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닐리와 페니

박형수 2023. 5. 1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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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국제부 기자

조던 닐리(30)는 뉴욕의 유명인사였다. 타임스퀘어 근처에서 마이클 잭슨처럼 차려입고 춤추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춤 실력보다 지하철 난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2016년엔 지하철 여직원이 혼자 일하던 사무실 문을 내리치며 “죽이겠다”고 위협한 뒤 사라졌다. 2021년엔 하차하던 67세 여성을 이유 없이 주먹으로 때려 코뼈를 부러뜨렸다.

닐리는 정신질환이 있는 노숙자로, 10년간 마약·구타 등으로 40번 넘게 체포된 적이 있어 뉴욕시의 ‘긴급 지원이 필요한 노숙인 50인’ 명단에도 올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뉴욕 거리와 지하철을 배회하는 전형적인 정신질환자”라 전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닐리는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웠다. “배가 고프다. 감옥에서 종신형을 받아도 좋고 죽을 준비도 됐다”며 소리 질렀다. 승객들은 불안해했지만 닐리를 말릴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닐리의 목을 누르고 제압했다. 해병대 출신의 백인 청년 다니엘 페니(24)였다. 그는 군에서 모범 메달 등 여러 번 상을 받았고, 전역 후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 중이었다. 페니가 제압한 지 2분여 만에 닐리는 사망했고 페니는 2급 살인으로 기소됐다.

페니는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려던 의인일까, ‘배고픈 취약계층’에 과잉 반응한 살인자일까. 미국 진보 진영은 페니를 “살인자”라며, 그의 옹호자들을 “역겹다”고 일갈했다. ‘백인의 흑인 살해’라는 인종차별 논란도 불붙었다. 반면 보수는 그를 “지하철 영웅”이라 치켜세우며 “그가 처벌받으면, 앞으로 미국에선 누구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거나 범죄 행위를 막으려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뉴욕타임스는 ‘법치의 실패’라 지적했다. 정신질환자를 보호조치 없이 지하철에 탑승하게 두고, 소란을 피워도 저지하지 않았으며, 승객 안전 확보에도 소홀한 ‘제도적 구멍’이 페니 같은 시민의 개입을 불렀다는 의미다.

뉴욕시엔 조현병·우울·양극성 장애 등 중증 정신질환자가 20만 명이 넘고, 이 중 5%가 노숙자다. 대다수 뉴욕 시민은 지하철 등에서 이들이 던진 주스병에 맞거나 머리채를 잡히는 등 괴롭힘을 당한 경험을 호소한다. ‘닐리의 죽음’을 통해 시민이 원한 건 페니의 악마화도 영웅화도 아닌 ‘공공의 역할’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박형수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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