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유럽 연수 다녀와놓고…법안 처리 외면 당한 '재정준칙'

김기환 2023. 5. 1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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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국회 기재위 소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5일 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16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가 열렸다. 여야 국회의원 9명이 참석한 가운데 52개 심사 안건이 올라왔다. 여야 의견이 일치해 빨리 처리해야 하거나, 한쪽이 당론으로 밀어붙이는 일명 ‘쟁점 법안’부터 순서대로 다루는데 이날 ‘1호’ 안건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회적 경제 기본법’ 이었다.

반대로 44~52번 ‘끄트머리’ 안건으로 올라온 법안은 국가재정법 개정안, 일명 ‘재정준칙’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윤영석(국민의힘) 기재위원장,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기재위원을 만나 “재정준칙 처리에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위원들은 이날 오후 7시까지 이어진 소위에서 재정준칙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나랏빚을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5~16일 잇달아 열린 기재위 소위 처리가 불발되면서 22일 예정된 전체회의 의결도 어려워졌다.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 당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기로 한 뒤 31개월째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1대 국회 임기 중 통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준칙은 단순한 데다 명분도 있는 법안이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할 경우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1000조원을 넘긴 국가 채무가 폭증하지 않도록 관리하자는 취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도입할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다.

하지만 의원 입장에선 ‘인기 없는’ 법안이다. 대의명분은 있지만, 연금·교육개혁처럼 장기 과제라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어서다. 당장의 표가 중요한 국회의원에겐 시급하게 처리를 밀어붙일 유인이 작다는 얘기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은 “재정준칙이 없어서 (1분기에) 54조원 재정적자가 났느냐”며 “재정준칙은 급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확장 재정’을 중시하는 야당은 겉으론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반대에 가깝다. 이틀간 열린 소위에선 사회적 경제 기본법(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에 최대 7조원 지원)을 굳이 재정준칙과 묶어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은 여당에서 ‘운동권 퍼주기 법’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하는 법안이다. 재정준칙의 처리 가능성을 스스로 낮춘 셈이다.

여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야당의 비협조로 재정이 망가졌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이 나라를 망쳤으니 재정준칙을 받아들여라”는 식의 주장으로 야당을 코너로 밀어붙여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18~27일엔 선진국의 재정준칙을 공부하겠다며 윤영석 위원장과 국민의힘 송언석·류성걸 의원, 민주당 김주영·신동근 의원 등 5명이 프랑스·스페인·독일로 8박 10일 출장까지 다녀왔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4조원을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조5000억원 늘었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의 90%를 넘어섰다. 김형준 배재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재정준칙의 통과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며 “여야를 불문하고 ‘선심성’ 예산 수요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재정준칙 도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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