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시대에 떨어진 흑인 여성... 왜 시즌2 포기했나
[장혜령 기자]
▲ 디즈니플러스 <킨> 스틸컷 |
ⓒ IMDb |
디즈니+ 시리즈 <킨>은 21세기의 흑인 여성이 1800년대로 시간여행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미국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이면서도 1979년 출간된 후 꾸준히 미국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다. 원작은 1970년대를 사는 흑인 여성이 남편인 백인 남성과 1800년대를 들락날락하며 겪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OTT라고 다르지 않아, 다양성 추구의 허점
시리즈는 총 8부작이며, 원작의 등장인물과 기본 설정을 유지하고 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2016년)를 사는 작가 지망생으로 각색했다. 시대가 50년 가까이 진화함에 따라 스마트폰, 권총 등 다양한 소재가 추가되며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시즌 1은 인물과 상황 소개와 본격적인 의문이 풀리기까지 예열만 하다가 끝났다.
▲ 디즈니플러스 <킨>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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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 시리즈 < 1819 >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본격적인 의문이 시즌 2에서 풀리겠다 싶었지만 제작이 취소되어 당황스러웠다. 사실 다양성 추구라는 OTT 업계도 이와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호평이건 악평이건 다음 시즌이 예정되었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도 출연자 오디션까지 봤지만 제작 철수는 막을 수 없는 일인 거다.
<킨>도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을 거다. 소수의 취향도 존중해 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어차피 세상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게 되어 있다. 굳이 돈을 써가며 소수의 시청자를 만족시켜 줄 회사는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무튼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뭐 다른 대안이 뭐가 있겠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강제 시즌 종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 디즈니플러스 <킨>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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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재산을 물려받게 된 작가 지망생 데이나(말로리 존슨)는 부푼 꿈을 안고 LA로 이사 왔다. 고모와 고모부는 이 상황을 반기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좀 더 독립적인 생활을 즐기며 소설 쓰기 위해 새로운 터전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식당 웨이터 케빈(미카 스톡)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한 데이나.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한밤중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경험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노예 제도가 합법인 19세기 메릴랜드(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불려가게 된 데이나는 죽을 뻔한 아기를 구하게 된다. 대체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 건지 알아차리기도 전, 몇 번이고 같은 장소로 소환되는 일이 잦아진다. 언제 또 소환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던 매일. 이번에는 케빈과 동행하게 된다.
▲ 디즈니플러스 <킨> 스틸컷 |
ⓒ IMDb |
같은 시대에 떨어졌는데 백인 남성인 케빈과 흑인 여성인 데이나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은 누군가에게는 공포,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언제 돌아갈지 몰라 같이 붙어 있기 위해 케빈은 데이나를 자신의 몸종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며 방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데이나는 주인 책을 읽었다거나,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찍을 맞아 등이 찢기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반면, 케빈은 호화 생활은 물론 한가롭게 피아노를 치며 재능을 인정받는다.
데이나는 물에 빠져 죽어가던 루퍼스,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루퍼스, 화재 사건으로 죽기 직전의 루퍼스를 살뜰히 구해낸다. 루퍼스가 성장하며 맞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났다가 며칠, 몇 주일, 몇 년씩 살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이나는 악마, 마녀가 되어버린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단단해져야만 한다. 농장주이자 루퍼스의 아버지 와일린(라이언 콴튼)의 폭력과 어머니(게일 랜킨)의 시샘을 견뎌야만 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차별과 혐오를 보고도 묵인해야 한다. 대들거나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되도록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탐색하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르고, 비통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서 온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은 19세기의 복종과 체념에 점차 익숙해져만 간다.
▲ 디즈니플러스 <킨>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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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이상 시간 여행은 낭만이 아닌 생존이 된다. <미드 나잇 인 파리>처럼 시간 여행으로 삶을 뒤흔든 작가를 만나 영감을 얻거나, <어바웃 타임>처럼 사랑을 이루는 즐거움이 아닌, 존재 이유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숙명이 펼쳐진다. 이 과정이 <킨>에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조마조마한 시청자의 마음을 들쑤시며 안달복달하게 만든다.
데이나가 시간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혈연'이었다. 제목이 <킨>이지만 원제는 KINDRED 혈통, 친족이란 뜻이다. 루퍼스가 죽으면 데이나는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후대가 선대를 보호해야만 하는 특별한 할아버지의 역설(타임 패러독스)을 흑인 여성이 주도하면서 임파워링을 쌓아간다.
그래서일까. 이 시리즈는 단순한 SF 장르, 흔한 타임슬립물이 아니다. 인종, 젠더, 권력 등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점과 가족에 대해 다룬다.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노예제도까지 한목에 담은 SF 드라마, 그 이상의 역사서이자 흔치 않은 작품이다. 스타일면에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닮았다. 시대와 나라는 다르지만 노예 제도의 문제점을 다루며 시대상을 훑어볼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비록 다음 이야기를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숨 가쁘게 드라마에 이어 원작까지 읽어갔다. 무언가에 푹 빠져 있던 시간은 즐거웠다. 처음엔 헛되이 보낸 시간이라 생각했으나 돌이켜 보니 재미있었다면 될 일이었다. 남들 따라 무리하게 쫓아가지 말고 나만의 페이스로 달려보는 것.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겨 끄적거려 보는 루틴이 생겨버린 경험이었다.
비록 <킨> 시즌 2가 불투명해졌지만 어디선가 가치를 인정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득한 시대에 낙오된 데이나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터득했듯이,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희망을 놓지 않기로 했다. 좋은 콘텐츠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부활할 것임을 믿는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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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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