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제도는 불효자 양성법"… 헌재 공개변론서 드러난 쟁점들
법무부 "가족 간 유대 유지·갈등 완화 위한 입법적 결단"
단순위헌 내지 헌법불합치 결정 나면 파장 커질 듯
자녀와 배우자 등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해주는 민법상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17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청구인 측은 현행 유류분 제도가 '불효자 양성법', '분쟁 유발법'이라고 지적하며 시대 변화에 맞춰 이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일부 제도의 수정·보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아직은 유지돼야 할 제도인 만큼 헌재의 위헌 선언이 아닌 법 개정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변론은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이 문제가 된 2건의 헌법소원 병합 사건의 각 청구인 측 대리인(변호사)들과 이해관계인으로 출석한 법무부 측 검사들, 그리고 양측의 참고인으로 나온 민법 전문가(로스쿨 교수)들이 차례로 의견을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특히 각 발표자의 의견 발표가 끝날 때마다 헌법재판관들이 궁금한 사항을 질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핵심쟁점이 무엇인지가 대부분 드러났다.
청구인 측 "불효자 양성법, 분쟁 유발법"… "과잉금지 원칙 반해 위헌"가장 먼저 청구인 측 대리인으로 발언대에 선 강인철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현행 유류분 제도는 헌법 제37조 2항이 정한 기본권 제한의 입법적 한계를 일탈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37조 2항은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구체적으로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한 법률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해 위헌적인 법률로 평가된다.
강 변호사는 "앞서 헌재가 유류분 제도의 목적으로 제시한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청산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보장이나 학계에서 논의되는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 남용 방지 등 목적과 관련해 평균 수명이 연장돼 성년 자녀가 많은 상황에서 과연 성년 자녀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하는지 의문이고, 피상속인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는 사후부양의무를 인정할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청산의 경우에도 가산(家産)이라는 관념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으며, 피상속인과 유대관계가 단절된 상속인의 경우 상속에 대한 기대를 보장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이를 보장하는 게 국민의 법감정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피상속인의 헌법상 사유재산 처분의 자유가 상속인의 상속권에 우선해야 하고, 피상속인의 잔여재산만 상속재산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류분 제도는 상속제도의 본질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 변호사는 "유류분 소송을 진행하면서 실무상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얘기해줄 수 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유류분 제도는 불효자 양성법이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이라고 답했다.
그는 "(유류분 제도가) 분쟁을 오히려 유발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제도가 없는 미국 같은 경우 과연 생전 모습을 안 보이다가 부모가 사망한 뒤 갑자기 나타나 상속분을 요구하는 이런 분쟁이 자녀 사이에 일어날지 모르겠다. 분쟁을 완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쟁을 조장하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청구인 측 발표자로 나선 정호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구체적인 사레를 들어가며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증여받은 수증자가 제3자인 경우에 드러나는 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그는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증여를 한 경우 증여가 이뤄진 시가와 관계없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시키도록 한 민법 제1114조 단서의 위헌성에 대해 "시간순으로 순차적으로 증여해서 마지막 증여재산만 산입되도록 함으로써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상속인의 재산이 충분한 상태에서 먼저 증여를 받은 상속인의 경우 유류분을 청구할 권리를 가진 다른 상속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증여가 이뤄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반환의무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 변호사는 "유류분에 관한 민법 조항들은 1979년 1월 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 이뤄진 증여는 모두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이 된다"라며 "10년, 20년, 최대 40년 전 증여라도 피상속인이 사망해 상속이 개시된 시점을 기준으로 사후에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유족 간 갈등 완화 위해 필요… 입법적 결단"이해관계인인 법무부 장관을 대리해 나온 법무심의관실 김영민 검사는 먼저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계기가 된 유류분 소송 사례를 설명했다. 이번 헌법소원 사건은 두 건이 병합돼 심리되고 있다.
하나는 사망한 어머니로부터 생전에 부동산을 증여받은 며느리와 두 손자를 상대로 딸들이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재산을 기부한 장학재단을 상대로 자녀들이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다.
김 검사는 "1997년 민법 개정으로 도입된 유류분 제도는 유언의 자유와 친족 상속권의 타협의 산물"이라며 "상속 재산 중 일부를 유족의 몫으로 남기기로 한 입법적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검사는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과 상속인 유족들의 가족 간 유대의 유지 또는 갈등 완화를 위해 필요하다"라며 "만일 유류분 제도가 없어질 경우 상속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훨씬 더 극단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적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김 검사는 '국회에 개선 입법이 발의된 게 있는지'를 묻는 재판관의 질문에 "법무부는 1인 가족이 늘어나고 형제자매 간의 관계가 약해진 측면을 감안해 형제자매를 유류분권리자에서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을 2021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고 답했다.
또 그는 "현행 유류분 제도가 너무 경직돼 있다는 지적, 가령 부양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상속인까지 보호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과 관련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학대했을 때 다른 상속인 등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청구인 측 참고인 "기여분 고려 안 돼 문제"… "원물반환 가액반환으로 바꿔야"양측 대리인에 이어 청구인 측 전문가 참고인으로 나선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류분에 관한 민법 규정 중 준용규정인 제1118조가 기여분에 관한 조항(제1008조의2)을 준용하지 않는 점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유류분 반환 청구를 당한 상속인이 피상속인과 동거하며 부양하는 등 기여한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취지다.
그는 "1990년 기여분 제도 신설에 따라 공동상속인들 간의 상속재산의 형성 유지에 대한 청산 기능은 유류분에서 기여분으로 이전됐다"라며 "기여상속인에게 정당한 청산을 보장하지 않은 채 비기여상속인에게의 유류분 반환만 강제한다면 피상속인과 가족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유인이 사라진다. 또 기여상속인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려고 했던 피상속인의 기대도 무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유류분이 기여분 청산의 장애가 되면 오히려 가족의 연대를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민법상 유류분 반환 시 '가액반환' 대신 '원물반환'을 원칙으로 정한 것의 문제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해줄 수 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계산이 들어가면 복잡해지니까 심플하게 말씀드리면 피상속인이 생전에 부동산이나 주식을 증여했을 때가 대표적"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가 살던 집을 생전에 장남에게 증여하고도 사망할 때까지 증여한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가 사망한 뒤에 배우자인 어머니와 함께 살아주기를 바라고 증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원물반환을 고집하면 다른 공동상속인들이 유류분 반환을 청구했을 때 부동산의 공유지분을 넘겨줘야 한다. 이 경우 다른 공동상속인이 공유 지분권자로서 사용수익권을 주장한다든가, 제3자에게 지분을 팔아버릴 경우 '내가 죽어도 아들이 아내를 죽을 때까지 보살펴줬으면'하는 아버지의 뜻은 실현되기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을 증여한 경우 단순한 주식이 아닌 특정 기업의 승계 의사를 밝힌 경우일 수 있는데, 이를 다른 상속인에게 반환하게 될 경우 주식을 기초로 이뤄지는 경영권 행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돼 재산 처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원물반환 원칙은 프랑스와 일본법에서 유래했는데, 프랑스도 2006년 이미 가액반환으로 전환했고, 일본도 2018년 상속법대개정을 통해 가액반환으로 전환했다. 독일은 처음부터 가액반환을 원칙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과 관련된 재판관의 질문에는 ▲유류분 제도를 강제하고 사적자치를 통해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안 준 것 ▲유류분을 산정할 때 공동상속인과 제3자를 구별해서 비합리적으로 차별하는 것 ▲기여상속인을 유류분 산정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또 현행법에는 공동상속인의 경우 언제 이뤄진 증여까지 유류분 청구의 반환 대상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기간의 제한이 없는데, '상속이 개시되기 전 10년' 정도로 기간을 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현 교수는 "공동상속인의 경우 증여를 받은 시기에 관계 없이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시키는 것은 조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대법원의 해석을 통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반론은 있겠지만, 단순한 해석문제가 아니라 법규정 자체의 문제라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유류분 계산이 무척 복잡한데 현재 민법은 겨우 7개의 조항을 두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며 "따라서 해석론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헌재가 이렇게 대법원의 해석 문제라고 보게 되면 당사자들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헌재는 '기여분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아직은 합헌;이라며 두 차례나 사법부의 재량을 존중해주셨다"며 "그래도 대법원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고 이제는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법무부 측 참고인 "수십년 이어져 온 제도… 법 개정으로 해결해야"이해관계인 측 참고인으로 발언대에 선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구인 측 주장하는 것처럼 유류분 제도의 입법취지가 몰각됐는지 의문"이라며 "위헌이라는 평가가 아닌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반박했다.
서 교수는 "물론 사전포기제를 두지 않은 것, 원물반환을 원칙으로 하는 것 등이 입법의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단점으로 볼 수 있지만, 장점일 수도 있다"라며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끼칠 것을 알았다는 의미의 '양 당사자의 해의(害意)의사'라는 단어의 모호성이 있지만 이는 채권자취소권에서의 '사해행위'나 제3자 보호 규정에서의 '중과실' 등 주관적 요건을 가미한 다른 조항에서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류분 제도 자체가 수십년 운영돼 온 점을 고려하면 일부 문제가 된 사건들이 소송으로 이어졌지만,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은 수많은 경우 유류분 제도가 기능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양측 참고인들의 발표에 이어 청구인과 이해관계인 양측의 최후진술을 마지막으로 이날 공개변론은 마무리됐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공개변론은 양측 대리인의 발표시간을 각 10분, 참고인의 발표시간을 각 15분으로 제한했음에도 재판관들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오후 4시41분에야 종료됐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우리 재판부는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들을 두루 참작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법조계 "이번엔 다른 결과 가능성"… 단순위헌 결정 시 파장 클 듯법조계에서는 앞서 민법상 유류분 조항에 대해 두 번의 합헌 결정을 한 헌재가 이번에는 다른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법무부도 인정할 만큼 현행 제도의 문제점들이 분명 존재하는 데다가,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와 비교해 여성의 지위가 현격히 상승하는 등 시대가 크게 변했다는 사실을 헌재도 고려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헌재가 현행 민법상 유류분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더라도 단순 위헌 결정을 통해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결정을 할지는 미지수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처벌조항에 대한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소급하지 않고 장래효만 갖지만, 40년 이상 유지돼 온 유류분 제도가 한순간에 사라졌을 때 예상되는 혼란과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헌재가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일부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도 국회가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효력을 잠정적으로 유지시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경우 이번 헌법소원 사건을 청구한 청구인을 비롯해 현재 유류분 청구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도 현행법에 따라 증여받은 재산을 반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내지 3분의 1에 대한 우선적 권리… 사망 1년 전 증여까지 반환 대상유류분 제도는 유족의 생존권 보호 등을 위해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민법에서는 1순위 상속인인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아들, 딸, 손자 등)과 배우자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2순위 상속인인 직계존속(부모, 조부모)과 3순위 상속인인 형제자매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민법은 유류분 산정(계산)의 전제가 되는 기초재산에 포함돼 유류분을 침해당한 상속인에게 반환해야 할 증여의 대상을 상속이 개시되기 전 1년 이내에 이뤄진 증여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증여를 한 피상속인과 증여를 받은 수증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서도 증여가 이뤄진 경우(쌍방 해의) 기간의 제한 없이 모두 반환 대상이 된다. 공동상속인의 경우 기간의 제한이 없다.
각 상속인은 피상속인이 남기고 간 재산에서 실제 상속받은 상속액이 유류분에 못 미칠 경우 이를 생전 증여나 유증(유언으로 하는 증여)을 받은 다른 상속인 혹은 제3자에게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유류분 제도가 이슈가 됐던 건 2019년 고(故) 구하라씨가 사망했을 때였다. 당시 20여년 전 가출했던 구씨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상속분을 요구하면서 대중의 공분을 샀지만 법적으로 친모의 권리행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구씨의 친모는 구씨의 오빠와 4대 6의 비율로 구씨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당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 상속권을 박탈 혹은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이 논의됐지만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선 아직 계류 중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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