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성 조화시켜 말씀 전파… 놀라운 은혜 모두 함께 누렸으면”

2023. 5. 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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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호 목사의 그리스도人 STORY] 초대형 성화 창작 몰두 변영혜 작가
초대형 성화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변영혜 작가. 변 작가는 그림 작업의 목표는 창조주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예술성과 영성의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것이 꿈이다. 복음을 언어로 전할 수 없는 것을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주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술 전문가로서 격이 떨어지지 않게 격조 높은 예술의 경지속으로 기독교 성화를 끌어 올려 영적인 은혜를 전달할 수있는 그림을 그리는 게 제 목표이다. 나아가 기독교 미술계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초대형 기독교 성화를 그리는 변영혜(64·광림교회 권사)작가의 꿈이다. 변 작가는 서울대 미대(동양화 전공)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25회의 개인전과 370회의 국내외 그룹전을 열었다. 변 작가의 성화는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해 영국 웨슬리교회, 러시아주재 한국대사관, 극동방송국, 서울대학교, 광림교회, 사랑의교회, 아가페소망교도소 등 곳곳에 소장되어 있다.

2011년 한국미술상을 수상하고, 1994년과 1995년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변 작가를 지난 10일 영광교회에서 만나 그가 걸어온 미술세계에 대해 들었다. 가족은 남다르게 미술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 아버지의 꿈도 화가였었다. 오빠는 변 작가보다도 그림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미대를 가겠다고 했는데 극구 반대하여 포기하고 일본으로 가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오빠도 학생 때 화가의 꿈을 갖고 그림을 그렸는데 결국은 포기했다. 오빠는 학교를 대표해서 미술대회에 작품을 출품하면 항상 떨어지곤 했다. 이유는 학생 실력으로 도저히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며 분명 어른이 그려준 거라며 입상에서 떨어지곤 했다. 그 이후로 오빠는 상처를 받고 그림을 포기했다고 한다.

변 작가는 세 번의 꿈을 꾼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 성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변 작가가 성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보석디자이너 일을 할 때였다.

FIT(Fashion Institute Technology)서 주얼리 디자인(Jewelry Design)도 전공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예전에 알던 언니를 만났다. 이 언니는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서양화과를 다녔었다.

이 언니는 당시 미대에서는 모두가 알 정도로 성격이 거칠어 왈가닥녀로 알려졌고 술고래에다 담배는 골초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난 언니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의 거칠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교양있고 아름다웠다.

변영혜 권사의 작품 ‘엘림의 축복’(79x100cm), 한지에 수묵채색과 혼합재료.


이 언니와 종종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어느 날 점심 후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갑자기 “영혜야!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알고 있지”라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서울대학교 3학년 시절 때 꿈속에서 찾아오신 예수님 생각이 나면서 통회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눈물이 멈춰지질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이때 “내가 이렇게 계속 살면 안되겠다. 이제 내 마음을 확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언니 이제 나 교회 나갈래, 다른 교회는 싫고 언니처럼 확신있는 믿음을 가진 동역자가 옆에 있는 언니 교회로 다닐래’ 그랬더니 ‘너희 집은 뉴저지인데 어떻게 뉴욕 플러싱까지 나오냐’며 만류했다. 그런데 그때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교회나가겠다고 한 뒤 너무 기뻐서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파티를 연 것처럼 춤을 췄다. 그렇게 해서 나가게 된 교회가 뉴욕 산정현교회다”고 했다.

“어느 날 언니랑 함께 집에서 기도회를 하면서 찬송부르고 기도하는데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대성통곡하면서 몇 시간 기도하면서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통성으로 기도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초상난 줄 알았다고 했다.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날 밤에 꿈을 꿨는데 꿈에서 그림을 그렸다. 양쪽에 포도나무와 버드나무를 그렸다. 그리고 남자 음성으로 ‘성령의 열매’라고 귀에 대고 말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포도나무는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고, 버드나무는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뜻한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 나는 구원받은 이방인이었다.”

이후 변 작가는 화려한 보석 디자이너 일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붓을 잡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전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시회 때마다 항상 오픈예배를 드리며 사명감을 가지고 기독교 성화 작가로 열렬히 활동하고 있다.

김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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