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즐거움으로 예술을 구한 여성들
Q : 엘르 반갑습니다. 박론디·박보마·우한나 작가의 그룹전 〈즐겁게! 기쁘게!〉가 작고한 네오아방가르드 예술가 하이디 부허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과 함께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죠. 큐레이터이자 하이디 부허 전문가로 알려진 추스 마르티네스가 기획한 전시입니다. 그야말로 운명적 만남 같아요. 하이디 부허라는 아이코닉한 작가에게서 어떤 동시대성을 발견하나요.
A : 우한나(이하 한나) 하이디 부허의 작업 그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줘요.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이거든요. 그녀가 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이번 전시에 함께한 론디 씨, 보마 씨 그리고 제 작품 역시 한국에서 계속 작업하기에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이디 부허의 작업에 쓰인 재료들은 연약하고 예민해요. ‘프래질(Fragile)’하죠. 판매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보관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거예요. 저도 그 두 가지 문제가 종종 작업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 ‘하이디 부허가 힘들었겠구나.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해냈네’ 싶어요. 결국 이렇게 아시아 회고전도 열게 됐으니.
A : 박보마(이하 보마) 동감해요. 하이디 부허는 다양한 차원의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작가예요. 조금 ‘점프’하는 이야기이지만, 물성적 부분에서 요즘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요소도 있다고 느껴요. 펄리(Pearly)하고 글로이(Glowy)한…. Y2K 감성이 작품마다 스며 있는 것 같아요. 나비나 잠자리 같은 요소도 재미있게 다가올 거예요.
Q : 엘르 하이디 부허의 예술이 지닌 가장 명확한 주제는 해방입니다. 그녀는 40년대에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에서 당시 여학생들에게 ‘미래의 가정주부에게 유용한 기술’이 될 것이란 이유로 권장하던 의상 제작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사회가 여학생에게 권장한 기술로 자신만의 해방을 이룬 것 같아요.
A : 한나 전 하고 싶은 걸 곧장 하지 못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어요. 물론 하이디 부허 역시 여러 번 숙고했겠지만 불현듯 생각날 때 하고 싶은 걸 해버린 작업이 많아 보여요.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 보라는 잔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는데요. 이젠 안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이디 부허를 보며 하게 됐죠.
A : 추스 마르티네스(이하 추스) 개인적으로 하이디 부허의 열렬한 팬이에요. 하이디 부허의 작업은 어떤 시스템에서 한 존재가 취할 수 있는 제스처였다고 봐요.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제스처가 담긴 작업을 많이 볼 수 있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이디 부허를 해방시키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끊임없는 의심과 불신에 시달렸던 그녀는 자신의 전시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죠. 하이디 부허의 모든 전시는 사후에 이뤄졌어요. 지금 우리가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해방감을 주는 일이라 생각해요. 오늘날 그녀가 살아서 이 전시를 본다면 느꼈을 ‘기쁨’이라는 감정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이 나온 것이기도 해요.
A : 박론디(이하 론디) 마치 위층에 하이디 부허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거대한 존재처럼 느껴져요. 위에서 ‘할 수 있어!’라고 계속해서 말해 주는 것 같죠. 하이디 부허가 활동한 때는 여성에게 아주 힘든 시절이었잖아요. 특히 스위스에서는요.
Q : 엘르 아트선재센터에 방문해 위층에서 하이디 부허의 전시를, 아래층에서 박보마·박론디·우한나의 그룹전을 면밀히 살펴보니 세대를 관통하는 동일한 질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A : 추스 첫 번째는 친밀감이죠. 굉장히 세심하고 사적인 순간과 경험을 경쾌하게 나눕니다. 하이디 부허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울에 있는 관람객들에게 세 명의 한국 작가를 한꺼번에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Q : 엘르 추스 마르티네스가 이번 전시를 위해 세 분의 작가를 모은 방식이 궁금해지네요. 전시를 위해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셨다죠?
A : 추스 저는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자주 방문합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으로 어떤 전시를 상상하고 기획하죠. 한국에서도 여러 예술가의 작업실에 갔어요. 그리고 여기 모인 박보마, 박론디, 우한나의 작품에 담긴 철학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아트선재센터 관장님이 전시 기획을 제안했을 때 바로 시작할 준비가 돼 있었죠. 각자 뭔가를 변화시키고 스스로 변화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기 때문에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그들의 작업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어요. 5년 후에는 우리를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할 이들이에요. 저는 이 전시를 통해 미래의 동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모든 아티스트에게 자신이 존중하고 신뢰하는 동료 아티스트의 피드백, 그들과의 대화는 때로 중요한 방점이나 큰 힘이 되기도 하죠. 스스로 의심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에도요.
Q : 엘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고,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느낌으로 세 작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군요.
A : 추스 저는 어린 시절 경쟁적 환경에서 공부하고 작업했어요. 당시 남자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쳤던 반면, 저를 포함한 같은 반의 여성 동료 세 명은 항상 비교나 이간질의 대상이 됐습니다. ‘왜 여성은 서로에게 못되게 구냐’는 이야기를 듣지만, 사실 구조 혹은 시스템이 여성 간의 연대와 우정을 방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방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이제는 동료를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가 장려하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궁극적으로는 실패에 닿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내 또래 혹은 세대 동료들에게 어울리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와요.
A : 한나 추스가 서로 모르던 세 여성 작가를 모으는 과정에서 셋의 관계성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어요. 만나게 하고, 이야기하게 하고…. 그러다 전시장에 함께 모였는데, 우리가 너무 비슷한 거예요. 사람마다 가진 각자의 요소가 있잖아요. 셋이 지닌 요소에 교집합이 있다는 걸 강하게 느꼈죠.
A : 론디 맞아, 그랬지.
A : 한나 교집합의 면적도 서로 동일했고요. ‘소셜’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어요. 요즘 일컫는 ‘소셜’ 한다는 뜻이 아닌, 진짜 어떤 마을을 만드는 것 같았죠. 보통 그렇게 안 하거든요. 아주 자연스러웠고, 추스의 제스처는 탁월했죠. 다른 그룹전과 다른 것 같아요.
A : 론디 특히 도슨트 학교에 다녀와서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요.
A : 한나 도슨트를 대상으로 함께 릴레이 강의를 했어요. 각자의 작품에 든 생각을 정확하게 몰랐다가 그때 저희도 알게 된 거죠. 추스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관계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그 강의로 다시 한 번 알게 됐어요. 보통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모르던 사이인데 그룹전을 통해 이렇게 친해져 본 경험도 이례적이에요.
Q : 엘르 큐레이터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다리를 만들죠. 추스가 작가들의 관계 성립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 작가가 동시대에 던지는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 이 전시를 꾸미고 싶었나요?
A : 추스 굉장히 강력한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저는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하나의 상황을 만듭니다. 이때의 상황이 결국 전시죠. 전시를 만드는 일은 표면적으로 어떤 작품을 감상하게 하고 예술적 재능을 두 눈으로 목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겠지만, 한 꺼풀 까서 들어가보면 예술을 통해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전시의 궁극적 목표잖아요. 결국 유의미한 변화가 중요한 목적이었어요. 이번 전시도 그랬습니다. 20년 전에는 동물권 혹은 식물권이라는 개념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렸겠지만, 이제는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죠. 이런 변화를 먼저 읽어내는 일을 예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엘르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모든 좋은 예술은 불행에서 오는 것이지 긍정적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동감하시나요?
A : 추스 절대로 부정적 감정에서는 긍정적인 것이 탄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죠. 스페인 침략자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어요. “피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사람을 노예화하는 데 한몫했어요. 고통은 종종 사람들을 체념, 나아가 복종하게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예술에는 고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굉장히 남성적 시선입니다. 어쩌면 고통과 불행, 해악 같은 건 예술에서 손쉬운 방안이에요. 이에 반하는 너그러움, 용기를 내어 취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해요.
A : 보마 저는 예술을 만들거나 감상하는 일은 두 가지 면을 다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A : 한나 그냥 제 예술로 이야기하자면, 제 즐거움을 그대로 보여주면 사람들에게서 고민은 없냐는 반문을 받아요. 이번 전시는 그런 반문이 들어설 여지를 남겨두지 않죠. 그래서 좋았어요.
A : 보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있었죠. 추스가 그런 관점을 남성주의와 식민주의에 연결한 것이 무척 좋았어요.
Q : 엘르 〈즐겁게! 기쁘게!〉라는 전시 제목을 듣고 작가들에게 스친 생각도 궁금하네요.
A : 론디 굉장히 친밀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친구 집에 가는 게 제일 즐겁거든요. 관람객들이 이 안에 초대받은 기분, 들어와 있는 기분을 확실히 느꼈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의 내밀한 가치관이나 사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느끼게 하고 싶었죠. 마치 우리 집에 놀러 온 내 친구처럼요. 그렇게 이번 작업을 완성했어요.
Q : 엘르 팬데믹은 우리가 예술을 보고 향유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지독한 시간을 지나 지금 이렇게 기쁨과 즐거움이란 감정을 외치는 전시를 만나게 돼 관객으로서 반갑습니다.
A : 추스 제가 구식일 수도 있지만,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병이 생기면 모든 걸 털어놓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함께 나누는 것이 유일한 치료제죠. 이런 건 절대로 디지털 문화가 해줄 수 없어요. 스위스인들은 서로 전화하거나 수다를 떠는 일이 좀처럼 없어요. 그런데 팬데믹을 거치며 서로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는 경험을 했죠.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 그것만이 우리를 보다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 거예요. 외로움에서는 그 어떤 긍정에너지가 나올 수 없죠. 결국 우리는 함께 부대끼고 울고 웃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예요.
A : 보마 그래서 이 전시가 동시대적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팬데믹을 지나 자본주의라든지 기존 담론이 무너지는 것 같았거든요. 미술계에 존재해 온 남성성이 망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았죠. 기쁨, 즐거움이라는 가치는 남성주의 토대 위에 자라온 예술과는 반대되는 가치예요.
A : 한나 거의 대부분의 미술 전시는 ‘기쁨’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제목에 ‘Joy’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반가웠어요. 또 전시 내용에 관해 추스가 써준 글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스케치 글이었는데, 읽으면서 해방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정말 직관적으로, 기쁘게 작업하는 젊은 여성 작가들을 모아 그들이 기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담 없이, 엄청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A : 추스 저는 예술사학자이기도 한데, 글 쓰는 일이 굉장히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과업이라 여깁니다. 9년 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들이 정말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어요. 어떻게 이들이 책을 읽게 할 것인가가 새로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최대한 구어에 가깝게 씁니다. 글쓰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예술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처럼 쓰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 인생을 통틀어 유일한 미션이 있다면 바로 많은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에요.
Q : 엘르 이번 전시는 누군가 기쁨을 새롭게 느끼는 동기가 될 수 있을까요?
A : 추스 기쁨이란 굉장히 복잡하고 깊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기쁨은 어떻게 보면 폭력에 반대되는 개념이죠. 그리고 폭력과 권력 같은 부정적인 것은 우리 눈을 쉽게 사로잡기 마련이고요. 대척점에 있는, 단순해 보이는 하나의 개념인 기쁨을통해 세 작가들과 미래에 대한 담론을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Q : 엘르 그렇다면 추스, 박보마, 박론디, 우한나를 만나 함께 전시를 연 경험이 당신에게 선물한 기쁨의 순간은 무엇인가요?
A : 추스 건강한 야망으로 가득 찬 이들이죠. 세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것을 이루며 나아갈지 기대하는 일이 제 기쁨이었어요. 다양한 경로로 끊임없는 발전을 이뤄갈 작가들이에요. 언젠가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층 혹은 전체 동을 다 채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거예요. 세 작가들은 지금 그런 행보의 시발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세심하고 사적인 순간과 경험을 경쾌하게 나누는 모습으로 친밀감을 선사하는, 그럴 수 있는 작가들이죠.
A : 론디 그룹전 경험이 많지 않지만, 저에게는 추스의 큐레이션 방식이 흥미로웠어요. 항상 어떤 내러티브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거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요. 이번 전시에서 엄청난 아름다움을 느껴요. 관객뿐 아니라 작가로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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