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까지 걸어서 갔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박태신 2023. 5. 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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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면 온혜리에서 서원까지 가는 길에서 내가 발견한 것

[박태신 기자]

3년 전, 꿈이 있었다. 경북 안동 시내에서 안동의 서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난 후 생겼다. 그 버스 안에서의 느낌을 다음 '브런치스토리'에 이렇게 남겼다.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까지 가는 버스는 녹색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지상의 배다. 7월 초순의 짙푸른 산과 들판, 논밭을 부러 버스 맨 앞 '선장님' 옆자리에 앉아 바라봤다. 아니 그 속을 물고기처럼 유영했다. 목적지만큼 다시 보고 싶었던, 예전 시골학교 등교 시간이 그랬듯 한 시간 가까운 '서원 등굣길'이었다."

그러니까 이 녹색 물결 길을 걸어서 가보는 것이 그 꿈이었다. 지난 12일 그 꿈을 실행에 옮겼다. 우선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행 급행 3번 버스를 타고 도산면 온혜리까지 갔다. 버스가 한참을 멈춰 서는 종점 같은 마을이다. 예전부터 이 마을은 어떤 곳인가 살펴보고 싶었다. 퇴계 이황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진짜 여행은 이곳에 내리면서 시작됐다.

온혜초등학교를 지나다 아련한 교실 창 문구를 보았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 6개 학년의 학생들은 그렇게 세 개 교실에 분산돼 공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학교가 없어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구나 하는 어쭙잖은 생각을 했다. 예전엔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예쁜 건물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으나 지금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바로 옆 퇴계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5년간 지냈다는 온계종택에 잠시 들르고, 마을 논밭 한가운데를 지나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그러다 뜻밖에 풀밭에 묻혀 있는 퇴계 선생의 시비를 발견하고 말았다. '지산와사'(芝山蝸舍)라는 시였다. '영지산의 달팽이 집'이라는 뜻이다. 한시와 그 번역문, 시 배경 설명이 같이 담겨 있었다.
 
▲ '지산와사' 시비 도산면 온혜리 웅부중학교 가는 길가에 있다. '영지산의 달팽이 집'이라는 시의 시비다.
ⓒ 박태신
30세 무렵 이곳 영지산에 달팽이뿔만 한 작은 집을 지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근처에 사시는 어머님께 문안드릴 수 있어 더없이 좋다는 내용이다. (궁궐과 같은 커다란 사물, 전쟁과 같은 큰 사건도 우주 속에서는 작은 것에 불과하니) 자연의 도를 따라 우주를 관조하며 살겠다는 뜻으로 '달팽이 집'을 지었다고 했다.

내게 친근한 달팽이가 언급되었다는 점, 달팽이 집('와사')이라는 단어, 그런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표지에 달팽이 그림이 그려진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은 십여 년 넘은 나의 애서인데, 비록 읽을 계제가 못 됐지만 이번 여행 때도 지니고 왔다.

그런데 퇴계라는 대학자가 '달팽이 집'에 살면서 우주를 생각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달팽이가 인간의 눈에는 아주 작은 미물이지만 우주에서는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그렇다. 느닷없이 발견한 이 시비 덕분에 온혜 방문은 의미가 있었다.

개울 위의 집
 
▲ 도산면 토계리 풍경. 도산서원 가는 차도에서 바라본 논밭과 산 풍경.
ⓒ 박태신
 
▲ 도산서원 가는 길 도산면 토계리, 퇴계종택과 도산서원 갈림길 근처의 산야 풍경.
ⓒ 박태신
1시 무렵 온혜리에서 출발, 5월의 가벼운 땡볕 길을 걸었다. 웬만한 시골길이 그렇듯 차도에 인도는 따로 없었다. 조심조심 걸을 수밖에 없다. 가다가 어느 시골집 진돗개 세 마리가 보였다. 개를 좋아하는 나는 머뭇거렸다. 만나지 않고 가면 후회할 것 같아 짖어대는 개들에게 상냥하게 다가갔다.

개줄에 묶여 있는 시골 개들은 크게 짖어대도 사실 사람 손길이 그리운 존재들이다. 그런 개들을 나는 어루만져주곤 했다. 그런데 세 마리라! 한 마리는 새끼였지만 다들 얼마나 힘이 셌는지 모른다. 차례차례 정을 주었다. 그 바람에 내 옷과 가방은 개 발자국에 얼룩이 지고 말았다.

다시 걷다 보니 유명 청포도 와인 제조·판매점이 등장했다. 와인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잠시의 유혹을 물리치고 눈으로만 살짝 분위기 좋은 건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논밭 옆길을 계속 걸었다.

갈림길이 나왔다. 퇴계종택(직진)과 도산서원(오른쪽)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도산서원에서 나오는 5시 40분 막차를 타기에는 시간 여유가 있어 퇴계종택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개천 너머 한옥 세 채가 보였다. 저기가 종택인가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왜소했다. 그 앞에서 뜻밖의 안내 표지판을 보았다. 이곳은 계상서당(溪上書堂)이었다. 실개천 위의 집이다. 내가 모르는 곳이었다.

퇴계 선생이 50세 무렵 낙향해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제자들이 많아져 도산서당을 짓기 이전 시절이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징검돌 따라 개천을 건넜다. 새로 복원된 건물이라지만 상관없다. 나는 서당 마루에 걸터앉았다. 선생의 사상은 몰라도 홀로 개울을 건너 고즈넉한 마루에 앉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지산와사 시비, 계상서당 둘 다 사전지식 없이 걷다가 발견했다. 나는 퇴계 선생에게서 이런저런 덤을 받았다.

등나무 집
 
▲ 도산면 토계리 등나무 꽃 역시 갈림길에서 도산서원 쪽 차도에서 만난 등나무 군락과 등나무 꽃.
ⓒ 박태신
갈림길로 돌아와 도산서원 쪽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내가 그토록 걸어가 보기 원했던 우거진 숲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년 전 버스 안에서는 상하좌우 내 몸은 흔들렸고 숲은 시야에선 빠르게 지나갔는데, 그 숲이 연두색을 넘어 녹색과 진녹색으로 층을 이루며 차분하게 놓여 있었다. 7월 완전한 녹음 속에 무수한 나뭇가지들이 차도 쪽으로 침범하기 이전의 가지런한 모습! 눈이 딱 뜨이는 느낌이었다.

<걷기 예찬>이라는 책을 나는 좋아한다. 걸어서 행복을 경험한 이들을 문학적으로 칭송한 책. 오래전 밑줄 그으며 읽은 그 책은 나의 걷기 횡보에 맞장구를 쳐주는 고전이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나도 걸어서 이곳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기분 좋은 향이 내 몸으로 스며들어왔다. 등나무 꽃향기 바람이다. 넓지 않은 이곳 등나무 군락이 개울물 흐르듯 쉴 새 없이 은은한 향을 내보내고 있었다. 오름길, 차도에 차가 없을 때의 정적과 더불어 오직 이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자연의 바람 향이었다. 이제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 숲을 지나 오르막에서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얼마 후 도산서원에 다다른다. 온혜리에서 도산서원까지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계상서원이나 퇴계종택(이날엔 문이 닫혀 있었다)까지 들르고, 휴식도 취하고 등나무 앞에서 서성거리기까지 하다 보니 세 시간 조금 더 걸렸다. 그래도 도산서원 관람할 시간은 한 시간 넘게 남았다.

혹 이 숲을 걸어가며 보고 싶은데 긴 도보 길이 부담스럽다면 걱정 마시라. 버스를 타고 왔다면 갈림길 근처에서 내리면 되고, 차를 가지고 왔다면 퇴계종택 쪽 길 근처에 퇴계종택 공용주차장이 있으니 거기에서 주차하면 된다.

내가 갔을 땐 등나무 꽃이 싱싱했는데 얼마 후 이 꽃이 시들어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르익을 녹음을 볼 수 있다.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나만 아껴두고 보려 했던 풍경을 이렇게 공개한다.
 
▲ 계상서당 징검돌 너머 실개천 위의 집 '계상서당'.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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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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