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주’, 광주 넘어 지속가능한 레퍼토리 될까
뮤지컬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대중화·세계화 사업으로 지난 2020년 첫선을 보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한때 5·18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르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이 공연 제작사인 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과 공동제작했다.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지만, 뮤지컬 ‘광주’는 초연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연극, 창극, 뮤지컬을 오가며 활약하는 고선웅이 극작과 연출을 맡고, 창작오페라 ‘1945’ 등 다양한 음악극에서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여온 최우정이 작곡을 맡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선웅은 앞서 연극 ‘푸르른 날에’와 ‘나는 광주에 없었다’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 소재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높은 완성도와 대중성을 동시에 보여준 바 있다.
다만 뮤지컬 ‘광주’는 초연 당시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무엇보다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인 박한수가 부마민주항쟁을 진압하고 광주에 투입된 편의대(후방교란을 주임무로 하던 부대) 소속이라서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광주와 아무 연고 없는 인물이다 보니 그가 극 중에서 시민들 편으로 돌아서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21년 재연부터 박한수를 중학교 때부터 광주에 살았으며 야학교사 문수경과 소꿉친구로 설정하는 한편 편의대에 갓 부임한 신참 하사로 묘사됐다. 그리고 전남도청에서 시민들과 함께 싸우다 죽었던 박한수가 살아남아서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화항쟁의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바꿨다. 전체적으로 편의대와 계엄군의 장면을 대폭 줄이고, 광주 시민들의 비중을 늘리면서 광주 시민 중심의 서사를 강화했다.
지난해 세 번째 시즌에선 광주 시민이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더욱 설득력을 갖추도록 서사를 보완했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실제 주인공으로 시민군을 조직하고 지휘한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한 야학교사 윤이건의 비중을 높여 광주 시민의 서사에 무게감을 더했다. 이런 서사와 캐릭터의 변화에 맞물려 음악도 대거 수정했다.
세 번째 시즌까지 업그레이드를 계속한 뮤지컬 ‘광주’는 지난해 10월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쇼케이스를 가지기도 했다. 현지 배우들을 기용해 영어로 1시간 정도 진행된 쇼케이스는 뮤지컬계 관계자들의 호평을 끌어냈다. 민주화 운동을 다룬 작품이 마치 프랑스 혁명 소재의 ‘레미제라블’처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호평까지 끌어낸 것이다.
뮤지컬 ‘광주’는 지난 3년간 서울과 광주에서 매년 공연한 것을 제외하고 2020년 고양·부산·전주, 2022년 세종에서 공연됐다. 그런데, 네 번째 시즌인 올해는 5.18 주간에 맞춰 광주에서만 16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개막해 21일까지 공연을 올린다. 이렇게 된 데는 광주문화재단이 뮤지컬 ‘광주’를 3개년 프로젝트로 지원한 것이 지난해 끝났기 때문이다. 다만 뮤지컬 ‘광주’의 완성도나 성과를 고려해 올해는 별도로 지원했는데, 이 작품을 지역 대표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16일 프레스콜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뮤지컬 ‘광주’의 유희성 예술감독은 “뮤지컬 ‘광주’처럼 민·관이 오랜 시간 협업한 사례는 흔치 않다”면서 “앞으로도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뮤지컬 ‘광주’는 지난 시즌보다도 더 업그레이드됐다. 무거운 서사 속에서 긴장과 이완으로 드라마의 균형을 잡은 덕분에 관객을 작품에 깊이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고선웅도 이날 간담회에서 “뮤지컬 ‘광주’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진화를 거듭해왔다. 올해는 지금까지 공연 가운데 가장 안정감과 완성도가 있지 않나 감히 자신해 본다”고 자부했다.
문제는 뮤지컬 ‘광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의 지원이 중단된다면 민간 제작사인 라이브(주)와 극공작소 마방진이 자체적으로 올리기엔 부담이 큰 탓이다. 뮤지컬 장르의 속성상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뮤지컬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일반 관객에게 심리적인 장벽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상업성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공연을 실제로 보면 관객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광주 시민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시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뮤지컬 ‘광주’가 광주에만 머무르는 대신 광주를 벗어나 좀 더 많은 지역에서 일반 관객과 만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나 5.18 민주화운동을 체험하지 않았던 젊은 관객들에게 뮤지컬의 속성상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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