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여성 래퍼, 큰 변화이지만...
[이현파 기자]
▲ 2023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명단. 미시 엘리엇,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윌리 넬슨, 케이트 부시, 조지 마이클 등이 이름을 올렸다. |
ⓒ 로큰롤 명예의 전당 |
록 음악이나 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과 같은 수식어에 익숙할 것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The Rock & Roll Hall Of Fame)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1986년부터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재단(Rock & Roll Hall of Fame Foundation)은 매년 전문가와 음악 팬의 투표를 통해 '로큰롤을 정의하고 역사 발전에 공헌한' 아티스트들을 선정한다. 지금까지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비치 보이스, 퀸, U2,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이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라고 해서 록 밴드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로큰롤이라는 단어는 대중음악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제임스 브라운,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 흑인음악 뮤지션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록과 흑인음악의 역사적 관계를 놓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헌액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연사로 나서는 것 역시 볼거리다. 힙합의 전설 N.W.A를 소개하기 위해 켄드릭 라마가, 더 큐어를 소개하기 위해 트렌트 레즈너가, 푸 파이터스를 소개하기 위해 폴 매카트니가 직접 자리했던 바 있다. 비틀즈의 링고스타가 솔로 뮤지션 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때도, 폴 매카트니가 직접 연사로 나섰다. 음악의 역사를 만든 아티스트들이 존경심을 주고받는, 영광의 자리다.
▲ 2023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
ⓒ 미시 엘리엇 |
올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아티스트는 구순을 넘긴 컨트리의 거장 윌리 넬슨, 'Running Up That Hill'의 역주행으로 재조명받은 케이트 부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셰릴 크로우, 미시 엘리엇, 조지 마이클, 더 스피너스, 샤카 칸 등이 이름을 올렸다. 엘튼 존의 영원한 작사가 버니 토핀 여깃 그리고 '힙합 50주년'의 의미를 살려 힙합의 창시자로 불리는 디제이 쿨 허크 역시 '음악의 개척자'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측은 올해 결과를 두고 "로큰롤의 특징인 다양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새 헌액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단연 미시 엘리엇이다. 미시 엘리엇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축한 여성 래퍼다. 탄탄한 랩실력은 물론 보이시한 패션과 춤실력으로 정평이 났다. 'Get Ur Freak On', 'Work It' 등의 히트곡을 배출했으며, 지드래곤과 협업한 '늴리리야'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미시 엘리엇은 '첫 레코드 발매로부터 25주년'이라는 헌액 조건이 갖춰지자마자 바로 등재되었다. 미시 엘리엇은 런 디엠씨(RUN DMC),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제이지(Jay - Z), 에미넴(Eminem) 등의 뒤를 이어 헌액된 힙합 뮤지션이자, 역사상 최초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여성 래퍼로 기록되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측에서는 미시 엘리엇을 "남성 중심적인 장르의 진정한 선구자"라 극찬했으며, "음악 산업과 사회 전반에 있어 여성을 위한 새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처음으로 여성 래퍼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시상식이 그렇듯,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 오아시스(Oasis)는 2019년부터 명예의 전당 헌액 조건을 갖췄으나 후보에도 오르지 못 했다. |
ⓒ 씨네룩스 |
상징성 있는 선정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그 권위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다. 미시 엘리엇에 앞서 선정 조건을 갖춘 로린 힐,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의 여성 뮤지션이 여전히 헌액되지 못 했다. 장르에 대한 편식도 심하다. 오아시스를 비롯한 브릿팝 밴드, 다프트 펑크, 케미컬 브라더스, 조르조 모로더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도 명예의 전당에서 찾아볼 수 없다. 아이언 메이든과 같은 영국 헤비 메탈의 전설 역시 여전히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전위적인 음악 세계의 창조자인 여성 뮤지션 비요크, 1980년대 인디신을 상징하는 밴드이자 후대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스미스(The Smiths)와 픽시즈(Pixies) 역시 번번하게 제외되었다. 포스트 펑크의 시대를 열었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역시 오늘날의 록 음악에 큰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헌액자 명단에 들지 못 했다. 2019년에 헌액된 라디오헤드의 멤버 에드 오브라이언이 "심사 과정이나 축하 공연 등의 과정이 철저히 미국적이며, 쇼 비즈니스적이다"라며 냉소한 이유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 잔치'로 표현한 봉준호 감독이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이다.
선정위원의 취향에 부합하는 뮤지션은 바로 헌액이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뮤지션은 몇 년이 지나도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절대적인 공신력을 지닌 권위란 없음을,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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