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탈퇴? 그럼 해고"…공공노조 179곳이 이런 황당 단협
A공공기관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노조 가입 대상이 되는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노조를 탈퇴할 경우 해고하도록 규정했다. 노동관계법 위반 사안이다. B공공기관 노사는 노조 간부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더라도 ‘조합활동으로 인한 경우’라면 퇴직·해고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담았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불합리한 단체협약 사례로 소개했다.
고용부가 공무원·교원·공공기관 등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분석한 결과, 479곳 중 37.4%에 달하는 179곳의 단체협약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35곳(28.2%)은 법 위반은 아니지만, 노조에 대한 불공정한 특혜, 기관의 인사·경영권 침해 등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단협을 맺고 있었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공공부문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을 통해 “공공부문은 업무에 있어 공공성 및 신분보장, 국민의 세금 지원 등으로 높은 수준의 책임성·도덕성·민주성이 요구된다”며 “(하지만)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진짜 주인인 국민의 직접 통제가 어려워, 노사 간의 담합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과 미래세대인 청년들에게 전가된다”고 밝혔다.
최근 송파구청 단체협약과 전국공무원노조 규약 등에서 불법·부당 관행이 드러나면서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고용부는 공무원 165곳, 교원 42곳, 공공기관 272곳의 단체협약을 들여다봤다.
법 위에 선 단체협약…“인사위원회에 노조 추천 포함”
공공부문 단체협약은 법·지침·명령 등 관계법령을 위반하는 단체협약을 맺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번에 조사된 기관들은 ▶법령보다 우선적으로 단체협약 효력을 인정하거나 ▶정책결정 및 임용권 행사 등 교섭사항이 아닌 내용을 규정하거나 ▶단체협약 불이행을 이유로 한 쟁의행위를 인정하거나 ▶특정 노조만을 유일한 교섭단체로 인정하는 등의 대체협약을 맺고 있었다. C공무원 노조는 구조조정·조직개편 등을 이유로 정원 축소 금지 조항을 규정하는 한편, 인사(승진)위원회에 노조의 추천 외부인사를 반드시 포함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노조 자체 규약이 불법인 경우도 있었다. 한 공무원 노조는 노조 탈퇴를 시도하는 조합원의 권한을 위원장이 직권으로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규약에 담았다. 지난해 민주노총을 탈퇴하려다 제명 처분을 받았던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간부의 사례처럼 상급단체 탈퇴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고용부는 “노조 설립과 조직형태 변경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전임자 조합활동은 불법이라도 간섭 금지”
법적으로 문제는 안 되지만, 노조에 대한 지나친 특혜가 담긴 불합리한 단체협약도 다수 확인됐다. 한 교원 노조의 단체협약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노조 선전물 배포 등 노조 홍보 활동을 보장하고 있었다. 특히 학교시설인 방송시설이나 메신저 등을 활용해 홍보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담았다. 또 다른 공공기관 노조는 ‘노조 전임자의 조합활동에 대해 불법·합법을 가리지 않고 간섭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담았다. 이외에도 ▶국가예산으로 노조 사무실 운영비 지원 ▶노조활동 방해 우려가 있는 경우 채용 금지 ▶노조 간부에 대해 임기 중 인사이동 금지 등의 행태가 나타났다.
고용부는 불법 단체협약 및 노조 규약에 대해선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시정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만일 시정명령을 불응할 경우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불합리한 단체협약의 경우 노사가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권고하고, 기재부·교육부·행안부 등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관계부처와 함께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노동계 “법은 최소한 기준”…고용장관 “공공부문은 법이 우선”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노사관계 기본원리를 무시한 노조 때리기식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법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노사간 협약을 통해 체결한 단체교섭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이정식 장관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민간부문은 얼마든지 (법보다) 우월한, 더 좋은 조건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지만, 공공부문은 다르다”며 “공무원노조법에서 교섭해선 안 되는 사항에 대해 명확하게 법에 규정돼 있다. 국회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의 권한을 제한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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