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랐다...김환기 전모를 만나는 밀도 높은 전시
한국적 추상미술 탐구한 120여 점
치밀하고 정제된 작품 배치 돋보여
"이번 생애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들"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운영하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김환기(1913~1974)의 대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김환기( a dot a sky_kim whanki)'를 18일 개막한다. 호암미술관이 1년 반 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여는 첫 전시다. 김환기는 한국민 대부분이 이름을 알고 있는 근대화가 순위 3위 안에는 드는 화가다. 이중섭·박수근 다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김환기의 이름을 익히 아는 사람들도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의 작품을 실제로 많이 보았다고.
1913년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나 1974년 뉴욕에서 타계할 때까지 그는 꽤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상당수 작품이 흩어져 있어 한자리에서 직접 보기는 쉽지 않았다. 부인 김향안(1916~2004 ) 여사가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세워 좋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규모는 아니다. 1930~50년대 제작된 전반기 작품의 경우, 특히 개인 소장가들이 소장한 경우가 많다. 소장처는 뿔뿔이 나뉘어 있고, 작품 가격은 비싸고, 대여는 어려우니, 김환기의 작품을 그러모아 작가의 전모(全貌)를 가늠하는 회고전을 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호암미술관이 해냈다.
총 120여 점의 김환기 작품이 400평의 공간을 가득 메웠다. 전시는 김환기가 처음 일본에 유학 가서 본격적으로 미술가의 길을 걸었던 1930년대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학교에 다니며, 그는 당대 일본에서도 상당히 전위적인 미술단체에서 활약했다.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됐던 ‘창’, ‘론도’ 등이 이번 전시에 나와서, 김환기 이력의 화려한 출발을 알린다.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 기관지에 “회화예술이 이 세상에 없었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던 시기 작품들이다.
6·25 전쟁 중에 그린 작품도 많이 나왔다. 전쟁 통에 부산 피란지에서도 뉴서울다방 같은 데서 개인전을 열었던 김환기가 아닌가. ‘뱃놀이’, ‘푸른 공간’과 같은, 짙은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 피란처의 결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폭양이 직사하는 생철 지붕 바로 밑, 큰 키로 인해 허리를 펼 수도 없는 다락방에서 이런 작품을 그리며 김환기는 되뇌었다. “이런 것도 예술과 싸우는 것일까?”하고.
한국적인 소재, 신선한 어법
시간이 스며 있는 점화(點畵)
아, 김환기의 마지막 작품들은 검다. 검은 점들이다. 화가들은 말년에 두 부류로 나뉜다. 죽기 전에 색채가 어두워지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다른 부류는 색채가 매우 화려해진다. 김환기는 전자에 속했나 보다. 전시장 벽에는 그가 죽기 한 달 전 쓴 일기 구절이 보인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죽음 앞에서 그가 깨달은 진실은 이렇게 단순했다. 우리는 모두 무한한 우주 아래, 하나의 ‘점’과 같이 유한한 존재일 뿐이란 것.
전시는 매우 찬찬히 화가의 생각과 그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따라간다. 한 작품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그다음 작품이 너무 궁금해져서 조바심이 일만큼, 작품 배치가 치밀하고 정제돼 있다. 큐레이터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런 전시를 열기 위해서는 분명 훨씬 더 많은 작품을 놓고서, 공간 부족을 한탄하며 ‘빼기’를 하느라 애썼을 것이다. 그만큼 밀도가 높은 전시이다. 이것만 명심하자. 이번 생에 이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핼리혜성은 75년에 한 번 지구에서 볼 수 있다는데, 그런 혜성이 지금 용인에 떨어진 셈 치자. 그러니, 김환기라는 별 하나, 점 하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길을 나서야 한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유료. 예약 필수.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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