의 그림자 내조가 힘 돼
임성재(25·CJ대한통운)가 징병 신체검사를 받았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KPGA코리안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에서 5타차 역전 드라마를 쓴 다음날인 15일 오전이었다. 신검을 받은 뒤 임성재는 오후 비행기로 출국, 18일 밤 개막한 PGA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 출전했다.
임성재가 신검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군대를 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왜 이 즈음에 신검을 받았을까. 추측건대 오는 9월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우리금융 챔피언십을 마친 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아시안게임은 어떻게 보면 한 번밖에 없는 기회니까 개인전도 개인전이지만 4명이 집중을 잘해서 단체전도 우리가 금메달 따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조)우영이랑 (장)유빈이가 너무 잘하고 있다. 나랑 (김)시우 형도 믿음직한 후배 선수들이 있어 든든하다”면서 “후배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나와 (김)시우형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래서 신검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사냥을 위한 임성재의 배수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성재는 우리금융 챔피언십 개막에 앞서 아시안게임에 함께 출전하는 조우영과 장유빈에게 밥을 사면서 “너희들이 진짜 중요하다”고 독려했다고 했다.
그는 “다분히 계산된 것이었다. 부담이 있어야 긴장도 하고 또 긴장이 있어야 더 집중이 잘 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모처럼 꽤 길게 질의 응답을 시간을 가졌다. 스무 다섯 살의 보통 젊은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답변은 논리 정연했고 막힘이 없었다.
골프 테크닉 부분을 얘기할 때는 더욱 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올해로 5년째 접어드는 PGA투어 생활에서 터득한 내공의 발현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다. 승부의 결정타가 된 18번홀(파5) 세 번째 벙커샷이었다. 그는 50m 지점에 있던 볼을 핀 1.5m 지점에다 정확히 갖다 놓은 뒤 버디를 잡아 승부를 매조지했다.
임성재는 “50m 거리의 벙커샷은 PGA투어 선수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거리다. 그래서 긴 거리 벙커샷 연습을 많이 했다”면서 “그 느낌을 살려서 했는데 잘 맞아 떨어져 버디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놀랍게도 이 때 임성재가 잡은 클럽은 샌드웨지가 아닌 피칭웨지였다. 주말골퍼들을 위한 팁 차원에서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임성재는 “클럽이 길면 길수록 좀 두껍게 맞아서 거리가 좀 더 나간다. 그래서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좀 긴 클럽으로 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면 스윙도 무리하지 않고 탑핑을 방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긴장 상태에서 샌드웨지를 잡으면 매우 정확하게 쳐야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봤다. 다섯 발 안에만 붙이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붙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벙커샷에 애를 먹고 있는 주말 골퍼들이 새겨야 할 팁이다. 4년여만의 국내 대회 출전을 ‘화려한 외출’로 마무리한 그의 행보가 준 교훈은 또 있다. ‘장갑을 벗어 봐야 안다’는 골프의 속설을 입증한 것이다.
임성재는 PGA투어 2승에다 이번 우승으로 KPGA코리안투어서도 2승째를 거뒀다. 흥미로운 것은 4년전 첫 우승이었던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7타차 역전승, 이번에 5타차 역전승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임성재는 “시차적응이 덜 돼 마지막날 티오프할 때 피곤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러면서도 우승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서 “후반 들어 선두와 격차가 크지 않을 걸 보고 더욱 집중했더니 결과가 좋았다”고 했다.
‘역전의 명수’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은 또 있다. 자신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대회장을 찾은 갤러리의 응원이다. 임성재는 “첫날부터 많은 갤러리분들이 오셔서 저도 좀 많이 놀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PGA투어에서 그래도 잘해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제 자신도 좀 많이 뿌듯했었다”라며 “마지막날 티박스 뒤에 사람들이 꽉 차있는 것을 보고 매우 행복했다”고 말했다.
작년 대회 때 코로나19에 걸려 격리만 한 채 미국으로 돌아갔던 소회도 밝혔다. 그는 “오랜만에 국내 대회에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웠다”면서 “ 올해 이렇게 우승해서 작년에 안좋았던 일이 홀가분하게 날라간 것 같다”고 했다.
임성재는 지난해 12월에 뉴욕대 출신 재원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성재는 이번 우승을 포함해 올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를 아내의 그림자 내조 덕으로 꼽았다.
그는 “대회 때 내가 골프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준다. 약 5개월 정도 투어를 같이 하고 있는데 힘들면서도 항상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내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내도 많이 행복해야 할 것 같다”는 말로 부부애를 과시했다.
그는 국내 우승도 좋지만 이번 시즌 PGA투어서 빨리 우승하고 싶다는 속내도 밝혔다. 임성재는 “이번 시즌 한국 선수들이 잘하고 있다. 나도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라며 “한국 선수끼리 서로 격려해 주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시즌 1~2승은 더 할 것 같다”고 내다 봤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우승이 나에게는 좋은 영향이 될 것 같다. PGA투어는 하반기에도 큰 대회들이 많다”면서 “중요한 대회들이 많은데 이번 우승 기운으로 마지막 투어 챔피언십에 나가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러기 위해선 보완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그는 “롱게임 면에서는 드라이버가 10야드 정도 더 나갔으면 좋겠다”면서 “쇼트게임을 항상 보완해야 한다. 드라이버랑 롱라이언은 톱 선수들에 결코 뒤지지 않지만 쇼트게임은 다르다”고 했다.
세계랭킹 1~3위인 욘 람(스페인)과 스코티 셰플러(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에 대해 “대결하기 힘들다”고 쿨한 반응을 보인 임성재는 그 이유로 “멀리 똑바로 쳐서 티샷 다음부터는 나보다 짧은 클럽으로 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멀리 치는 로리와는 드라이버샷이 30야드나 차이가 난다고 했다.
‘어떤 선수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임성재는 “한국을 대표해서 PGA투어서 칠 수 있을 때만큼 치고 싶다. 20년 이상 롱런하고 싶다”면서 “나를 능가하는 후배들이 오겠지만 계속 우리나라 출신 선수 중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도록 항상 노력할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그는 자신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임성재는 “콘페리 큐스쿨에 무조건 빨리 젊었을 때 응시해야 한다. 20살, 19살 때 도전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 이유로 그는 “1, 2년간 성적이 안좋더라도 미국에서 계속 훈련하고 콘페리투어 큐스쿨 등에 출전하다보면 실력이 늘 것”이라며 “그러면 점점 미국에 더 적응이 되면서 빨리 PGA투어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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