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에 금리 오르락 내리락, 정권 '입'만 바라본 은행
[류승연, 박종현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3.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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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요 시중은행의 금리는 이 사람의 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가 조만간 연 8%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쏟아지는 시점이었다. 지난해 6월 1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취임한 지 약 일주일께 지난 시점의 이야기다.
바로 다음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대표적인 시장금리로 여겨지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이날을 기점으로 3.548%를 넘어서면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의 불안한 상황은 직접적으로 은행의 대출금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다수의 시중은행이 주담대 고정금리(혼합형)를 결정할 때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은행채 5년물(AAA) 금리 역시 6월 17일 4.147%까지 올랐고 같은 날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도 연 4.330∼7.140%를 기록해 상단이 연 7%를 돌파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6월 24일, 4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돌연 연 4.75~6.515%로 결정돼 상단만 보면 오히려 0.625%포인트(p)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은행 대출금리는 기준 시장금리에 은행 자체적으로 정한 '가산금리'를 더해 산출된다.
당시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인 시장금리가 4%대 전후로 유지되고 있던 만큼, 은행이 금융 소비자들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 쓴 비용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깎아준 셈이다. 고작 일주일 새 시중은행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은행의 이상 행동은 '금감원 수장의 입'에서 비롯됐다. '이자 장사를 자제하라'는 듯한 이 원장 발언에 은행이 줄줄이 대출금리를 낮춘 까닭이다.
실제 이 원장은 지난 6월 20일 취임 후 처음으로 17개 은행장과 만나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지적했다. 이로 인해 '관치' 논란이 빚어지자 며칠 뒤 연구기관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헌법과 은행법에서 정한 은행의 공적 기능은 분명히 존재하고 감독 당국의 역할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기반해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의 명확한 '신호'에 은행들은 즉각 대출금리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NH농협은행은 간담회 바로 다음날인 21일 전세자금대출에 적용했던 우대금리를 0.1%p씩 확대하는가 하면 7월 1일 부동산 관련 대출금리를 최대 0.20%p까지 인하했다.
우리은행은 가장 파격적으로 금리를 조정했다. 6월 25일부터 주담대 고정금리를 연 5.48~7.16%에서 5.47~6.26%로 조정해 금리 상단을 하루 아침에 0.9%p 깎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주담대로 연 5% 넘는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금리를 1년 동안 연 5%로 일괄 감면해주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고금리 개인 사업자 대출과 서민 금융 지원 대출에 대해 각각 최대 1%p씩 금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KB국민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시행해 왔던 주담대,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한시적 금리 인하(주담대 최대 0.45%p·전세대출 최대 0.55%p)를 연장했다.
기준금리 인상분 즉각 반영하던 시중은행...어느 날 인상이 멈췄다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 간·업권 내 과당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금융 당국의 입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이번엔 금융위원장이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1월 25일 시중은행들에게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는 선명한 메시지로 경고했다. 이미 같은 달 14일 금융당국에서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한 차례 나온 후다.
당시는 연일 고공행진하던 시중은행의 수신금리가 정기예금 금리 기준으로 연 5%를 넘어서던 시점이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13일 처음으로 5%대 예금금리의 포문을 열었다. 금융업계에서 가장 안전한 제1금융권에서 1억원을 넣어두기만 해도 연간 500만원(세전)을 이자로 받아갈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시중 자금이 은행 예·적금으로 몰리는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두드러졌다. 실제 10월 말 기준으로 5대 시중은행의 예·적금 잔액은 847조 2293억원을 기록했다.
금융 당국으로선 시중은행이 수신금리 경쟁을 벌일 경우 그보다 안전성이 떨어지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있던 자금이 제1금융권으로 이동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24일 한국은행이 다시 금리 인상(0.25%포인트)을 단행하면서 수신금리가 인상될 여지가 커졌다. 또 지난해 8월부터 시범적으로 시행된 '예대금리차 비교 공시 제도' 역시 당시 시중은행간 수신금리 인상 경쟁을 부추기고 있었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간 차이를 뜻하는 예대금리차 차는 크면 클수록 해당 은행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중은행들로선 예대금리차 1위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당일 수신금리 인상을 발표하는 등 그 시기를 종전(영업일 기준 3~4일)보다 크게 앞당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11월 기준금리가 인상된 후, 5대 시중은행 중 누구 하나 먼저 '수신금리 인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월 초 시중은행이 야심차게 내놨던 5%대 예금금리 상품마저 월말엔 종적을 감추기에 이른다.
예금금리 잡다 은행 배불려...이번엔 '대출금리 인상 자제령'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 중인 것이다"
1월 30일, 마지막으로 움직인 건 대통령의 입이었다. 소위 "은행은 공공재" 발언으로 은행권 압박의 정점을 찍었다. 그에 앞서 이 금감원장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이 원장은 지난 1월 10일 "금리 상승기 은행이 과도하게 대출금리를 올리지 않도록 점검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며 이번엔 사실상 '대출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렸다.
지난 11월 금융당국이 지휘한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이 올 초부터 부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한 까닭이다. 금융당국이 수신금리를 억누르는 새, 대출금리만 고공행진 하면서 금융 소비자 사이에선 금융당국이 은행 배만 부풀려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실제 지난 1월 10일을 돌아보면 5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연 4.93~8.11%를 기록했다. 새해 첫 영업일인 1월 2일 들어 8%를 돌파한 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금리 상단이 8%를 넘긴 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면 같은 날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의 최고금리는 연 3.93~4.30% 수준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수신금리 결정 시 기준점으로 세워둔 '12개월 만기 은행채(AAA)' 금리가 지난해 11월 한때 5%를 넘어선 후 올해 1월 10일 4.035%까지 떨어진 데 따른 영향도 적지 않았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주담대 변동형금리를 결정할 때 판단 기준으로 삼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 역시 11월 14일 당시 4.1%에서 3.84%까지 떨어져 있었다. 준거 금리가 떨어졌는데 낮아진 수신금리와 달리 대출금리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오른 셈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이번엔 금융권에 '대출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렸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추풍낙엽 신세를 면치 못했다. 우리은행은 최초 이 원장의 '대출금리 인상 자제 발언'이 있던 지난 1월 10일, 부동산 금융상품의 우대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는가 하면 20일엔 신규 코픽스 6개월·12개월 기준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를 0.4%p 내렸다. NH농협은행과 국민은행 역시 부동산 대출과 관련해 각각 0.8%p, 1.3%p 인하 계획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지난 2월 3일,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5.01~6.89%, 고정금리는 4.13~6.23%로 내려왔다. 상단만 보면 지난 1월 10일과 비교해 1.22%포인트가 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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