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채한도 협상 제자리…"끔찍한 디폴트 막자" 한목소리
매카시 "여전히 멀리 떨어져"
의회 "정부 지출 삭감이 먼저"
백악관은 조건 없는 상향 요구
바이든, G7 일정 줄여 재협상
미국의 부채한도 상향 조정을 위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2차 회동도 성과 없이 끝났다. 다만 양측 모두 "디폴트(채무불이행)는 끔찍한 선택지"라는 데 동의하며 강한 협상 의지를 내비쳤다. 이르면 다음 달 초 미국이 초유의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바이든 대통령은 향후 예정된 해외 순방 일정까지 단축하며 협상 타결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화당 소속인 매카시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민주당 소속인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와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을 만나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자리는 앞서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던 지난 9일 회동에 이은, 두 번째 자리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입장차를 확인하면서도 "더 나은 과정에 있다"고 협상 타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이번 주말까지 협상을 타결하는 게 가능하다"고도 언급했다. 슈머 원내대표도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우리 모두 디폴트는 끔찍한 선택지라는 데 동의했다"고 이날 회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이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부채한도 상향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부채한도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며 조건 없는 상향을 요구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양 측이 디폴트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현재 정부 지출 중 어느 프로그램을 삭감하느냐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측 보좌진은 이날 회동에 앞서 저소득층이 정부로부터 식품 구매 등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의무적으로 일해야 하는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참모급 회담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주제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사용하지 않은 코로나19 예산 회수, 에너지 프로젝트 허가 절차 간소화, 정부 지출 상한 설정 등이 포함된다고 전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 시한이 촉박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7~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고, 현재 상원은 메모리얼데이로 22~29일 휴회한다. 미국은 지난 1월 31조4000억달러 규모의 부채한도를 모두 소진했고 특별조치로 시간을 벌어놨지만, 버틸 수 있는 X데이는 다음 달 1일로 관측된다.
시장에서는 디폴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X-데이에 가까워질수록 증시 급락 등 여파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잇따른다. 더욱이 미 경제는 1년 이상 이어진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 등으로 침체 우려가 높아진 상태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전미독립지역은행가협회(ICBA) 행사에서 "미국의 디폴트는 경제·금융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의회는 가능한 한 빨리 부채 한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디폴트가 3개월 이상 장기화할 경우 증시가 45% 폭락하고 일자리는 최대 830만개 사라질 수 있다는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 분석을 언급하며 "대공황처럼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등 미 주요 기업 경영진 140명은 부채한도 협상의 신속한 타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경제에 대한 스트레스는 최근 은행 파산으로 이미 표면화되고 있다"며 "디폴트가 발생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채한도 협상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주식 시장이 17% 급락한 사례를 거론하며 빠른 부채 협상 타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성명에는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CEO, 제프 제넷 메이시 CEO 등이 참여했다.
한편,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채한도 논의를 위해 예정됐던 해외 순방일정을 단축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G7정상회의 이후 파푸아뉴기니·호주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나, 이를 취소하고 복귀한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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