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잇수다]공포 부르는 AI 목소리의 역습

모창 수준 뛰어넘은 AI 커버곡
저작권 침해·명예훼손 등 대두
범죄 악용 대비 탐지기술 시급

첫 소절을 듣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Cause I know what you like boy (ah-ah) You’re my chemical hype boy (ah-ah)."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커버한 ‘Hype boy’ 영상이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특유의 음색, 중간중간 사실적인 음 이탈, 의외로(?) 어설프지만 정확하게 재현된 한국어 발음에 팬들은 열광했다. 영상은 올라온 지 2주 만에 조회 수 104만 회를 훌쩍 넘기며 인기몰이 중이다. 실제 브루노 마스가 부른 듯한 영상은 사실 그의 목소리를 학습한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됐다.

대중에게 익숙한 히트곡을 특정 가수의 음색으로 편곡해 부르는 ‘커버(cover)’ 곡 열풍이 거세다. 잘 알려진 가수의 목소리를 딥보이스로 학습한 AI에 음원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이른바 ‘AI 커버곡’은 단지 목소리만 흉내 내는 모창 수준을 뛰어넘어 실제 해당 가수만의 독특한 음악적 특징과 개성을 살려 다양한 결과물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엔 유명 싱어송라이터 위켄드와 팝스타 드레이크가 함께한 신곡 ‘허트 온 마이 슬리브(Heart on My Sleeve)’가 AI로 만든 가짜 음원으로 밝혀지면서 저작권법 위반으로 삭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20년 전에 사망한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비기)가 나스의 곡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New York State of Mind)’를 부른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죽은 비기의 목소리를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는 ‘역사적 작업’이라는 반응과 유족과 동의 없이 고인의 목소리를 이용해 제삼자가 이익을 보는 행위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처럼 아티스트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작된 AI 커버 곡이 영상 플랫폼에 공개되며 수익을 창출하자 저작권 침해와 명예훼손 문제가 함께 대두되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AI 커버 곡 영상 제작 시 저작인접권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헌법 제10조에 따라 보호받는 인격권 영역에 있어 타인의 음성을 무단으로 이용할 경우 인격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가수 노래를 커버로 이용할 경우 작사, 작곡자와 같은 저작인접권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위켄드와 드레이크 사건을 계기로 유니버설 뮤직 그룹은 자사가 저작권을 보유한 곡에 한해 AI 커버 곡 게재 금지를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미국 법은 AI가 만든 작품의 소유권과 저작권에 대한 규정이 불분명해 이에 따른 저작권 남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술 영역에서의 딥보이스 논란은 차라리 우아한 논제다. 범죄에 악용된 딥보이스는 더 큰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2021년 아랍에미리트(UAE)의 한 은행이 고객사인 대기업 임원 전화를 받고 3500만달러를 송금한 사건이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기업 임원이 아닌 딥보이스로 임원 목소리를 만들어 낸 범죄집단이었다. 미국 정보기술(IT) 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금융사기 범죄 중 20%가 딥페이스 기술을 악용한 사례일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딥보이스 탐지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급선무라 지적한다. 타인의 마음을 감응시키는 목소리의 힘이 기술로 복제돼 범죄에 악용되는 끔찍한 현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