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관중(管仲)의 우정과 대의
학회에서 나라 장래를 걱정하던 중에 누가 우리나라의 정체(政體)를 “대통령 격노(激怒) 중심제”라 하기에 나는 한술 더 떠서 “대통령 복수(復讐) 중심제”라고 응수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대통령만 바뀌면 무슨 이유인지 지도급 인사 여남은 명이 자살하거나 의문사를 겪었다. 백 명 정도가 처벌을 받고 형량을 합치면 대략 징역 200년 정도가 된다.
육군 대장이 당번병에게 구두를 닦도록 하고 꽃밭에 물을 주게 한 것이 병사의 인권을 유린한 죄로 몰려 구속된다면 이는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니다. 권력을 잡아 이미 승자가 됐으면 가슴이 넓어야 하는데, 한국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일신의 호강과 복수에 중요한 가치를 뒀다.
국가의 장래는 아내가 전용기 타고 가고 싶어 하는 유적지 방문보다 뒷전에 밀렸고, 민생은 자기가 기르던 개의 사룟값만 못했으며, 나라는 퇴임 뒤에 살 집터 마련만 한 가치도 없었다. 왜 그렇게들 사는지.
중국 춘추전국 시대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의 운명이 가까워졌다는 말을 듣고 환공(桓公)이 그를 찾아가 “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누가 그 자리를 이을 만합니까”라고 물었다. 관중이 환공의 뜻을 되물으니 환공이 “포숙(鮑叔)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그 말에 관중은 “그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토록 절친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미담을 낳은 포숙을 관중이 거절하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남의 허물을 평생 기억하기(人之過 終身不忘)에 재상 재목이 아닙니다.”(『열자(列子)』 역명편(力命篇))
정년퇴직하며 연구실을 비우면서도 이렇게 버려야 할 것이 많은데, 일생을 마칠 때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버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원한이다. 그것을 가슴에 껴안고 살다 보면 내가 다친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금중인 한국 축구 국대 손준호…중국 감방에 5년 갇힐 수도" | 중앙일보
- “연 생산 30만마리, 재고 10만마리”…이 공장 상품은 '반려견' [말티즈 88-3 이야기①] | 중앙일보
- “동지”라면서 시너 뿌렸다…4반세기 거리 떠도는 민노총 | 중앙일보
- 미성년자와 수차례 성관계한 경찰…들키자 "합의된 관계" | 중앙일보
- 문틈 사이 들어온 철사로 문고리 ‘철컹’…"누구세요" 묻자 도망친 남성 | 중앙일보
- 송혜교·한소희 '자백의 대가' 출연 불발…PD까지 하차, 무슨 일 | 중앙일보
- 가출 친모가 유산 40% 차지…고 구하라 울린 '유류분' 헌재 올랐다 | 중앙일보
- "中갑부들 바쿠가이 시작했다"…日료칸 싹쓸이하는 그들, 왜 | 중앙일보
- 고통 죽인다? 사람 죽였다…50만명 죽음 부른 억만장자의 '약' | 중앙일보
- "캐비넷에 주사기"…'필로폰 투약 혐의' 남태현·서민재 구속영장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