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환자의 손과 발… 한시도 긴장 못 늦춰”
스포츠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언성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경기에서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는 우리말로 ‘보이지 않는 영웅’을 뜻합니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언성히어로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무사히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이 환자를 잘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환자 이송부터 약 반납·수령, 검체 이동 등 다양한 업무 수행
기능원의 기본 업무는 환자 이송이다. 휠체어나 침대를 이용해 일반병동과 내과·외과·응급 중환자실에서 입원 환자와 함께 검사실·수술실 등으로 이동하고, 검사가 끝난 후에는 다시 병실까지 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한다. 일반병동에서는 기능원이 처음 입원한 환자에게 시설, 위치 등을 설명하며, 신우철 기능원과 같은 중환자실 기능원의 경우 본 업무인 환자 이송과 함께 약 반납·수령, 진단검사의학과·병리과 검체 전달 업무도 수행한다. 신우철 기능원은 “주간에는 환자 이송과 검체 이송, 약품 이동 업무를 모두 수행하지만, 저녁·야간에는 근무 인원이 많지 않아 환자 이송 업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내 대다수 직군이 그렇듯 기능원 또한 주간, 저녁, 야간 교대 근무로 일하고 있다. 교대 근무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업무 공백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맡고 있는 환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반병동 기능원은 주간 근무자 한 명이 병동 1개 층 환자 60~90명을 담당하며, 중환자실 기능원은 한 명이 중환자 15~20명을 담당한다. 야간에는 일반병동 기능원 혼자 4~5개 층을 맡게 된다.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 없다’는 말은 기능원에게도 적용된다. 신우철 기능원은 “업무 공백이 발생해도 간호사, 소독기능원 등이 업무를 대신할 수 있지만, 해당 인력도 각자 업무가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환자 검사, 검체 접수 등과 같은 일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검사가 지연되면 진단이나 약제 투여 등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촌각 다투는 응급 중환자… 안전이 최우선
신우철 기능원이 근무하는 응급 중환자실에는 심각한 외상(外傷), 심뇌혈관 질환 등으로 인해 응급실로 이송된 후 1차적인 조치를 받은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 대부분 위중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송할 때도 마찬가지다. 작은 문턱, 모서리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이동 과정에서 에크모(환자의 혈액을 밖으로 빼낸 뒤 산소를 주입한 혈액을 몸속에 주입하는 기기), 벤틸레이터(인공호흡을 돕는 기기) 등과 같은 기기에 문제가 생기면 응급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실에서 환자를 검사대에 옮길 때도 물리적 자극이나 자세·위치 변화 등으로 인해 환자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신우철 기능원은 “약이나 검체를 들고 이동할 때도, 환자를 이송할 때도 신속·정확과 함께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특히 환자를 이송할 때는 이송 전 여러 장치가 잘 연결돼있는지, 잘 작동하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간호사로부터 이동해도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난 후 이동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정도면 되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신 기능원은 “안일한 태도로 이송하다보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를 이송하는 일만큼은 기능원이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을 갖고, 이송 전 필요한 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능원 중에는 기능원 일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다 온 이들이 많다. 신우철 기능원도 그랬다. 그는 2015년 한양대병원에 입사하기 전까지 안경사로 일했다. 대형마트에 입점해 안경원을 운영하던 신 기능원은 한양대병원 간호사로 일한 아내의 권유로 기능원 일을 시작하게 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안경원을 계속 운영하면 어린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당시 신 기능원은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장을 운영했고 아내 또한 3교대 간호사로 일했다. 가족이 한 데 모이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렇게 기능원 일을 시작했지만 처음엔 쉽지 않았다.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사람들에게 시(視) 기능을 설명하다 갑자기 침대 손잡이를 잡고 밤낮없이 환자를 이송하려니 어려울 따름이었다. 일하다가도 ‘지인이 이 모습을 보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러던 중 학창시절 한 스승의 말이 생각났다고 한다. 신 기능원은 “고등학교 때 ‘직업은 무엇이든 좋다. 1인자가 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안경원에서 일할 때는 어떻게 매출을 올릴지 항상 고민했는데, 기능원으로 일한 후로는 그런 고민 없이 매 순간 환자에게 충실하고 친절히 대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건강해져 나가는 환자 보면 보람 느껴”
기능원은 환자를 치료하거나 치료에 직접 관여하는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 환자들과 밀착해 생활하다보면 이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예기치 않는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신우철 기능원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했을 때 겪었던 일이다. 당시 마비 증상이 있던 환자가 심한 우울, 스트레스로 인해 재활과 치료에 대한 의지를 잃은 모습을 보였다. 하루아침에 몸이 마비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신 기능원은 “환자에게 ‘재활에 에너지를 좀 더 쏟아보라’, ‘지금 안 움직여도 발가락 손가락을 조금씩 반복해서 움직이려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다’고 말했는데, 그 후로 환자가 정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근무 시간이 아닐 때 환자가 다른 층으로 전동되면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몇 달 뒤 병원 복도에서 우연히 환자를 만났는데, ‘누군지 알겠냐’면서 ‘당신이 운동하고 재활하라고 한 덕에 지금 이렇게 잘 걸어 다닌다’고 반갑게 말했다. 사실 내가 한 건 없지만 정말 기분 좋고 뿌듯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보람된 순간은 많다. 신 기능원은 환자가 호전돼서 일반 병동으로 가는 모습을 볼 때면 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다. 일 한지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신 기능원은 힘든 순간은 최대한 잊고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기능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기능원으로서 계획’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건 없다”며 “그저 건강한 몸으로 정년퇴직 때까지 선·후배 기능원과 열심히 일하면서 환자들이 ‘저 병원에서 참 좋았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1. 신우철 기능원은 대형마트 내에 입점한 안경원을 운영했다. 당시 마트에서 하는 CS 교육을 반강제로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배운 말투, 태도 등이 처음 기능원 업무를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사람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2. 그에게 힘들었던 일화도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다 잊어서 없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어떻게 잊었는지 묻자 “‘불멍’을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녀와 캠핑 가서 타들어가는 불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기억들이 함께 타들어 사라진다고 한다.
3. 기능원은 하루에 1만7000보~2만보를 걷는다고 한다. 근무 중 앉아있을 시간도 거의 없다. 체력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묻자 신 기능원은 “따로 시간 내서 체력 관리 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문득 매일 시간을 내 운동하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4. 신우철 기능원에게는 남 모를 징크스가 있었다. 출근 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이상하게 업무량이 많았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담배를 끊었다. 어떻게 됐을까? “정말 똑같았다. 징크스는 징크스일 뿐이더라”는 신 기능원의 말이다.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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