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보호무역이라는 현실

최대열 2023. 5. 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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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도자는 안다.

보호무역은 나쁘고 자유무역이 좋다는 걸.

입으로는 자유무역을 외치지만, 몸은 보호무역에 가까워진 듯 여기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테다.

자유무역 기조 아래 수비에 치중했던 정부는 보호무역 흐름에 편승해 공격수를 자임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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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자국보호기조 강화
수십년 자유무역 질서 사라져

"우리가 보호주의자라는 건 아니다. 시장을 닫지는 않겠으나 유럽 밖의 산업을 부흥시키는 데 프랑스 납세자의 돈을 쓰지는 않겠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전후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번영을 일궜다."(윤석열 대통령)

정치 지도자는 안다. 보호무역은 나쁘고 자유무역이 좋다는 걸. 적어도 정치적 구호로는 자유무역을 외쳐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위정자의 말과 행동은 비슷한 듯 보였다. 협상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서른 개에 달한다. 최근 국제 교역 무대를 보면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건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입으로는 자유무역을 외치지만, 몸은 보호무역에 가까워진 듯 여기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테다.

20세기 초중반 커다란 전쟁을 치른 후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교역을 방해하는 건 죄악시됐다. 관세를 낮추거나 없앴고 각종 정부 보조금이나 수입 물량에 제한을 두는 쿼터제 같은 비관세장벽도 사라져야 할 것,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서로 득이 된다’는 호혜(互惠)로운 자유무역이란 수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나라 간 교역 과정에서는 한 발 뒤로 빠지고, 자유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자국 산업을 돌보는 쪽으로 국한된다. 일종의 수비수다.

피치 못할 것으로 여기던 보호무역은 야금야금 세를 넓히더니 어느덧 주류가 됐다. 수십 년째 이어져 관행으로 여긴 탓인지, 여전히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나 영락없는 자국 보호 움직임이다. 떳떳지 못한 일로 여기던 보호무역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부끄럽지 않은 가치가 됐다. 감염병으로 국경이 단절됐고 공급망은 언제든 붕괴할 정도로 취약하다는 걸 절감했다.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보호무역을 하고 싶었는데, 밖에서 구실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상황은 보는 대로다. 미국산 제품을 쓰라(바이 아메리카)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는 차라리 전임 트럼프가 낫다는 푸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새로 만든 법(IRA)은 기후변화에 대처한다거나 중국을 겨냥했다는 점을 내세우나 본질은 노골적인 자국 이기주의다.

프랑스 정부가 곧 내놓을 녹색산업법은 유럽산 전기차나 배터리에 보조금을 유리하게 주도록 바뀐다. 마크롱은 새 법이 IRA와 경쟁한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중국의 보호무역은 소기의 성과를 냈다. 내연기관차가 일찌감치 가망이 없다 보고 적극 육성한 자국 전기차 산업이 그렇다. 수년 전까지 내수 중심으로 평가받던 중국 자동차 산업은 로컬 브랜드 약진에 힘입어 수출 1위를 넘본다. 자유무역 기조 아래 수비에 치중했던 정부는 보호무역 흐름에 편승해 공격수를 자임하고 나섰다.

올해는 세계무역기구 출범을 알린 우루과이 라운드 30년째가 되는 해다. 그에 앞서 자유무역 기치를 내건 GATT 체제까지 감안하면 80년이 흘렀다. 중국·인도처럼 보호무역 덕을 본 경제대국은 물론 내로라하는 선진국도 울타리를 높이고 자국 보호 기조를 한층 강화했다. 지난 세월 잘못에 대한 반성일까, 각자도생의 단면일까. 아니 애초부터 자유무역은 선(善)이 아니었나.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겐 만만치 않은 질문을 남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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