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100년 전 노래
[이준희 기자]
▲ <동아일보> 1923년 5월 18일자에 실린 일본축음기상회 광고. |
ⓒ 동아일보사 |
"최신한 그러고 제일 재미있는 백 종 이상의 노래와 창가의 음보(音譜)를 제작하였습니다. 각 권번 기생의 미성, 동경 유학생의 창가를 집에 앉아서 들을 수 있습니다. 1차 목록을 청구하여 주시오."
구체적인 작품 목록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음반 판매를 홍보하는 것이 분명한 이 광고는, 당시 한국어 음반을 제작하는 유일한 음반회사였던 일본축음기상회가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을 소개한 광고였다. 3분 전후로 녹음된 노래가 앞뒤에 하나씩 실린 음반이 이때 총 70장 새로 녹음, 발매됐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첫 번째 대중가요 음반이었다.
▲ 1923년에 발매된 <이 풍진 세월> 음반 딱지. |
ⓒ 이준희 |
1923년에 발매된 첫 번째 대중가요 음반에 '신식창가'로 수록된 것은 세 곡이었다. 앞면에는 <너와 나와 살게 되면(사랑가)>과 <홋도뽀루(축구가)>가 실렸고, 뒷면에는 <이 풍진(風塵) 세월(탕자(蕩子)경계가)>이 실렸다. 괄호 안은 음반 발매 이후 만들어진 목록에 표기된 것으로, 음반에 적힌 것은 사실 가사 첫머리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므로, 괄호 안이 보다 형식을 갖춘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앞면 두 곡은 100년 세월이 지나면서 완전히 잊히고 말았지만, 뒷면 수록곡 <이 풍진 세월>은 '흘러가 버린' 노래가 아니라 여전히 '흐르고 있는' 노래이다. 심지어 지금도 노래방 목록책에서 찾아 반주기에 맞춰 부를 수 있다. 다만 제목과 가사, 그리고 곡조 일부는 100년 전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었는데, 1923년 음반에 기록된 <이 풍진 세월> 대신 이제는 <희망가>라는 제목이 통용되고 있다.
<이 풍진 세월> 역시 음반에 앞서 인쇄물에 먼저 기록되었고, 1921년에 간행된 노래책 <낙원창가>에 <탕자자탄가>라는 제목으로 가사와 악보가 실렸다. 이후 많은 1920년대 노래책에 수록이 되는 한편, 1923년 첫 음반 이후 연주자가 다른 세 가지가 녹음이 더 발매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양금과 단소 같은 전통악기로 연주한 것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시절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노래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곡은 원래 19세기 미국에서 찬송가로 불리던 곡조인데, 일본으로 건너와 <夢の外(꿈 너머)>라는 제목과 새로운 가사로 1890년 간행 창가집에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대중가요는 아니었던 셈이다. 1910년에는 선박 사고로 죽은 학생들을 애도하는 노래로 또 바뀌어 <七里ヶ浜の哀歌(시치리가하마의 애가)>로 거듭났고, 그 가사 첫머리에서 딴 <真白き富士の根(새하얀 후지산 봉우리)>라는 제목으로 크게 유행을 하게 되었다. 종교를 위한 찬송가가 교육을 위한 창가로, 그것이 다시 유행가로 바뀌었던 것이다.
일본 유행가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가 조선으로 건너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기 시작한 때는 1919년 3·1운동 직후쯤이라고 한다. 실제 그러한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신문에서 확인되는데, 1920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관련 내용이 있다.
▲ <동아일보> 1920년 4월 20일자에 실린 <노동가> 가사. |
ⓒ 동아일보사 |
<희망가> 근거없는 오해와 낭설들
음반 역사로만도 100년이 된 노래이기에, <희망가>에는 이런저런 오해와 낭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우선 그 제목에서부터 따져 볼 만한 점이 있다. 1920년대 음반이나 노래책 등에 다양한 제목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은 앞서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희망가>라는 제목은 전혀 없다. 그 당시 <희망가>로 불린 노래들이 몇몇 있기는 했으나, 모두 이 곡과는 완전히 다르거나 정황상 다른 것으로 확실시되는 작품들이다.
▲ <희망가>라는 제목이 처음 등장하는 1962년 고복수 음반. |
ⓒ 이준희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규엽 <희망가>가 유튜브 등에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는, 1967년에 녹음된 명국환의 노래를 채규엽이 부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명국환 <희망가>에 잡음을 잔뜩 입혀서 1930년대 녹음으로 들리게끔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해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상당히 많다.
가수뿐만 아니라 작사자에 관해서도 근거 없는 낭설이 돌아다니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히 퍼진 것으로, 임학천이라는 인물이 <희망가> 가사를 지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런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냥 주장만 있을 뿐 어디에도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른바 '복(사해서)붙(이기)'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가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1921년 <낙원창가>에는 책을 찍어 낸 출판사 광문서시(廣文書市)에서 <탕자자탄가> 가사를 '개량'했다고 되어 있을 뿐이며, 그밖에는 어디서도 작사자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가수나 작사자처럼 심각한 오류까진 아니지만, <희망가> 곡조가 일본에서 먼저 유행할 때 제목인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에 관한 소개에도 지적할 만한 점이 있다.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를 우리말로 번역한 표현을 보면 나름 전문가라는 연구자나 평론자들도 모두 '새하얀 후지산 뿌리(또는 기슭, 자락)'로 쓰고 있는데, 이는 일본어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데에서 생긴 오류이다. 굳이 일본어 상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후지산에서 새하얀 곳은 아래 산기슭이 아니라 당연히 위쪽 산마루다.
한국어와 달리 일본어에서는 한자 읽기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根은 '곤' 또는 '네'로 읽을 수 있고, <真白き富士の根>에서는 '네'로 발음한다. 그런데 '네'라고 읽을 수 있는 한자 중에는 고갯마루나 산마루를 뜻하는 嶺이나 峰도 있다.
▲ 새하얀 후지산 '마루'의 모습 |
ⓒ 일본정부관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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