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DNA와 가야금줄
물려받은 성격이나 행동 양상을 말할 때 DNA란 단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과학용어가 일상어가 된 사례다. DNA는 놀라운 고분자이다. 인간의 DNA는 염기 32억개가 1m 길이로 연결돼 있다. 이것이 차곡차곡 접혀 10만분의 1m 크기 세포핵 안에 염색체의 형태로 저장되고 세포 분열 때마다 복제된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또는 온갖 질병들의 원인이 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DNA 안에 정말 모든 유전정보를 담을 수 있을까.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를 비교하면 96% 이상 동일하다. 이러한 작은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를 나눌 정도면, DNA가 인간 개개인의 차이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우리는 서로 잘 구분할 수 있지만, 무리 지어 있는 펭귄을 보면 다 똑같아 보인다. 반대로 펭귄이 볼 때 인간은 다 똑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염기쌍 32억개를 단위로 표시하면 3.2기가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의 인터넷 월 데이터 사용량보다 적다. 결국 DNA 안에 개개인을 구분하는 모든 정보를 다 담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DNA의 어떤 부분을 어떤 순서로 얼마나 많이 읽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드라마와 웹툰을 조합해 새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아마 월 1기가로도 충분하리라. DNA의 또 다른 측면은 이중나선 구조다. 세로로 놓고 볼 때 오른쪽으로 감겨 올라가는 오른손 방향 나선이다. 공교롭게 가야금줄도 오른손 방향 나선이다. 이 줄을 시간에 따라 어떻게 뜯고 튕기고 농현하는가에 따라 천차만별 소리가 난다. 가야금을 잘 타려면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한다. 음악에는 생명이 있고 인생을 반영한다고 한다. 생긴 지 1500년 이상 지난 가야금의 몸통은 세포이고, 줄은 한국 음악의 DNA 같은 느낌이다. 미결정의 미래가 현재의 판단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평범해 보이는 진리에 평범치 않게 연관돼 있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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