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탈진실 이후는 탈윤리?
“갈수록 확대되는 부동산, 금융 등 자산 불평등 심화를 막고 공정사회를 실현한다.” 민주당의 강령에 나오는 문장이다. ‘강령’이란 그 당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한 문서다. 어쨌든 이 문서에 따르면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모름지기 부동산이나 금융을 통한 자산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어떤 것을 주장하는 이는 이른바 ‘공약의 부담’(burden of commitment)을 진다. 김의겸 의원은 과거에 흑석동에 건물을 사서 시세차익을 챙기려다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왜? 그것이 민주당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일을 한 그가 지금 멀쩡히 민주당의 주전 선수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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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약의 부담’마저 외면한 민주당
‘쇄신 의총’선 도덕성 포기 발언도
총 15년 집권하며 기득권층 변질
윤리 기준마저 저버리는 단계로
」
당 대표는 어떤가? 대선 패배로 당 지지자들이 집단 멘붕에 빠져있을 때, 이 강철 멘탈의 소유자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2억3000만 원어치 방산주를 사들였다. 얼마 후 국회의원 신분이 된 그는 희망 상임위 1순위로 국방위를 택했고, 방산주 보유 사실이 드러나자 등 떠밀리듯이 보유 주식을 매각하게 된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김남국 의원. 그는 한때 60억에서 100억에 달하는 가상자산을 보유했단다. 정치자금법, 조세포탈, 범죄수익은닉 등 법적인 문제는 접어 두자. 김 의원이 일하지 않고 번 그 거액의 가상 자본의 실체는 결국 빚까지 져가며 코인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수많은 젊은이의 피 같은 돈이다.
입으로는 ‘자산 불평등을 막아 성실히 일만 해도 먹고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이들이 저 혼자 사다리의 가장 높은 쪽에 오르겠다고 자산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일만 골라서 해 왔다. 하긴, 남의 자식은 개천의 ‘가붕개’로 묶어놓고 제 딸만 용 만들려고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했던 그 장관을 옹호했던 정당이 아닌가.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쪽이 더 도덕적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7.6%가 국민의힘을, 21.3%가 민주당을 선택했다. 거의 더블스코어다. 그런데도 민주당원의 66.2%는 여전히 민주당의 도덕성이 더 낫다고 답했다. 당원의 현실 인식이 일반 국민의 그것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도덕성의 역전이 일어나니 그 당 의원들이 망측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총선에서 유능해서 이겼지 도덕성 때문이냐.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양이원영 의원). “왜 이렇게 수세적인가. 도덕성 따지다가 우리가 맨날 당한다”(박성준 의원).
한마디로 도덕성 포기 선언이다. 이게 무려 ‘쇄신 의총’에서 나온 말이란다. 근데 뭔가가 뒤집힌 것 같지 않은가? 과거에는 ‘보수는 썩어도 유능한 맛, 진보는 미숙해도 깨끗한 맛’이라고 했었다. 근데 이 관계가 서로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총 15년을 집권하면서 민주당도 기득권층으로 굳어졌다는 얘기다.
하긴, 진보라고 특별히 도덕적이었겠는가. 그저 권력이 없어 부패할 기회가 없었을 뿐. 진보라고 특별히 무능했겠는가. 그냥 집권을 못 해 능력을 기를 기회가 없었을 뿐. 문제는 자신들의 ‘존재’가 변했음에도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에 가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우리 눈에 ‘위선’으로 비치는 것이다.
‘조국 사태’를 통해 민주당은 ‘탈진실’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번 ‘김남국 사태’를 통해 민주당이 보여준 것은 ‘탈윤리’라는 또 다른 현상이다. 탈진실이 허위가 사실의 행세를 하는 현상이라면, 탈윤리는 부도덕이 도덕의 행세를 하는 현상이다. 탈진실과 탈윤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탈진실의 단계에는 윤리 기준이 살아 있다. 그래서 제 편이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는 것이다. 탈윤리의 단계에선 윤리 기준마저 포기된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아예 기준을 물구나무 세우는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김남국 의원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청문회 자리에서 수차례 코인 거래를 했다. 결국 청문회장에 앉아서도 그의 머릿속은 억울하게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오르내리는 코인 시세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얘기다.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그런 그를 손혜원 전 의원은 이렇게 평가한다. “김남국처럼 정직하고 정의롭고 사심 없는 친구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 지지자들이 따라 외친다. “미래의 대통령감 김남국을 살려내자.” 부도덕한 그가 ‘정직하고 정의롭고 사심 없는’ ‘미래의 대통령감’이라는 것이다.
가치와 목표를 잃은 정당에 남은 것은 적나라한 유물론. 양이원영 의원은 이재명 대표 재신임을 주장한 양기대 의원을 비난한다. “본색을 드러냈다.” 왜 그랬을까? 최근 그는 양기대 의원의 지역구로 주소를 옮겼다. 공천에서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 아니라 대표님. 현재 민주당은 이런 말종들의 이익 공유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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