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넷 친정엄마가 휴대폰 게임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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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화 기자]
친정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하트 세 개가 나왔는데 왜 안 없어지냐?"
"하트를 하나씩 눌러봤어?"
"잠깐만... 그래도 안 없어지는데?"
"그럼 핸드폰 아래를 살짝 위로 밀어서 아래에 있는 동그라미를 누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봐."
"음... 됐다, 됐다. 얼른 끊어!"
내가 전화를 드리기 전에는 먼저 전화를 하시는 법이 없던 엄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오신다. 주로 휴대폰 게임을 하시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물으신다.
친정엄마에게 게임을 알려드렸더니
어버이날을 앞둔 주말에 친정에 다녀왔다. 지방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은 집 근처를 운동삼아 걷는 것 빼고는 거의 집에만 계신다. 그곳이 고향이신 아버지는 가끔씩 친구분들을 만나시기도 하지만, 엄마는 친구도 없어서 외출을 하시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윗집, 아랫집 이웃 몇 분과 가깝게 지내셨는데 엄마는 30년을 한집에서 사시는 동안 다른 집들은 모두 이사를 가서 이제는 혼자 남으셨다. 지금은 하루종일 시끄럽게 울려대는 TV가 유일한 친구이다.
엄마의 취미는 TV 드라마를 보시는 것이다. 초저녁 잠이 많으신 엄마는 밤에 하는 드라마를 졸면서 보시고 다음날 재방송으로 다시 또 보신다. 채널을 이쪽 저쪽 돌려가며 보시는 그 많은 드라마의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헷갈리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시는게 가끔은 놀랍기도 하다.
변화가 없이 매일 똑같이 무료한 일상을 보내시는 엄마에게 자식들의 방문은 가장 큰 이벤트이고 즐거움이다. 시끄럽고 번잡한 걸 싫어하시는 까탈스런 성격 탓에 어린 손주들의 방문도 크게 달가워하지 않으셨던 엄마가 이제 여든이 넘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나니 어쩔 수 없이 자식들만 기다리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아파트 경로당에라도 가시면 좋으련만 자신도 노인이면서 늙은이들만 있어서 싫으시단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노래교실이라도 다녀보시라고 하니 거기는 죄다 젊은 여자들만 있어서 눈치가 보이신단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 하시고 집에만 계시는 엄마가 늘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집에서 즐겁게 하실 수 있는 놀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눈이 어두워 책을 읽는 건 힘들어 하시고, 바느질은 평생 지겹도록 하셨으니 싫어하실 것 같고, 뭐 재미난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휴대폰 게임이 떠올랐다. 무료함을 달래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딱일 것 같은데 과연 엄마가 게임을 하실 수 있을까 싶었다.
데이터가 필요없고 룰이 간단한 게임을 찾아 엄마의 휴대폰에 앱을 깔아드리고 게임 방법을 설명해 드렸다. 블록을 맞추는 게임인데 블록 모양에 따라 맞는 자리를 찾아야 하고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야 하니 머리와 손을 함께 써야해서 노인들에게 꽤 괜찮은 놀이가 될 것 같았다.
▲ 휴대폰 게임에 빠진 친정엄마. |
ⓒ 심정화 |
"너는 지금 몇 (레벨)이니?"
"(레벨) 57이 왜 이렇게 안넘어가진다니?"
엄마가 게임을 하시면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해 드리기 위해서 내 휴대폰에도 똑같은 게임을 깔아놓았다. 나도 틈틈이 게임을 해서 레벨을 조금씩 올리다보니 본의 아니게 엄마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경쟁상대가 되어 버렸다.
같은 자세로 너무 오랫동안 게임을 하셔서 일어나실 때 앓는 소리를 하시면서도 딸래미의 레벨을 넘어설 욕심에 얼마 못가서 휴대폰을 또 켜셨다. 그리고는 결국 나보다 레벨을 앞지르고 아주 뿌듯해 하셨다.
옆에서 다른 가족들은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며 나를 나무라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노인들에게는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주 큰 숙제이다. 자식들의 방문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무료한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시고 난 다음부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친다. 엄마에게도 이런 열정이 있으셨나 신기해 하는 우리에게, 처녀 시절 공장에서 야근을 하면서도 추리소설을 빌려와 밤새워 읽었었노라 말씀 하신다. 엄마의 새로운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이제까지는 여든넷의 연세에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시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시는 모습이 답답해 보이지만 이제 늙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도 몸과 같이 늙어 어떤 것에도 크게 재미를 못느끼실 거라 짐작했다.
또, 행여라도 무리하시면 아픈 곳이 더 늘어날까봐 하고싶어 하시는 일도 못하게 말릴 때가 많았다. 그저 더이상 아프지 않고 편안히 지내시기만을 바라왔다. 내가 엄마를 더 빨리 늙어가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다가 가고 싶다. 그 마음은 엄마도 똑같으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엄마는 게임 레벨이 150을 넘었다고 자랑하신다. 전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엄마의 생기있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효도를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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